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스법 수정은 확실시다만 보조금 축소 보다 中 견제 우선 전망CXMT나 SMIC 제동 걸릴 듯TSMC 입지도 약화 불가피삼성·SK, AI 반도체 중심 새 기회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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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제 47대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에 가장 먼저 칼 끝을 겨눌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대미(對美) 투자에 따른 '반도체 지원법(CHIPS Acts, 이하 칩스법)'에 따른 미국 정부의 지원이 바뀔 수 있는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도 당장 코 앞까지 쫓아온 중국 기술을 견제할 수 있는 기회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7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제 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지난 1기 트럼프 정부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중국 반도체 산업에 규제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으로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미국 반도체 공장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은 칩스법에 따른 보조금이나 지원이 달라질 가능성에 대비가 시급해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후보시절 줄곧 칩스법을 정면 비판해온데다 미국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텔 마저 경영위기를 겪고 있어 상대적으로 선전하는 외국 반도체 기업들에 지원할 명분도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반도체업계에선 이 같은 상황을 이미 어느 정도 예견하고 예의주시해온만큼 트럼프 2기 정부가 칩스법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미 지난 3월 보조금 규모가 확정돼 공표된 이상 이를 거두기는 힘들고 대신 현지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운영하는 동안 미 정부가 줄 수 있는 세제 혜택이나 대출금 등이 조정될 여지가 크다.

    트럼프 당선으로 칩스법이 바이든 정부의 원안대로 간다는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오히려 반도체 기업들은 트럼프 2기의 강력한 중국 견제책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지난 트럼프 1기 정부 때 중국 첨단 산업에 대한 강도높은 규제가 시작됐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규제 필요성에 대해 더 확고한 의지를 지닌만큼 2기 정부의 초점은 자국에 투자한 외국 반도체 기업들이 아니라 중국 기업들이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미국의 규제로 중국은 첨단 반도체 분야에는 발을 붙이기 힘들어졌지만 구형(레거시) 반도체 시장을 조금씩 파고들어 빠르게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메모리 시장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3분기부턴 본격적으로 중국 메모리업체들의 추격을 받으면서 이들이 저가 공세를 펼치는 일부 레거시 시장에서 실적 타격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을 정도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실적발표에서 "메모리 사업은 서버와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견조했음에도 일부 모바일 고객사의 재고 조정 및 중국 메모리업체의 레거시 제품 공급이 증가한 영향을 받았다"며 반도체 사업에서 실적이 악화된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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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정부가 공격적으로 지원을 몰아준 메모리 기업 창신메모리(CXMT)가 메모리 빅(Big)3 기업에 이름을 올릴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CXMT는 올해 본격적인 증설로 생산능력(CAPA) 확장에 나서 올 연말 기준으로 메모리 시장 3위 마이크론을 넘어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CXMT가 중국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사세를 확장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요 시장 중 하나인 중국을 완전히 내주고 점유율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파운드리 시장에선 SMIC가 이미 3위 자리를 꿰찼다. 독보적 1위인 대만 TSMC에 이어 삼성전자와 인텔이 파운드리 3강 구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에서 죽을 쑤면서 그 빈 자리를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가 빠르게 메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으로 SMIC는 점유율 5.7%로 삼성(점유율 11.5%)에 이은 3위 자리에 올랐고 3분기에는 이 같은 지위를 더 공고히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CXMT와 SMIC로 대표되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기반으로 범용 반도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만큼 미국 트럼프 정부가 이마저도 도마 위에 올릴 가능성이 점쳐진다. 미국 입장에선 그동안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이 안보 측면에서 미국에 위협을 준다는 명분으로 규제의 중심에 뒀지만 이제는 저가 반도체 시장을 중국이 점령했다는 이유를 들어 규제 범위를 레거시까지 넓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보적인 파운드리 1인자인 대만 TSMC도 트럼프의 사정권에 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는 후보시절 인터뷰를 통해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사업을 가져갔다고 표현하며 대만이 미국에 방위비를 지급하고 무역 장벽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아젠다에 목소리를 높이는 동시에 대만 반도체 산업에 대한 보호를 이유로 TSMC 핵심 생산라인의 미국 이전을 강력하게 주장할 가능성도 크다. 이 과정에서 삼성도 미국 추가 투자를 강하게 권고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AI(인공지능) 반도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 현지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