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의사협회가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놨다. 최근 벌어진 살충제 계란 사태와 관련 의사협회는 자칭 '국민건강 전문가'라고 전제하며 국민 불안을 없애고자 입장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의사협회의 입장을 종합하면 당장 먹은 살충제 계란은 우리 몸에 우려할 수준의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독성은 성분에 따라 1~3개월 내 체외로 빠져나가고, 10kg이하 영유아에게 살충제 계란을 하루 2개 먹이는 것까지는 괜찮다고도 했다.


    결론은 온 국민을 분노와 공포로 몰아넣은 살충제 계란을 먹어도 된다는 말이었다.


    정작 오랫동안 살충제 계란을 먹었을 때의 인체 영향은 이를 판단할 연구데이터 자체가 없어 "알 수 없다"고 했다. 살충제 계란으로 인한 급성독성은 문제 없지만 만성독성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다.


    이제서야 드러났을 뿐 언제부터 유통돼 사먹었을지 모를 살충제 계란에 대한 만성적 위험에 대해서는 알수 없다면서도, 단기적 섭취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의사협회의 성급한 입장 발표가 당황스러운 이유다.


    실제로 많은 이가 당혹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국민과 소비자단체는 물론 의사협회 내부에서조차 이해할 수 없는 발표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간 회의 등 공식적인 석상에서의 의사협회의 발표는 보수적이면서도 조심스러웠다. 이익단체인 협회 행보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살충제 계란과 관련한 입장 발표만큼은 재빠르고, 남달랐다. 

    과거 가습기살균제 논란이 시작된 이후 5년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던 의사협회의 행보와 비교된다. 당시 대한약사회 등 타 보건의료단체가 비판성명을 냈었던 것과는 달리 소극적인 탓에 비판이 일기도 했다.

    살충제 계란과 관련 의사협회 기자회견 이후 소비자단체 한 대표는 "이번 발표 때문에 피해보상을 바라는 소비자들이 제대로 환불받기 힘든 상황이 됐다"면서 "제대로 알 수 없다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나선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관계자는 최근 의사협회가 보장성강화 대책과 관련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정치적인 입장을 고려한 행보가 아니었냐는 의혹의 시선까지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공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의사협회 내부에서도 이번 발표를 앞두고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정부의 전수조사 과정에서도 여러가지 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의사단체가 나서는 것이 시기상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급성독성에 대해 연구상으로는 문제 없다고 결론 냈지만 이 역시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수치에 매몰된 전문가 집단'으로 보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만성독성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근거조차 없는 상황에서 자칫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는 전언이다.


    일부 내부의 각성이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결론적으로 의사협회는 성급했다. 자칭 '국민건강 전문가'라는 표현까지 해가며 강조한 직업적 사명감이 도리어 국민들의 불안과 혼란을 배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