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캠페인서 흑인 희화화 한 '블랙페이스' 연상시키는 이미지 사용해 논란독일서 공개된 파스타 소스 광고에 이어 잇따른 인종차별 광고로 비판 받아하인즈, 해당 논란에 대해 사과하며 즉시 광고 철회키로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Gut, VML에도 비난 쏟아져… 인종차별에 대한 몰이해 지적
  • ▲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 일으킨 하인즈의 'Smiles' 캠페인. ©Heinz
    ▲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 일으킨 하인즈의 'Smiles' 캠페인. ©Heinz
    유머러스하고 기발한 마케팅 전략으로 호평 받아온 하인즈(Heinz)가 최근 선보인 두 편의 광고 캠페인이 잇따른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 일으키자 결국 무릎을 꿇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하인즈가 최근 유럽과 영국 등지에서 선보인 2편의 캠페인이 흑인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듯한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날선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하인즈는 해당 캠페인에 대해 사과하고 두 광고를 즉시 철회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여론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인즈는 최근 영국, 스페인,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에서 신규 캠페인 'Smiles(스마일스)'를 론칭했다. 이 캠페인은 10월 말 열리는 유럽의 전통 축제 중 하나인 핼러윈(halloween)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하인즈 케첩이 들어간 햄버거와 핫도그 등을 먹고 입 주변에 케첩이 잔뜩 묻은 채 활짝 웃고 있는 모델들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광고 카피는 하인즈의 기존 슬로건인 'It has to be Heinz(하인즈여야만 해)'에 웃음 소리인 'ha ha'를 더한 'It ha ha has to be Heinz(하하 하인즈여야만 해)'로 완성해,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조커: 폴리 아 되(Joker: Folie à Deux)'를 연상시키는 전략을 썼다.

    그러나 광고가 공개 되지마자 흑인 남성 모델의 이미지가 곧바로 도마 위에 올랐다. 사람들은 다소 과장되고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흑인 남성의 모습이 19세기부터 20세기 초 흑인 남성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했던 블랙페이스(blackface)와 민스트렐 쇼(minstrel shows)를 떠올리게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블랙페이스는 백인 배우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흑인 캐릭터를 연기하던 인종차별적인 관행으로, 흑인의 얼굴과 몸을 과장되게 묘사하고 입술을 지나치게 크고 붉게 그리거나 흑인 특유의 외모를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는 등 흑인들을 희화화하는 데 주로 사용됐다. 민스트렐 쇼는 백인들이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고 흑인의 삶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내용을 주로 담은 쇼다. 블랙페이스와 민스트렐 쇼 모두 흑인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고착화하는 데 악영향을 미쳤으며, 흑인들에게 극도로 무례하고 상처가 되는 행위로 간주된다.

    이 캠페인을 본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Annex88의 안드레 그레이(Andre Gray)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 CCO)는 자신의 링크드인(LinkedIn)에 "어떻게 아직까지도 다양성(diverse)과 관련한 팀이나, 문화적 역량의 부족으로 인해 광고 이미지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광고 이미지가 갖는) 상징성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는 걸까요?"라고 지적하며 "흑인은 조커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그리고 훨씬 더 자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비인간적인 존재로 묘사돼 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하인즈의 모회사인 크래프트 하인즈(Kraft Heinz)는 성명을 통해 "크래프트 하인즈는 철저한 소비자 중심 회사로서 소비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이를 통해 배우고 있다"며 "최근 'Smiles' 캠페인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캠페인은 현재 유행하는 대중문화와의 연결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로 인해 입었을 상처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앞으로 더 잘 하겠다. 해당 광고를 즉시 삭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인즈의 'Smiles' 캠페인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독립 에이전시인 Gut 뉴욕 오피스와 하인즈가 처음으로 협력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불러 모았다. Gut는 담대하고 용감한 크리에이티비티로 설립 5년 만인 지난해 칸 라이언즈에서 '올해의 에이전시(Agency of the Year)', '올해의 독립 에이전시(Independent Agency of the Year)', '올해의 독립 네트워크(Independent Network of the Year)'상을 모두 석권하는 등 발군의 능력을 입증한 에이전시다. 그러나 이번 'Smiles' 캠페인으로 Gut 또한 그 명성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 ▲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 일으킨 하인즈의 'Ridiculously Good' 캠페인. ©Heinz
    ▲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 일으킨 하인즈의 'Ridiculously Good' 캠페인. ©Heinz
    하인즈는 앞서 영국에서도 인종차별 광고로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하인즈의 파스타 소스를 광고하기 위해 만든 'Ridiculously Good(말도 안 되게 좋은)' 캠페인은 신부로 보이는 흑인 여성이 새하얀 웨딩드레스에 파스타 소스를 흘린 것을 개의치 않을 정도로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 이미지를 내세웠다. 신랑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의 부모는 광고에 모두 등장했지만, 신부 측엔 신부의 어머니로 보이는 장년의 흑인 여성만 등장할 뿐 신부의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흑인 작가 겸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인 넬스 애비(Nels Abbey)는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해당 광고 이미지를 게재하면서 "딸을 둔 내 형제들을 위해"라고 적은 뒤 "믿기지 않겠지만, 흑인 소녀들에게도 아빠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광고는 흑인 가정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재현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크게 논란이 됐다. 흑인 가정 내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이미지를 인종차별적인 고정관념으로 강화했다는 것이다.

    이에 하인즈는 해당 광고에 대해 깊은 사과를 표명하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소비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더 배우고 개선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광고를 대행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VML 또한 비판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하인즈의 광고 논란은 흑인의 역사와 문화, 그들의 기여를 기리기 위한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인 10월에 벌어진 것으로 더욱 큰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이번 논란은 최근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최대 화두 중 하나로 꼽히는 다양성(diversity)과 포용(inclusion)에 대한 몰이해와 문화적 감수성의 부족이 브랜드 이미지에 얼마나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업계에 경각심을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