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억되어야 할 우리의 영웅
  • ▲ 문화평론가 권상희.
    ▲ 문화평론가 권상희.

    [권상희의 컬쳐 홀릭] 제 2연평해전의 영화화 소식이 들렸던 것이 벌써 5~6년 전쯤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투자의 문제, 감독과 배우, 제작사의 교체에 이르기까지 바람 잘 날 없던 이 작품은 들리는 소문만으로도 총체적 난국, 그 자체였다.

    이러다 표류하고 마는 게 아닐까?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간간히 들리는 소식은 그래도 영화 <연평해전>은 포기를 모르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이렇듯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개봉한 영화는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그래도 해냈구나 하는 대견함이 먼저였다.


    2002년 6월, 우리 모두에게 축제로 기억되던 그 시간. 그러나 뜨거운 함성에 가려진 6월 29일의 비극은 마치 모두의 무관심 속에 치러진 그들만의 전쟁, 그것에 다름없었다. 곳곳의 붉은 응원 물결과는 달리 포화 속에서 피범벅이 된 채 죽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면서 같은 시간,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평화와 전쟁이라는 서로 다른 상징성을 갖는다.


    누군가의 희생 덕분에 지속 가능했던 축제, 하지만 아들과 남편, 아빠를 잃은 슬픔을 그 어느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았기에 한없이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유족들. 이제는 주인 없는 아들의 군복을 어루만지며 소리 없는 울음을 토해내는 아버지, 그토록 간절히 살아주기를 바랬던 자식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엄마의 아픔은 세상 그 어떤 슬픔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다. 그 당시 실제 영상자료에서 볼 수 있었던 유족들의 울부짖는 모습은 축제의 함성 속에 매몰차게 함몰되어 버린 듯하다.

  • ▲ 영화 연평해전.
    ▲ 영화 연평해전.

     


    영화는 아주 짧은 장면으로 비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상자들을 뒤로 하고 월드컵 폐회식에 참석하러 일본으로 간 대통령의 소식이 뉴스로 전해진다. 축제를 온전히 축제답게 만들려고 했다는 옹졸한 핑계는 대지 말자. 국가를 지키기 위해 두려움 없이 나아갔고, 마침내 산화되어 버린 젊은 영웅들을 국가는 “축제 중”이라는 미명하에 그렇게 방치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의 상흔을 그렇게 잊어버렸다.



    영화는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다. 스토리의 전개도 대체로 평이한 편이다. 그런 탓에 긴장감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다. 간혹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억지스러운 설정도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눈물 흘리는 것은 우리의 아들들에 대한 죽음, 망각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인정받지 못했던 역사가 13년 만에 영화로 돌아와 재조명 되고 있다. 너무도 늦었기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한편으론 이제라도 그들을 기억할 수 있어서 한없이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영화가 개봉되고 극장을 찾는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계속 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제2연평해전에서 교전 중에 사망한 6명의 전사자예우를 위한 관련법 통과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뒤늦은 소란 떨기지만 모처럼만에 여야가 내는 한목소리여서 반갑다. 얼마 전 승전(勝戰)으로 규정된 제 2연평해전. 표류하던 그들의 희생이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안착하는 듯하다.


    영화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반성을 이끌어내고, 기억 되지 못했던 역사를 상기시켜주는 매개체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 <연평해전>은 그 소임을 온전히 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살아있어서 미안하다는 살아남은 자의 증언이 가슴 아픈 울림이 되지 않도록 지금 구호처럼 떠들고 있는 약속들을 제대로 실천해 나가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오랜 시간 위로 받지 못한 영웅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