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4차 산업혁명 성큼... '반도체 품귀'韓-美-中-日 이어 EU 제조기술 확보전 참전 선언삼성·TSMC 생산기지 유치에 사활 건 국가들경쟁 격화되는 글로벌 시장서 정부 역할 찾아야
  • ▲ 평택캠퍼스 P2 라인 전경 ⓒ삼성전자
    ▲ 평택캠퍼스 P2 라인 전경 ⓒ삼성전자
    코로나19 이후 서서히 달아오르던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에 이어 유럽까지 글로벌 반도체 쟁탈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생산기업을 보유한 우리나라도 셈법이 복잡해졌다.

    17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전반에서 공급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본격적으로 반도체 확보전에 뛰어들겠다는 선전포고에 나섰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EU는 중 독일과 프랑스 주도로 반도체 제조기술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최대 500억 유로(약 67조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것임을 예고했다. 독일과 프랑스에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R&D)은 물론이고 생산과 특허까지 관리할 수 있는 종합 공급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골자다.

    그 간 유럽에서는 반도체 산업이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다. 차량용 반도체에 특화된 네덜란드의 NXP나 독일 인피니온 등 일부 업체들을 제외하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업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이 기업들도 완성차 관련 산업이 발달한 유럽 특성상 발전해온 기업이라 5G,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자율주행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에서 두루 쓰일 수 있는 반도체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능력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최근 반도체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국과 대만,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의존해오던 구조에서 탈피해 자체적으로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갖추고 본격적인 시장 참여를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현재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나 대만 TSMC와 같은 기업들의 참여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미 유럽 차량용 반도체 기업 상당수가 삼성전자와 TSMC에 반도체 생산을 맡기고 있기도 해 이번 프로젝트를 기회로 글로벌 유수 반도체 제조사들을 자국으로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 TSMC 본사 전경 ⓒTSMC
    ▲ TSMC 본사 전경 ⓒTSMC
    새롭게 바이든 행정부를 맞은 미국도 글로벌 반도체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최근 가장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시작으로 반도체 산업 전체 공급망에 대해 면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명령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동시에 삼성전자나 TSMC와 같은 기업들의 생산시설을 미국 내로 유치하기 위한 전략에도 골몰하고 있다. 주 정부 차원에서 이들 기업의 생산공장이나 라인 증설에 막대한 보조금이나 세액 공제 등의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언론들도 이런 흐름에 맞춰 최근 삼성전자가 반도체 신규 라인 건설을 위해 현재 공장을 두고 있는 텍사스 오스틴이나 뉴욕, 애리조나 등의 주 정부와 협상하고 있다는 보도를 연일 내놓으며 삼성이 빠른 결정을 내리도록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자국 곳곳에 글로벌 반도체 생산기지를 여러 곳 유치해 운영하고 있는데도 올 들어 반도체 품귀 현상과 맞물려 대중(對中) 압박의 수위를 높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반도체 산업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중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수십조 원을 투입해 반도체 산업 육성에 뜻을 나타낸 바 있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무역 압박을 받으면서 반도체 산업 육성에도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반도체 굴기를 이루겠다는 중국의 의지는 어느 국가보다 높은 상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겪으며 4차 산업혁명 시대가 한걸음 더 눈 앞으로 다가왔음을 체감하게 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패권의 핵심으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일찌감치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키워 세계 최강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지만 시장 경쟁이 격화되기 시작하며 새로운 전략 구상에 돌입해야 한다는 위기의식 또한 커지고 있다.

    2년 전 우리나라에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던 일본의 움직임도 지속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최근 한국 반도체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TSMC 생산공장의 일본 유치를 위해 물 밑 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반도체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풀이된다.

    이처럼 세계 반도체 시장 패권을 쥐기 위해 주요 국가들이 뛰어든 상황에서 한국도 삼성이나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판단에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국가적 전략 판단과 지원이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대규모 투자가 집중되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공급이 어려워진 차량용 반도체 확보를 위해 우리 정부도 나서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