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풋옵션 유효하지만 40만9000원은 인정 안돼”판결 놓고 양측 서로 승소라고 주장하며 신경전 지속어피니티, 풋옵션 명분생겼지만 엑시트 장기화 우려신창재 회장, 사실상 풋가격 결정권 갖고 있어 유리
  •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교보생명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교보생명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어피니티간 풋옵션 분쟁이 국제상업회의소(ICC) 판결로 일단락됐지만, 그 해석을 놓고 양측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어피니티가 승소한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신창재 회장이 이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ICC는 지난 6일 신 회장과 어피니티간 풋옵션 중재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풋옵션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주주 간 계약서에 따라 2018년 10월에 행사한 풋옵션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2012년 체결된 주주간 계약서에 따르면 신창재 회장은 2015년 9월 30일까지 교보생명이 상장되지 않을 시, 투자자들에게 풋옵션을 부여하겠다고 약정했다. 

    투자자들의 풋옵션 행사 시에는 기업가치 평가를 위해 30일 내에 양측이 각자의 평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절차에 합의했지만, 신 회장은 풋옵션이 무효라는 이유로 30일 이내에 가치평가보고서를 제출할 본인 의무를 위반했다는 설명이다.

    신 회장이 중재 비용 전부 및 변호사 비용 50%, 본인 비용 전부를 부담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어피니티는 자신들이 승소했다는 입장이다.

    또 재판부는 어피니티가 요구한 40만9000원에 신 회장이 풋옵션을 매수하거나 이자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어피니티는 딜로이트 안진이 평가한 주당 40만9000원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가격이라고 주장했지만, 통상적으로 경영권 프리미엄은 과반 이상이나 주주총회 특별결의에 필요한 지분 이상을 확보했을 때 부여한다. 

    반면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지분율은 24%에 불과하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어피니티 소수지분에 대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부여한 가격을 공정시장가격(FMV)으로 볼 수 없어, 안진의 가치평가보고서는 유효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풋가격이 행사당일의 공정시장가격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확히 기술하며, 풋 행사일(2018년 10월 22일)이 아닌, 2018년 6월 30일을 기준으로 1년치 평균 주가를 사용한 평가방법이 잘못됐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신 회장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한 손해배상 등 어떠한 의무도 없다며 승소를 주장하고 있다.

    즉, ICC 중재는 양측 주장에 대해 일부 손을 들어줬다. 풋옵션 계약이 유효하지만, 풋가격 40만9000원은 과도하게 평가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피니티 측은 “ICC의 중재 판결에 따라 향후 후속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방법과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신창재 회장 측은 “이번 중재로 어떠한 의무도 없어졌다”며 “어피니티 움직임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명분은 어피니티가, 실리는 신 회장이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풋가격이 사실상 신 회장과 합의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피니티는 풋옵션이 유효하기 때문에 다시 풋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열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어피니티 의뢰를 받아 가치평가를 할 회계법인 또는 평가기관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국내 5대 회계법인 중 안진과 삼덕 2곳이 신창재 회장을 놓고 '회계 스캔들'에 휩싸여 국내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어떤 회계법인이 가치평가를 했더라도 그 가격에 대해 신 회장 측이 평가한 것과 10% 이상 차이가 나면 어피니티가 선택한 제 3의 곳에서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번처럼 신 회장이 그 가격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분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차이가 10% 이하면 평균가격으로 결정된다. 40만9000원보다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어피니티 입장에서는 풋가격을 40만9000원 이하로 받을 경우 투자자들의 반발이 우려된다. 때문에 적정 가격에 풋옵션을 행사하고 엑시트하는 것이 어려워, 분쟁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편, 2012년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교보생명에 1조2000억원을 투자했다.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보유 중이던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5000원에 매입하면서 신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했다. 

    교보생명이 2015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에 실패할 경우 신 회장에게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로 풋옵션이 주어졌다. 

    2018년 10월 어피니티는 안진이 평가한 주식 가치 40만9000원으로 풋옵션을 행사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풋옵션 행사가격이 과도하게 평가됐다며 가치평가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어피니티는 ICC에 중재를 의뢰했고, 이번에 판결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