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원인 규명 본격화… CVR·FDR 분석 착수미국행 FDR… 커넥터 소실로 국내 분석 불가아시아나항공기 사고 당시 美 NTSB와 신경전
  • ▲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착륙 중이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항행 안전시설에 부딪히면서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지난해 12월29일 오후 사고현장에서 소방 당국이 수습작업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착륙 중이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항행 안전시설에 부딪히면서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지난해 12월29일 오후 사고현장에서 소방 당국이 수습작업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지난달 29일 발생한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7C2216) 참사의 원인 규명이 본격화되고 있다.

    2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사고기의 조종석음성기록장치(CVR), 비행자료기록장치(FDR)를 미국 워싱턴 교통안전위원회(NTSB)와 합동 분석하기로 합의했다. 충돌 직전 9분 동안의 상황이 참사 원인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당국은 분석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사조위는 CVR에서 추출된 자료를 파일 형태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르면 3일 작업이 완료돼 음성기록 분석이 시작될 수 있다.

    반면 FDR은 커넥터 소실로 미국으로 보내 분석이 이뤄진다. FDR은 엔진 상태와 항공기 속도, 고도, 방향, 자세 등 주요 비행 데이터를 초당 여러 번 기록하는 장치다. 항공기 사고원인을 규명할 때 가장 핵심적인 장치로 꼽힌다. 그러나 사고기의 FDR은 전원장치와 자료저장장치를 연결하는 특수커넥터가 분실돼 국내에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NTSB는 우리 정부로부터 받은 사고기의 FDR을 한미 합동조사팀과 함께 분석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전날 브리핑을 통해 "소실된 FDR 커넥터는 전원 공급 기능과 데이터 공급 기능이 같이 섞여 있는데 이를 대체할 수 있는지, 접합 시 완벽하게 붙일 수 있는지 사조위의 기술검토가 있었다"며 "여의치않다고 판단해 미국 현지에서 신속하게 데이터를 추출하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FDR에 기록된 핵심자료가 꼭 미국으로 건너가야 하느냐는 지적에는 "NTSB가 분석하는데 사조위 관계자도 함께 가서 분석할 것"이라며 "우리 전문가도 같이 공동작업을 하기 때문에 우려는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FDR을 외관상 봤을 때 크게 파손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실제로 데이터를 추출해야 온전하게 남아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거 같다"고 부연했다.

    ◇ 미국행 FDR… 공정한 분석 가능할까

    FDR의 분석이 미국에서 진행됨에 따라 조사 과정의 공정성과 협력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과거 2013년 아시아나 여객기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사고 당시 NTSB가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집중 공개해 우리 측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기체결함과 공항의 관제탑 시스템 오류 가능성을 제시한 것과는 상반된 양상으로,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당시 조태환 위원장 명의로 NTSB 데보라 허스먼 의장에게 항의성 협조 공문을 발송해 '객관적인 공정한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경수 국토부 항공안전정책관은 "NTSB는 긴밀한 협조체계가 있고 과거에도 우리와 협력을 해오고 있다"며 "미국이 단독으로 우리 자료를 분석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전문가들이 가서 공동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FDR을 집중 분석하는 경우 국내 조사팀과의 연락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에 대해 전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무안공항 내 임시본부가 마련된 상태"라며 "내부에서 협의해 긴밀하게 세부 역할을 분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원인 규명, 이르면 6개월 내 끝난다… 결과에 따라 개선절차 돌입

    사조위는 이번 사고의 원인 규명에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이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항공사고 보고서는 사고 원인이 단순할 경우 1년 이내에 발표되지만, 원인이 복잡하거나 민감할 경우 2년 이상이 소요되기도 한다. 과거 1997년 대한항공 괌 사고의 최종 보고서는 사고 발생 후 2년 3개월만에 발표된 바 있다.

    한 항공 전문가는 "CVR이나 FDR 분석에서 사고 원인을 특정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나온다면 1년 이내에 최종 조사보고서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장과 정비사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이상없음을 확인한 후 비행을 시작했다"며 "숨겨진 결함 여부는 조사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보고서가 나온 이후에는 사고 원인과 관련한 각종 개선절차에 돌입한다. 이후 결과에 따라 책임여부를 묻거나 민형사상 고소, 고발 등도 이어질 수 있다.

    과거 괌 사고의 경우 최종보고서 발표 후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대한항공의 괌·사이판 노선에 대해 향후 2년간 노선면허 발급을 금지했고, 향후 1년간 국제선 노선배분 대상에서 대한항공을 제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