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위축영향 러시아, 중국 공장 매물로 내놔인도·동남아 생산기지 확충, 전동화 거점 마련현지 시장지배력 확대, 중·러 재건 여지 남겨
  • ▲ 현대차 인도 첸나이 공장 조립라인 현장 ⓒ현대자동차그룹
    ▲ 현대차 인도 첸나이 공장 조립라인 현장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의 주요 생산거점이 중국과 러시아에서 인도, 동남아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동화를 바탕으로 현지화에 집중하면서 시장에서 영향력도 점차 커지는 추세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19일 임시 이사회를 통해 러시아 공장 매각을 결정했다. 매각 금액은 1만 루블(약 14만5000원)로 2년 안에 되살수 있는 ‘바이백 조건’을 내걸었다. 재인수를 위해서는 전쟁 종결이 선행돼야만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현대차 러시아 공장(HMMR)은 2021년 기준 37만8000여대를 생산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지난해 3월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해 올해에는 단 한 대의 차량도 생산하지 못했다. 전쟁 종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버티기 전략’을 추진했지만 끝내 매각 결정에 이르렀다.

    이번 매각에 다른 현대차의 자산과 영업손실은 약 1조1300억원으로 추산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생산시설과 가동 중지에 따른 손실을 포함한 액수다. 현대차는 수리 서비스 등을 지속해서 운영하며 재진출 가능성을 열어뒀다.

    중국 시장에서도 현지 공장을 잇따라 정리하는 모습이다. 중국은 베이징 3곳과 창저우, 충칭 등 5개 공장을 통해 연간 254만대 규모의 차를 생산해온 최대 생산기지였다.

    현대차 중국법인 베이징 현대는 2021년 베이징 공장을 중국 전기차 업체에 넘겼다. 지난 8월에는 충칭공장을 거래소에 매물로 내놨다. 2017년 준공한 연산 30만대 규모의 충칭공장은 중국 내 판매 부진으로 2021년부터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창저우 공장도 매각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판매 라인업을 13종에서 8종으로 줄이며 당분간 수익성 위주로 경영한다는 계획이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생산 공장을 정리하는 이유는 판매 부진 때문이다. 한때는 현대차의 주력 시장이었지만 현재는 중국 브랜드에 점령당한 상태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전기차 육성 정책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생산과 판매 모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현대차그룹이 중국과 러시아를 대체할 생산기지와 판매 시장으로 점찍은 곳은 인도와 동남아 지역이다. 

    인도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하면서 시장점유율 2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올해 1~11월 판매 대수는 80만4498대로 전년 대비 6.5% 증가했다. 경형 SUV ‘엑스터’를 비롯한 현지 전략 차종을 내세운 덕분이다.

    생산거점으로서 역할도 강화되면서 해외 생산시설 중 최대 규모로 올라섰다. 상반기 라인개선을 통해 인도 첸나이 공장 생산능력을 75만대에서 82만대로 늘렸다. 8월에는 GM 탈레가온 공장을 인수하면서 인도 내 생산능력은 연간 100만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인도의 강력한 전동화 정책에 발맞춰 미래 모빌리티 거점으로서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8월 인도 기술연구소와 공장을 4년 만에 방문했다. 10년간 3조2400억원 투자계획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팩 조립공장 설립과 더불어 내연기관 라인도 전기차로 바꾼다고 공표했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에서 전략 차종의 육성과 생산, 판매까지 가능한 완성차 생산거점을 구축했다. 배터리셀부터 완성차까지 현지 생산과 판매체계를 갖춘 유일한 완성차 업체가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향후 인도네시아 공장은 25만대까지 생산능력을 늘리며 인도네시아는 물론, 아세안 시장 개척을 위한 발판이 될 전망이다. 현지 생산 차량은 아세안 국가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한다는 취지다.

    또한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 준공식을 개최했다. 올해 초 가동을 시작한 HMGICS는 연산 3만대 이상 전기차 생산 역량을 갖췄다. 미래 모빌리티의 테스트베드로서 제조 플랫폼을 실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울산 EV 전용공장 등 주요 전동화 생산거점에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앞서 미국 IRA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준공 시기를 앞당긴 바 있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유럽 생산 전기차에 인센티브를 더 주는 '프랑스판 IRA'를 시행하면서 현지 생산 중요성은 한층 더 부각되는 추세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흥국가 지역에 생산거점을 확대하고 이를 통한 시장 지배력 상승을 꾀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지정학적 리스크 회피와 전동화 생산거점 확대라는 목표가 맞물리면서 현대차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재인수 조건을 내걸고, 중국에서도 프리미엄 차종을 중심으로 전략을 변경하는 등 여지를 남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