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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지역으로 묶인 전통시장은 아무리 낡아도 새 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 언제 철거될 지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시설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뉴타운 지역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정부의 각종 시장 지원책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지난 달 15일 서울 장위전통시장(성북구 장위동)이 ‘뉴타운 지역=개발 불가’라는 공식을 처음 깨트리고 비햇빛 가리개(접이식 간이 아케이드) 준공식을 가졌다. 시설 지원을 받기 위해 애쓴 지 7년만의 결실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장위시장에서 만난 길희봉 상인회장은 “케케묵은 파라솔과 천막을 거둬내니 시장 분위기가 싹 변했다”면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28년 째 커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길 회장은 2005년부터 회장직을 맡아왔다. 같은 해 장위시장은 전통시장으로 등록됐고, 서울시로부터 20억원 시설지원을 약속받았다.
“회장을 맡고 나서 시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했죠. 저희 시장이 1970년도에 생긴 터라 많이 노후화돼 시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2005년 11월 우리 시장이 뉴타운지역에 묶이면서 지원이 무산돼버렸어요.” 길 회장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법적으로 지원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는 서울시의 의견에 주저앉기를 수년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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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장들은 아케이드를 설치해서 눈비가 와도 손님들이 쇼핑을 하는데 불편이 없잖아요. 저희 시장은 비나 눈이 오면 그날 장사는 공치는 거였죠. 작년 추석에는 비가 많이 와서 추석 특수까지 놓쳤어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시와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길 회장은 서울시와 조합원, 상인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조율해갔다.
상인회는 전통시장 아케이드가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임을 강조했다.
새로운 시설이 들어오면 뉴타운 개발시 철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뉴타운 조합원들에게는 ‘개발시 즉시철거’를 약속했다. 시장이 철거될 때까지 마냥 하늘만 쳐다 볼 일이 아니라 뉴타운 개발이 시작될 때까지 만이라도 주민들이 편하게 장을 볼 수 있도록 아케이드를 설치하자고 설득했다. 아케이드는 비용을 고려해 접이식 가리개로 대체하기로 지난해 9월 마침내 합의가 이루어졌다.
리모컨으로 자동 조절되는 비햇빛 가리개는 날씨에 따라 개폐가 가능하다. 비용은 아케이드의 10분의 1수준. 장위시장은 국비(3억 3천만원)와 상인 자체부담금(3천 6백만원)까지 합쳐 약 4억원으로 비햇빛 가리개를 설치했다.
“비싼 돈을 들이면 누가 좋은 걸 못하겠습니까. 저희는 4~5곳의 업체에서 견적서와 설계도를 뽑아내 아케이드를 대신할 가림막을 주문했습니다. 4억원 정도니깐 국비 지원을 받기도 좋았어요.”
파라솔 아래 너저분하게 널려있던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시장이 몰라보게 깔끔해졌다. 다른 시장과 달리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장위시장에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주택가가 밀집해 있고 지하철역(상월곡역)으로 가는 골목에 위치해 밤늦게까지 유동인구가 많다. 떡볶이 같은 간식류나 과일, 건어물 가게는 자정까지도 영업을 한다.
길 회장은 “늦게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으니 주민들도 시장 골목으로 지나다니기 시작했죠. 자연스럽게 물건 구매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상인회에는 길 회장을 포함해 15명의 임원들이 참여한다. 결속력도 좋다. 매주 수요일엔 ‘장위시장 집수리 봉사단’으로 봉사활동에 나서 성북구의 독거노인과 다문화 가정, 저소득층 가정 등을 방문해 망가진 곳을 고쳐준다.
“2009년부터 상인회 회원들이 매주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장 상인들이 먹고사는 것도 다 주민들 덕분이니까 조금이라도 베풀고 싶어서 봉사를 합니다. 1970년에 만들어진 장위골목시장은 42년 만에 시설 지원을 받았어요. 아직도 다른 시장에 비하면 주차나 편의시설이 부족하죠. 그래도 상인들의 노력 덕택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상인들에게 공을 돌렸다.
올해 상인회의 목표를 묻자 그는 “카드 가맹률을 높이고, 특가판매를 늘려 고객들을 더 많이 모시는 것”이라고 답했다.
취재= 박모금 기자 / 사진= 양호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