韓 상속세, 최대 60% 육박 … 사실상 OECD 회원국 중 1위조세경쟁력 지수 하락세 … 정부, 상속세 개편 의지野, 유산취득세 전환에 '부자감세' 프레임으로 공격재계·학계 "자본이득세로 바꿔야 … 경제활력, 기업 영속성 연관"
  •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뉴시스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뉴시스
    여소야대 구도 속에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기업 활성화 정책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재계에서 줄곧 요구해 온 상속세 개편이 제22대 국회에서도 외면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재계와 학계에서는 우리나라 상속세를 선진국처럼 자본이득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상속세 개편을 여전히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으로 공격하고 있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녹록잖을 전망이다.

    23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속세는 최고세율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번째로 높은 50%다. 또한 대주주의 경우 상속평가액에 가산세를 물리고 있어 최대 60%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사실상 OECD 회원국 중 1위다.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상속세율은 합리적인 조세체계를 나타내는 조세경쟁력 지수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 '택스 파운데이션' 분석에 따르면 OECD 회원국 중 한국의 조세경쟁력 지수(ITCI) 순위는 지난 2014년 14위에서 지난해 23위로 급격히 떨어졌다. 특히 상속세를 포함하는 재산세는 동기간 24위에서 32위로 밀려나 조세경쟁력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윤석열 정부는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개편 의지를 보여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소액주주는 주가가 올라야 이득을 보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오르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어야 한다"며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고 지적했다.

    상속세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은 속출하고 있다. 최근 고(故) 김정주 NXC 창업자가 추진하던 비게임 신사업이 대거 정리됐는데, 오너 일가가 10년간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 규모가 1조4000억원에 육박하는 만큼 자금 마련을 위한 방안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최근 삼성전자 지분 524만7140주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이 사장은 1월에도 삼성전자(240만 주)와 삼성물산(120만 주), 삼성SDS(151만 주) 등 계열사 지분을 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해 총 5586억 원을 마련했다.

    이 사장을 비롯한 삼성 일가가 내야 하는 상속세 규모가 12조원에 달하면서 세금 납부를 위해 보유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이 외에도 한샘, 락앤락, 농우바이오 등이 상속세 부담으로 대주주가 승계를 포기하거나 해외 사모펀드에 기업을 넘긴 사례다.

    이에 상속을 염두에 둔 대주주가 주가 상승을 부담으로 여기는 탓에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한국 기업은 상속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장기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징벌적 상속세가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정상적인 기업 운영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 국회 본희의장. ⓒ뉴데일리DB
    ▲ 국회 본희의장. ⓒ뉴데일리DB
    올해 총선이 야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상속세 완화에도 제동이 걸릴 거란 전망이 나온다. 입법 주도권을 쥔 야당이 반기업 법안을 쏟아내는 과정에서 정책이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OECD 38개 회원국 중 상속세가 있는 나라는 24개국이다. 이 중 20개국은 상속인 각자가 취득하는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상속세 개편을 적극 검토해 왔으나 야당은 이를 '부자감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상속세 방식은 총 유산을 기준으로 계산해 상속세를 비례해 분배하는 반면, 유산취득세는 유산 총액이 아닌 상속인이 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한다. 또 유산세 방식은 초과누진세율을 적용받아 과세표준이 2배가 되면 세액은 2배 이상 커져 유산취득세보다 상속세 총액이 커지게 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100억 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가 돌아가셨다면, 100억 원 전체를 과세표준으로 해 과세하게 된다. 상속세율의 경우 과표 1억 원 이하 구간은 10%, 1억~5억 원 이하 20%, 5억~10억 원 이하 30%, 10억~30억 원 이하 40%, 30억 원 초과 50%다. 상속세율은 소득세와 마찬가지로 누진세율이다. 예시처럼 상속재산이 100억 원이라면 최고세율인 50%를 적용한다.

    유산취득세 방식은 피상속인 기준이 아닌 재산을 물려받는 상속인을 기준으로 한다. 아버지의 상속재산이 100억 원이고 이를 받을 자녀가 4명이라면, 상속재산을 먼저 나눈 뒤 과표를 정해 과세한다. 자녀 4명이 똑같이 25억 원씩 나눠가졌다면 세율은 40%가 적용된다. 유산세 방식보다 세 부담이 줄어든다.

    최근 재계와 학계는 상속세 대신 자본이득세로 과세 방식을 전환하자는 요구를 정부에 건의했다. 자본이득세란 자본자산의 매각에서 발생하는 이득과 손실에 대한 조세로, 캐나다와 스웨덴 등이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이를 상속세로 전환하면 2세 경영인이 회사를 물려받더라도 별개로 상속세를 내지 않고, 이를 팔 때만 30%의 과세를 하게 된다.

    재계에서 상속세를 현행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을 원하고, 유산취득세보다는 자본이득세를 갈망하는 이유다.

    이준규 경희대 회계사무학과 교수는 "재계에서 주장하는 자본이득세는 사실상 상속세 폐지론"이라며 "현행 상속세가 중복 과세되는 측면이 있기에 (기업인들에게) 유리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야당이 상속세의 유산취득세 전환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한발 더 나아간 상속세의 자본이득세 전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재계와 전문가들은 정치 이념을 떠나 경제활력과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 실현에 여야가 합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오문성 한반도 선진화재단 조세재정연구회 회장은 "상속세의 문제는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대한 문제이고, 이는 기업의 영속성과 연관된다"며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대체하는 것이 경영권이 흔들리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견기업계도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상속·증여제도 개편을 제시했다. 최진식 중견련 회장은 "글로벌 산업체계 재편 등 임박한 위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차기 국회가 선진국형 경제·사회구조 대전환의 모멘텀을 구축하는 데 전력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성태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지난 13일 '한국세무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를 통해 "증여세 완전포괄주의는 조세법률주의 측면에서 명확성 원칙을 위반하고 재산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논란이 있다"며 "조세 정책적으로 자본이득세를 도입해 상증세법이 안고 있는 위헌성 논란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