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공장, 전력·용수 모두 '빨간불'24시간 기저 전원 원전 놔두고 왜 재생에너 중심 호남?호남에 물 충분하다더니…영산강 용수 자립도 20%대 불과
  •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최태원 SK 회장.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최태원 SK 회장.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신규 반도체 공장을 호남권에 건설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공개한 가운데 입지 적정성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동한 1초도 끊기지 않고 전력이 공급돼야 하기 대문에 안정적인 기저전원이 필수다. 그런데 기저 전원인 원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영남 대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중심의 호남을 선택한 것을 두고 여권과 청와대의 압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권 신규 반도체 투자 계획이 포함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 대통령의 양 옆에 참석해 호남 반도체 공장 투가 계획 발표를 같이 했다. 

    이 대통령은 "글로벌 인공지능 전쟁은 총력전이자 국지전"이라며 "호남권 대규모 신규 투자를 통해 압도적 공급 역량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선 AI(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확대에 대응해 수도권 반도체 생산기지를 조기 완성하고, 서남권에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을 조성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총 80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팹 4기를 구축한다.

    정부가 공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보면 반도체 전략명은 ‘3S+1F’다. 속도전(Speed), 거점전(Stronghold), 선도전(Spearhead)에 총력지원(Full support)을 더한 구조다. 이 중 핵심은 서남권으로, 수도권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조성된다. 정부는 수도권 단일 거점만으로는 전력, 용수, 부지 등에서 성장 한계가 있다고 보고 새로운 생산거점을 발굴했다고 설명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인프라, 정주여건, 인력 등을 종합 고려해 결정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총 80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팹 4기를 짓는다. 삼성전자가 2기, SK하이닉스가 2기를 구축한다. 정부는 전력과 용수 등 인프라를 책임지고 공급하고, 기업과 협력해 인허가, 부지 조성, 건축 절차를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같은 전략에 대한 회의감도 상당하다. 

    반도체 산업은 입지 선정에서 '인(사람)·수(용수)·전(전력)'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이 가운데 가장 해결이 어려운 것이 전력이다. 첨단 반도체 공장은 순간적인 정전이나 전압 변동만 발생해도 수천억원 규모의 생산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일반 산업시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전력 안정성이 요구된다.

    반도체 공장의 전력 수요는 일반 산업시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하다.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조성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체 가동 시 약 10GW 규모의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서울시 전체 최대 전력수요(약 10GW)와 맞먹는 수준이다.

    10GW는 원전으로 환산하면 1400MW급 한국형 대형 원전(APR1400) 약 7기에서 생산하는 전력과 비슷한 규모다. 실제 정부도 용인 클러스터의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안해 동해안 원전에서 수도권까지 전력을 공급하는 초고압 송전망(HVDC) 구축과 신규 원전 건설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이 같은 규모의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원전이나 LNG 발전 같은 기저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설비용량이 충분하더라도 발전량이 시간과 날씨에 따라 크게 달라져 반도체 공장 단독 전원으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호남권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신규 첨단 팹이 추가로 들어설 경우 기존 산업단지와 AI 데이터센터 등 미래 전력수요까지 감안한 별도의 전력 공급계획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담보하기 어렵고, 결국 원전이나 LNG 발전 확대, 대규모 ESS(에너지저장장치) 구축, 초고압 송전망 확충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조차 원전 여러 기에 해당하는 전력을 필요로 해 정부가 송전망과 신규 발전소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며 "호남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기지를 조성하려면 이보다 훨씬 구체적인 전력 공급 로드맵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신 발전설비 현황을 보면 영남권은 이미 이러한 조건을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4월 기준 한전전력통계 월보에 따르면, 영남권의 발전설비 용량은 약 49GW(경북 20.7GW, 경남 13.4GW, 부산 6.9GW, 울산 6.7GW, 대구 1.3GW)로 전국 최대 수준이다. 부산과 울산, 경남, 경북에는 고리·새울·월성·신월성·신한울 등 국내 대부분의 원전이 집중돼 있다. 특히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경북 영덕에는 신규 대형원전 2기가, 부산 기장에는 소형모듈원전(SMR) 1기가 건설될 예정이다. 

    원전은 날씨와 시간대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대표적인 기저전원이다. 영남권 전체 발전량 가운데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 여기에 LNG와 석탄 발전이 기저부하를 뒷받침하면서 계통 안정성이 높다.

    반면 호남권은 전국 최대 재생에너지 생산지역으로, 최대 발전용량은 약 24.3GW(전남 16.5GW, 전북 7.3GW, 광주 0.6GW) 수준이다. 전남과 전북을 중심으로 태양광과 풍력 설비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이 절반 안팎에 달한다. 반면 안정적인 기저전원인 원전은 전남 영광의 한빛 원전이 사실상 유일하다.

    문제는 한빛 원전 1~6호기가 설계 수명을 다해 하나 둘 운영이 멈춘다는 점이다. 한빛 1호기는 지난해 12월 멈춰섰고, 2호기도 올해 9월 운행이 중단된다. 3~6호기 역시 2034년 9월부터 2042년 7월까지 차례로 가동이 중단된다. 

    태양광은 해가 떠 있는 낮 시간에만 발전하고 구름이나 기상 여건에도 출력이 크게 달라진다. 풍력 역시 바람 세기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변동한다. 반도체 공장처럼 365일 24시간 동일한 품질의 전력을 요구하는 시설에는 태양광과 풍력만으로는 안정적인 공급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실제로 호남권은 낮에는 태양광 발전량 증가로 전력이 크게 남지만 밤에는 발전량이 급감하는 구조다. 부족한 전력을 메우려면 대규모 ESS나 LNG 발전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수조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력망 역시 변수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호남권 345kV급 주요 송전망 대부분은 2026~2030년 사이 계통 수용 여유가 부족한 상태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발전설비는 계속 늘어나는데 송전망 확충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신규 대규모 수요처 연결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용수 여건에서도 호남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27일 SNS에 글을 올려 호남 반도체 공장에 공급할 물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호남에도 물은 충분하며 글로벌 첨단기업인 삼성과 하이닉스가 용수가 부족한 지역에 검토도 없이 공장 설립을 계획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같은 날 영산강·섬진강 유역 7개 댐의 수계 조정과 여유 용량 활용으로 하루 100만㎥ 이상의 용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다"고 힘을 실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2023년 11월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제1차 영산강·섬진강·제주권 유역물관리종합계(2021~2030)'에서 호남이 심각한 용수 부족과 가뭄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광주를 포함한 영산강 유역은 용수 자립도가 20%대에 불과해 섬진강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여수국가산업단지조차 물 부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10년간 물 관리 정책과 자원 배분 기준을 제시하는 국가계획인 물관리종합계획에는 광주·전남을 관통하는 영산강 유역은 생활·공업 용수 수요의 73%를 섬진강 유역(주암댐·동복댐)에서 끌어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체 용수 공급 능력은 27%에 불과했다.

    학계와 전문가들도 정부 주도의 입지 결정 방식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호남 반도체 공장 건설은 정부가 정치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향후 수십 년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산업"이라며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책 목표도 중요하지만 전력과 용수, 인재 확보 등 산업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객관적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