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불법어업국 지정 피할 수 있었지만, 미숙한 대처로 화 불러그린피스 "예비단계서도 수출제재 가능…공무원 철갑통 인식 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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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피스


    유럽연합(EU)이 우리나라의 불법어업(IUU·Illegal, Unreported, Unregulated) 근절 노력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을 나타낸 가운데 정부가 실질적인 억지력 확보를 위한 벌칙조항 강화 권고에 유보하는 태도를 보여 EU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2012년 예비 불법어업국 지정 당시 정부의 사태 인식이 더뎌 예비 지정을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정부는 늑장 대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린피스는 EU가 예비 불법어업국 단계에서도 수출 전면금지 같은 제재를 내릴 수 있다며 정부가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를 위해 부처 공무원이 먼저 철밥통 의식을 깨야 한다고 조언했다.


    ◇EU 실사단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정부의 벌칙 강화 권고 유보 변수 되나


    해양수산부는 12일 우리나라의 IUU 국가 지정을 앞두고 방한했던 EU 수산총국 실사단 활동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조사단이 우리 정부의 개선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EU 실사단은 9일 수출 수산물에 대한 어획증명서를 발급하는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부산지원과 원양어선의 불법어업을 감시·감독하는 조업감시센터(FMC)를 방문해 운영현황을 살펴보고 10~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수부와 회의를 진행했다.


    문해남 해양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조사단은 한국 정부와 대화채널이 구축된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번 조사가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져 감사하다는 태도였다"고 총평했다.


    문 실장은 "특히 짧은 기간에 FMC를 운영하면서 어업증명서 발급과 연계하는 체계를 보고 만족해했다"며 "앞으로 유사한 실수가 발견되지 않는 한 이 부분은 더는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사단은 우리 정부에 몇 가지 보완사항을 제시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조사단은 우선 이로그북 도입을 요구했다. 이로그북은 선장이 매일 선박 위치와 조업실적을 이메일 등을 통해 보고하는 시스템이다.


    문 실장은 "FMC 운영과 관련해 외국 사례를 비교할 때 이로그북 도입을 검토했었는데 이번에 도입을 권유받았다"고 부연했다.


    조사단은 특히 사례분석을 통해 다각적인 교차감시망이 구축되어 있지 않아 FMC 운영에 누수가 있다고 지적하고 원양산업발전법 개정 때 벌칙조항을 강화해줄 것을 권고했다.


    정부가 발급해준 어획증명서에 어획량은 5톤인데 반해 가공 수출량은 7톤으로 기재된 사례가 발견된 것이다.


    문 실장은 "조사단은 단계별 교차 확인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어획량과 가공 수출량이 다른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진단했다"며 "원양어선의 조업 위치 파악뿐만 아니라 수산물 운반선 관리 강화 등을 통한 그물망식 불법어업 근절 대책을 요구했다"고 부연했다.


    조사단은 외국 사례를 들어 우리 원양산업발전법의 벌칙조항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올 1월 개정된 원양산업발전법에는 불법어업 적발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산물 가액 3배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조사단은 스페인의 경우 아프리카 연안 등 조업금지구역에서 불법어업으로 100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음에도 같은 곳에서 불법어업을 다시 벌여 100만 달러 벌금을 또 문 사례가 있음을 강조했다.


    문 실장은 "조사단은 외국의 경우 100만 달러 벌금도 억지력이 없다고 보이는데 우리의 벌칙 조항이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견해를 보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조사단 권고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문 실장은 "조사단은 한국 정부가 짧은 시간에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것에 놀라면서도 앞으로도 한국 정부가 지속해서 불법어업 근절에 적극적으로 나설지에 대해선 좀 더 두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인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벌금액이 다른 데다 국내 연근해어업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한국 정부는 현재로도 충분히 억지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위반사항이 자주 일어나서 현재 조항의 억지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개선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EU는 한국의 불법어업 근절 의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고 조언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입장 표명에 조사단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정부 예비 지정 피할 수도 있었다"…당시 문제 심각성 인식 못 해


    정부는 2012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될 때 이를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지정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한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과 관련해 "조사단은 지난해 이전에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이지 못했지만, 지난달 손재학 해수부 차관의 EU 방문 이후로 대화 채널이 마련된 것을 좋게 평가했다"며 "당시에는 부처 전반에 걸쳐 IUU 국가 지정 경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던 것 같다. 이번처럼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예비 지정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 관계자는 "조사단 수석대표는 '이번에 한국이 이렇게 빨리 잘 준비할 줄 몰랐는데 2011년 예비 지정을 위해 방한했을 때도 한국이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될 줄 몰랐다'고 했다"며 "당시 우리의 대응이 미흡했음을 짐작게 하는 발언"이라고 귀띔했다.


    문 실장도 브리핑에서 다른 나라와의 형평성 문제를 묻는 말에 "다른 나라는 불법어업 문제와 관련해 우리보다 나라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본다"며 "조사단도 개별 선사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인정한다. 관건은 국가 차원의 근절 대책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인데 우리도 조금 더 발 빠르게 대응했다면 예비 지정까지 가지 않아도 됐을 수 있는데 아쉽다"고 답했다.

  • ▲ 그린피스가 9일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수산정책 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뉴데일리
    ▲ 그린피스가 9일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수산정책 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뉴데일리


    ◇그린피스 "예비단계도 수출제재 가능…불법어업 근절의지 보여야"


    그린피스는 예비 불법어업국 단계에서도 수출 전면금지 등 제재가 내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사단이 이번 방문에서 불법어업에 대한 벌칙조항 강화를 권고한 것은 사실상 정부의 노력이 실질적인 IUU 억제력으로 이어지기에는 미흡하다고 판단한 것인 만큼 IUU 근절을 위한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린피스 박지현 해양 캠페이너는 "언론이나 정부는 현재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예비 불법어업국 딱지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EU의 관심사는 한국 정부가 불법어업 근절에 어느 정도 의지를 갖고 있느냐에 쏠려 있다"고 강조했다.


    박 캠페이너는 "IUU 통제법에는 예비 단계에서도 해당 국가에 대(對) EU 수출 전면 금지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정부가 보고된 불법어업에 대해 개선안대로 처벌하지 않은 사례가 발견되면 IUU 국가 지정 이전이라도 제재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아직 불법어업국으로 최종 지정되지 않았다고 불법어업에 대해 자칫 솜방망이 처벌을 하거나 원양업계와의 유착고리를 끊지 못하고 눈감아주면 당장에라도 제재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박 캠페이너는 "EU는 예비단계 지정을 통해 한국을 국제사회에서 왕따시키려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한국 정부의 이행력과 의지력을 보려는 것"이라며 "법이 바뀌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한국 정부의 불법어업 근절 의지만 확실하다면 돕고 기다려줄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공무원 무사안일 철밥통 인식이 가장 큰 걸림돌


    박 캠페이너는 정부가 의지력을 표명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부처 공무원의 철밥통 인식을 꼽았다.


    그는 "한국 정부가 의연하고 진정성 있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며 "지금의 해수부는 일부 진보적인 성향의 관리자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해결에 적극적이지만, 대다수 공무원은 여전히 과거의 패턴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박 캠페이너는 "그린피스가 하필이면 실사단 조사가 시작된 9일 원양수산정책 개혁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도 해수부가 그런 압력을 느끼지 않으면 움직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잘못은 인정하고 건전한 비판은 받아들이면 되는데 (해수부는) 반감부터 보인다"고 부연했다.


    이에 대한 해수부 내 반응은 엇갈린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2011년 예비 지정 때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당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거 같다"며 "불법어업 근절 대책으로 우리 일부 원양업체가 위축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린피스의 훈수에 대해 "양국 간 협상에 앞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매너 아니냐"며 "NGO(비정부기구)로선 당연하겠지만, 자신의 목적의식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에 가타부타 얘기하기도 그렇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편 EU는 내부 협의 절차를 거쳐 오는 9월께 IUU 국가 지정 여부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