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본부, 검역본부와 같은 시설안전등급 받아도 표본 분양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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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발생이 연례행사처럼 고착화하면서 발 빠른 진단과 대응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바이러스 시료를 대학 연구기관 등에 분양하지 않고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검역본부가 구제역 관련 연구를 폐쇄적으로 운영하면서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 정부 발표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복수의 구제역 전문가에 따르면 현재 가축전염병 예방법에는 대학 연구소 등에서 개별적으로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검사 등을 할 수 없게 제한돼 있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바이러스의 유전자형을 검사하고 기존에 공급된 백신의 적합성 등을 따져 방역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현재는 이 역할을 검역본부만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실험실 진단 오류나 결과 값에 대한 인위적인 조작 내지 왜곡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검역본부의 분석과 발표가 중요한 이유는 '역학조사위원회 무용론'이 대두하는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검역본부 가축전염병 관련 역학조사위원회는 실제 역학조사나 현장 검증 없이 검역본부 발표자료를 위원들이 서면으로 검토만 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복수의 기관에서 바이러스를 검사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A교수는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은 한 기관이 독점하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마음만 먹으면 조작도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구제역 전문가인 B교수는 "(검역본부에서) 바이러스를 못 만지게 하니까 구제역이 발병해도 개별적인 검사를 진행할 수 없다"며 "(정부에서) 발표하는 대로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역 당국은 바이러스 관리 위험과 비용, 효율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검역본부 구제역백신연구센터 관계자는 "대학 연구소 등 민간부문의 바이러스 검사·연구를 완전히 막는 것은 아니다"며 "필요하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만약 국가시설이 아닌 대학 연구소 등에서 바이러스가 누출되면 그 피해는 천문학적으로, 일반 축산농가에서 퍼지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검역본부는 연구시설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으므로 투자 효율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태도다.
구제역은 1종 바이러스성 가축 전염병이다. 구제역을 연구하는 시설은 바이러스 누출을 막기 위해 외부 공기와 차단된 음압시설 등 일정 기준(BL3·생물학적 안전 3등급)을 충족해야 한다. BL3 수준의 시설을 갖추려면 적잖은 돈이 든다.
국내에서 구제역 백신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비용문제가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백신 공장 전체를 BL3 등급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검역본부의 이런 설명이 핑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B교수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위험하다는 논리인데, 발생 축산농가에 가면 바이러스가 밖에 돌아다닌다고 봐야 한다. 유독 실험실만 위험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백신정책 이전에는 수백만 마리의 소·돼지를 도살 처분했고 방역 관계자는 바이러스와 거의 같이 생활했다. 위험성은 높지 않다"고 밝혔다.
A교수는 "검역본부는 BL3 요건을 충족한 시설에서도 구제역 바이러스를 다루지 못하게 막는다"며 "검역본부도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실험시설 인가를 받는다. 똑같이 공인된 연구시설인데도 바이러스를 분양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역본부의 진단 기술이나 인력만이 국내 최고 인지는 따져볼 문제"라며 "(검역본부가 구제역 바이러스를 민간 연구소에 분양하지 않는 것은) 관련 연구·진단을 독점하고 방역 당국이 정보를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