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보복성 '수출규제' 본격화… 국내 경제 '빨간불'文 대통령 '수출규제 철회' 요청, 日 정부차원 거부핵심소재 포토레지스트 수급 불안감… 파운드리 1위 전략 제동
  •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번 규제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던 반도체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규제 품목이 확장될 가능성도 있어 자동차, 중공업 등 전 산업으로 번질 위험이 감지되고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일본 측에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촉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파운드리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확장 계획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규제 품목 중 대체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포토레지스트는 일본기업 대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차세대 D램 양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경제산업상은 전날 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에 대해 "협의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문 대통령의 제안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는 수출관리를 적절히 시행하기 위한 국내 운용의 재검토"라며 "철회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국의 기업들에게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의 성의있는 협의를 촉구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문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이와 관련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일본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수출규제는 계획대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 일본이 발표한 수출규제 품목은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불산 등으로, 한국무역협회(KITA) 집계 결과 지난해 기준 한국의 일본 수입 비중이 각각 93.2%, 84.5%, 41.9%에 달하는 소재들이다.
  • ▲ 자료사진. ⓒ삼성전자
    ▲ 자료사진. ⓒ삼성전자
    지난 4일부터 해당 품목 수출·생산 기술 이전시 개별 심사가 진행되며 심사는 최대 90일이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20~30일이 소요되는 것과 비교하면 3배가량 길어지는 셈이다. 한국기업의 소재 조달이 지연됨은 물론 최악의 경우 일본 정부의 허가를 획득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기업을 대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반도체 산업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새기는 공정에 사용되는 포토레지스트는 광원의 파장 길이에 따라 불화크립톤(KrF, 248㎚), 불화아르곤(ArF, 193㎚), 극자외선(EUV, 13.5㎚) 등으로 분류하며 파장이 짧을수록 미세화에 유리하다. 이 중 규제 대상인 EUV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메모리반도체 강화 방안으로 파운드리 사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해당 소재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EUV 기술을 도입하고 파운드리 1위 사업자인 대만 TSMC를 추격 중인 삼성전자로서는 '반도체 비전 2030'을 선포하자마자 EUV용 포토레지스트 수급 우려로 사업 확대에 제동이 걸리게 된 것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1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은 19%로, TSMC(48%)와 29%p 차이가 난다.

    메모리반도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D램 미세화에 EUV 기술을 도입할 계획인 만큼 차세대 D램 양산이 연기돼 후발주자와 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오는 11월부터 EUV를 도입할 예정이며 SK하이닉스도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불산과 폴리이미드는 대체가 가능하지만, EUV 포토레지스트는 일본기업을 대체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이는 삼성전자의 비메모리반도체 강화 방안의 핵심 축인 파운드리 사업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삼성전자가 하반기부터 양산할 예정인 7나노 제품의 EUV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JSR로 추정되고 있다"며 "JSR은 이 제품을 벨기에에서 생산해 현재 규제가 적용되지 않지만, 규제 강화시 일본기업의 해외법인도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어 삼성전자의 고객사 확대의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주말 급히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이날 청와대 경제계 주요인사 초청간담회 일정도 건너 뛰고 직접 일본을 방문하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이 부회장의 일정은 공개되고 있지 않지만 오는 11일까지 일본에 머물면서 대형 은행 관계자 등과 만날 계획으로 전해진다. 이에 이날 예정된 청와대 30대 그룹 간담회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간담회에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신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민영방송 TV아사히 계열 ANN은 "이 부회장이 일본의 대형 은행과 반도체 제조사 등과 협의하는 쪽으로 조정 중"이라면서 "반도체 소재 조달이 정체될 우려가 있어서 어떻게 대응할지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