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유럽 선주 포함 30개국에 승인 받아야…부정적 견해 대부분법률 등 각계 전문가들의 도움 절실…현대중공업 "관련 법령 검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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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작업에 본격 착수하면서 해외 경쟁국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주요 선주들의 본거지인 유럽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의 견제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때문에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6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두 회사의 인수합병을 위해서는 아시아 경쟁국과 유럽 고객을 포함해 약 30개국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아시아와 유럽의 일부 정부는 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한 상태다.
이들이 문제를 제기한 건 반독점 탓이다. 초대형 조선사 탄생으로 자국 조선사와 선주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선박 발주 시장에서 '큰손'으로 꼽히는 유럽 선주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최근 독일의 안드레아스 문트 연방카르텔청장은 이번 인수합병(M&A)에 대해 "M&A가 도산을 막을 수 있는지도 검토하겠지만 그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정하고 있다"며 "시장경제주의 관점에서 보면 M&A가 기업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진정한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U의 경쟁총국 관계자 역시 "우리가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M&A가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라며 "신청 회사는 회사 이익 때문에 아니라는 점, M&A가 성사되지 않으면 (파산으로) 소비자에게 불리하다는 점 등 증거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도 이번 합병에 대해 우려감을 나타냈다. 일본 교통부는 최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합치면 세계 수주 점유율 20% 이상을 차지한다"면서 "한국의 독점적 지위가 경쟁을 왜곡시킬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시 세계 선박 수주 점유율은 21.2%까지 올라간다. 그렇지만 유럽을 비롯해 해외 경쟁국들이 주목하는 건 고부가가치 제품이자 자국 선주들의 주력으로 알려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의 시장점유율이다.
김홍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기업결합 과정에서 경쟁제한적인 요소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은 부분이 LNG선과 VLCC의 시장점유율"이라면서도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이라도 효율성 증대효과가 경쟁제한에 따른 폐해보다 크면 기업결합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고 말했다.
LNG 운반선의 경우 3월 현재 세계 수주잔고량 점유율은 대우조선이 30.9%로 가장 높고 현대중공업그룹이 27.6%다. 둘을 합치면 총 58.5%가 된다. 두 회사의 VLCC의 점유율을 합하면 56.6%로 집계된다. 특히 LNG 운반선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두 회사 통합 점유율이 80~90%에 이른다.
기업결합 신고 이후 심사 결정까지 소요되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다. DB금융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심사일은 중국이 180여일로 가장 길고, 유럽연합(EU)은 160일, 일본은 120일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 EU가 이번 합병을 견제하는 만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업결합심사 등 해외 경쟁국들의 견제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법률 등 각계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기업결합심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률적 자문 역할"이라며 "현대중공업이 주도해서 이를 잘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내달 초 대우조선해양 실사를 앞두고 전문가들과 기업결합심사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일단 국내에서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심사를 받아야할 국가의 관련 법령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EU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심사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17일까지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김 위원장은 방문 기간 EU경쟁당국이 제기한 문제를 비롯해 선주들의 이해관계와 독과점 문제 등에 대해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에 이번 기업결합심사를 담당할 마땅한 해운전문 변호사나 전문가가 없다는 건 여전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마다 기업결합심사 기준이 다르지만, 그 중에서 유럽이 가장 까다롭고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직까지 국내에는 해외 기업결함심사를 담당할 변호사들이 많지 않아, 유럽 현지에서 담당 전문가를 찾아봐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