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어닝쇼크 … '슈퍼 乙' 이름값 무색D램 회복 주춤 … 내년 전망치도 하향삼성전자 악재 첩첩 … SK하이닉스도 영향권AI는 업사이클 … 엔비디아·TSMC 고공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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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유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 기업인 네덜란드 ASML의 부진한 실적으로 '반도체 겨울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AI(인공지능) 반도체 수요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달리 범용 메모리 시장이 내년에도 회복에 속도를 내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I 수혜가 강력한 엔비디아, TSMC만 독주하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7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의 부진한 실적으로 반도체 시장 전망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모두 ASML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ASML의 실적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 현황과 계획을 미리 엿볼 수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ASML은 어닝 쇼크를 기록해 업계와 시장에 충격을 줬다. 지난 3분기 예약 매출은 26억 유로로 시장에서 전망한 56억 유로에 반토막 수준에 불과했다. ASML은 반도체 기업들이 장비를 선주문하면 이를 공급, 설치해주고 최종적으로 매출이 잡히는 구조라 예약 매출이라는 개념을 중요한 실적 지표로 활용한다.

    내년 매출 전망도 시장 전망치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을 내놨다. 시장에선 내년 연간으로 358억 유로 매출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ASML은 300억~350억 유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적발표에 앞서 자체적으로 연간 매출 추정치를 상당부분 낮춰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발표에 이은 컨퍼런스콜에서도 부정적 전망을 제시했다. 범용 반도체 수요가 내년에도 침체를 면키 힘들다는 점을 재차 문제점으로 꼽았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는 컨퍼런스콜에서 "반도체 부문 수요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고객들이 신중을 기하고 투자를 일부 미루고 있다"면서 "수요 부족 상황은 족히 내년까지는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적 쇼크로 그동안 '슈퍼 을(乙)'로 불렸던 ASML의 명성이 무색해졌을 뿐만 아니라 ASML 실적 악화 원인인 고객사들의 사업 부진 우려는 더 커졌다. 글로벌 증시에서도 ASML의 실적발표를 계기로 주요 반도체주들이 급락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범용 D램을 중심으로 실적이 판가름나는 삼성으로 눈길이 쏠렸다. 삼성은 이미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한 상황인데, 이례적으로 반도체 사업 수장이 입장문을 냈을 정도로 저조한 실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이 9조 1000억 원대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인 10조 원을 밑돌았고 2분기에 비해서도 1조 원 이상 이익이 줄었다.

    삼성의 기대 이하 실적은 반도체 사업을 맡고 있는 DS부문 영향이 컸다. 스마트폰과 PC 등 IT 기기 수요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범용 메모리 비중이 높은 DS부문 실적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5조 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는데 그쳤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분기엔 6조 원대 이익을 냈고 앞서 증권가에서도 6조~7조 원대 이익을 예상했던 탓에 충격이 더 컸다.

    삼성은 이번에 ASML이 부진한 실적을 낼 수 밖에 없었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ASML의 핵심 장비인 EUV를 공급 받는 몇 안되는 고객사 중 하나가 삼성이었는데, 삼성이 파운드리 사업 실적 악화 등의 여파로 장비구매 같은 설비 투자를 선제적으로 늦추면서 타격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시장 대응에 실패한 인텔도 삼성과 함께 ASML 핵심 고객사였지만 사업 악화로 맥을 못 추고 있다. 인텔은 TSMC 다음으로 ASML의 EUV를 많이 도입하기로 한 고객사여서 사실상 ASML의 이번 실적 추락에 직접적 영향을 준 곳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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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ML 실적을 계기로 반도체 시장에 명암이 확연히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 하반기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에 AI 반도체 시장 수요를 얼만큼 흡수할 수 있는지가 본격 드러나면서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AI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는 대장주 엔비디아와 파운드리 1위 TSMC의 아성은 굳건하다.

    엔비디아는 아직 실적발표 전이지만 이번 분기부터 본격 양산을 시작하는 새로운 AI 칩 '블랙웰' 수요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모건스탠리 분석가들과 진행한 설명회에서 이미 블랙웰 1년치 공급량이 완판됐다고 언급해 다시 한번 AI 반도체 최강자 지위를 굳혔다.

    엔비디아 AI 칩을 생산하는 TSMC도 3분기 호실적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6.5% 증가한 236억 2200만 달러(약 32조 원)를 기록해 시장 예상치인 233억 달러를 웃돌았다. 실적발표 직후 주가도 상승하며 장중 시총 '1조 달러'를 터치하기도 했다.

    TSMC는 AI 수요를 고스란히 받은 덕에 AI 칩 생산을 위한 생산기지 확보 계획도 실행으로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TSMC는 현재 미국에 신설하고 있는 파운드리 신공장에 더불어 유럽 지역에 다수의 팹(Fab)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HBM 덕분에 삼성과는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올 3분기에는 지난 반도체 호황기였던 2018년 3분기 이후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증권가에서는 3분기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6조 7000억 원대로 예상하며 삼성전자 DS부문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