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국인 근로 요건 완화 효과 ‘미미’숙련공 육성 및 현장직에 대한 투자 요구외국인 쿼터제·주52시간 유연화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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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우조선해양
    국내 조선업계가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수주 호황기를 맞았지만 심각한 인력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력 부족 문제가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와 지자체, 기업들이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12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조선업계에 9월에만 9509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했으며, 내년 6월에는 인력이 1만1099명이 더 모자랄 전망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배를 건조할 인력이 없어 쌓인 일감을 제때 소화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 등 현장에서 젊은 근로자는 찾아볼 수 없으며, 외국인 근로자마저 부족해 업체 간 스카웃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주요 조선사 외에도 주요 협력사의 다수 인력이 과거 조선업 일감 감소 시기 조선업계를 떠났고, 공백을 메울 길이 막막한 상황이다.

    최근 정부는 현재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의 취업 활동 기한을 연말까지로 늦추고 조선업계 외국인 배정 총원을 늘리는 등 외국인 근로자의 근무 요건을 완화했다.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도 숙련도와 근속 기준을 충족하면 숙련기능인력(E-7) 비자로 전환해주는 ‘숙련기능전환인력 제도’를 내년부터 확대하기로 했다.

    이 같은 정부 지원책에도 조선업계의 인력난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확대는 중소·중견 기자재업체에 일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대형 조선사에 투입될 숙련공의 자리는 메울 수 없어서다.

    조선업계의 인력난 해결을 위해 기업과 전문가들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조선업황의 빠른 회복과 함께 ‘K-조선’이 전 세계 수주를 싹쓸이하고 있지만 배를 만들 손이 없어 중국에 경쟁력을 빼앗기고, 산업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날 목포서 열린 ‘전남 서남권 조선산업 인력 정책 연구 토론회’에서 “조선업계의 생산성 향상에도 생산물량 및 친환경 선박 건조 확대로 필요 인력이 증가하고 있다”며 “현재 9만3000명의 인력 수준을 고려하면 부족 인력은 최대 2만명에서 3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토론회는 조선업 인력난 해법을 찾고자 현대삼호중공업이 후원하고 한국노동연구원과 산업연구원의 주관으로 마련됐다. 지역 내 배후도시인 목포, 영암, 무안 등 전남 서남권 인구는 약 40만명으로, 500만명이 넘는 부산·울산·거제 등 동남권의 10%에도 채 미치지 않아 인력 확보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은창 연구위원은 고질적인 조선업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적절히 활용하고, 적정 인력 유지를 위해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기 외국인 근로자로 시황 변동에 대응함과 동시에 국내 인력과 외국인 숙련공을 육성함으로써 적정 규모의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며 “산업계와 정부, 관계기관 등이 협의체를 구성해 적정 인력 규모와 외국인 근로자 쿼터 등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조선산업의 장기적인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설비투자, 연구개발(R&D)도 필요하지만 현장 기능직 인력에 대한 투자도 필요한 시점”이라며 ‘고품질·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고숙련 기능직 정당한 보상’의 선순환 모델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장에서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조선업계의 인력 구조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의 인력난 문제가 시급한 만큼 외국인 쿼터제 폐지와 주 52시간 근무제 유연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부 협력사는 이미 일손 부족으로 물량을 못 받고 있다”며 “내국인 고용인원의 20% 이내에서만 외국인 채용이 가능하도록 한 외국인 쿼터제를 전면 폐지하고, 주 52시간 근무제 유연화로 근로자들이 소득을 증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