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날아간 이 부회장... 차세대 EUV '하이-NA' 확보전 '사활'내년 시제품 거쳐 2024년 도입... 인텔 이어 TSMC도 선점 완료뒤늦게 확보전 뛰어든 삼성... 이 부회장 '외교력·협상력' 전면에장비 테스트 맡은 IMEC와도 협력 물꼬... 확실한 성과 마련 나서
  • ▲ 네덜란드 ASML 반도체 장비를 둘러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
    ▲ 네덜란드 ASML 반도체 장비를 둘러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년 만에 나선 유럽 출장에서 복귀하면서 출장 성과가 조만간 가시화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쏠린다. 특히 이 부회장은 이번에 네덜란드 ASML사에 방문해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을 위해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경쟁사인 TSMC와 인텔이 이 장비를 선점한 터라 삼성도 이재용 부회장을 앞세워 확실한 성과내기에 집중했을 것으로 보인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7일부터 18일까지 유럽 출장 중 네덜란드 ASML 본사를 방문해 차세대 EUV로 불리는 '하이-NA(High-Numerical Aperture)' 도입에 대해 집중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2025년부터 공급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되는 ASML의 차세대 노광장비인 하이-NA는 7나노미터(nm) 이하 반도체 초미세공정에서 기존보다 회로를 66% 줄일 수 있는 기술이 적용된다. 이 장비는 기존 EUV 보다 약 30% 크기가 더 크고 가격도 4억 달러(약 5100억 원) 수준으로 역대급 규모를 자랑한다.

    ASML은 이 차세대 EUV의 시제품(Prototype)을 내년 상반기까지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시제품 생산 후 테스트를 거쳐 이듬해인 2024년부터는 고객사에 납품이 시작되고 2025년부터는 이 차세대 EUV가 현장에서 가동될 수 있을 것으로 ASML은 예상하고 있다.

    삼성은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이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이미 TSMC와 인텔은 이 차세대 장비를 확보했다. ASML은 이들 외에도 5곳의 고객사에서 5건 이상의 주문을 받아 오는 2025년부터 배송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으로 제대로 된 대외활동에 나서지 못하는 동안 글로벌 경쟁사들이 앞다퉈 ASML 장비 도입을 위해 줄을 선 것이다.

    그 중 무엇보다 의외의 선전을 보인 곳은 인텔이었다. EUV 장비 최대 고객사인 TSMC와 삼성을 제치고 차세대 하이-NA 장비를 가장 먼저 도입한다고 밝혀 업계에 충격을 줬다. 올 초 인텔과 ASML은 하이-NA 관련 협력 발표를 하며 오는 2025년까지 해당 장비를 도입해 제품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는 계획을 과시했다.

    반도체업계에서 가장 많은 EUV 장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TSMC도 ASML의 차세대 EUV 장비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TSMC는 ASML이 이 장비를 도입하는 초기 기업 중 한 곳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구체적인 도입 시점이나 양산 시점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 ▲ 네덜란드 마르크 뤼터 총리와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
    ▲ 네덜란드 마르크 뤼터 총리와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
    이런 상황에서 삼성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무엇보다 경쟁사를 압도하는 결정적 한방이 필요했고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앞서서도 ASML에 직접 방문해 협력관계를 다져온 바 있고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 10월에도 ASML 본사를 찾을 정도로 이들과의 관계에 열의를 나타냈다.

    이에 더해 이번 차세대 EUV 연구·개발(R&D)을 함께 진행하는 유럽 최대 종합반도체 연구소인 아이멕(IMEC)에도 이 부회장이 직접 찾아가 차세대 EUV 장비 도입에 쐐기를 박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IMEC은 이번 하이-NA 개발과정에 참여하는 동시에 ASML이 장비를 완성한 이후 테스트 과정을 전담한다. 이를 위해 ASML이 위치한 네덜란드 벨드호벤(Veldhoven)에 테스트 랩(Lab)을 설립키로 했을 정도다. 이번 차세대 EUV 장비를 개발하는데 ASML이 주축이 되지만 IMEC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이 전격 방문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 15일 벨기에 루벤(Leuven)에 위치한 이 연구소에 찾아가 루크 반 덴 호브(Luc Van den hove) 최고경영자(CEO)와 반도체 분야 최신 기술과 R&D 방향에 대한 논의를 나눴다. 이 논의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번에 도입하게 될 ASML의 차세대 하이-NA 장비와 여기에 적용되는 신기술 등에서 협력하는 방안을 담았을 것이란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이번 유럽 출장에서 처리해야 할 여러 현안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ASML의 차세대 EUV를 도입하는 이슈가 핵심"이라며 "TSMC와 인텔보다 한 발 늦게 협상에 돌입한 만큼 이 부회장의 외교력에 더해 협상에 속도를 낼 수 있는 방안으로 IMEC 방문과 네덜란드 총리 접선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