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불구, 정치권 '강건너 불구경'…"일본식 장기불황 그대로""원샷법, 때 놓치면 공멸…'기업-경제' 발목잡기 멈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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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가 20년 전 일본이 겪었던 장기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사회에 만연된 '경제위기 불감증'과 정쟁에만 혈안이 된 정치권의 후진적 행태가 경제의 발목을 잡으면서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까'하는 우려 커지고 있다.

    특히 경제계는 위기를 먼저 인식한 대기업집단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몸집 줄이기와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정치권의 행보는 딴판이다.

    경제계가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법률과 제도의 뒷받침이 반드시 선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률안 처리가 뒤로 밀리고 있는 현실은 위기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이 경제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대표적 사례가 이른바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의 처리 지연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전자-자동차-석유화학-조선-건설' 등 그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간판 산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인력 감축을 통한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한편 명운을 걸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다녀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조선과 철강, 해운의 경우 누적된 적자 탓에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한국 경제를 버텨 온 반도체, 스마트폰 등 IT산업과 정유, 석유화학산업 등도 대내외적 악재가 겹치면서 어렵긴 마찬지다.

    정부의 처방전도 먹히지 않고 있다.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금융당국은 금리와 통화량 조절과 같은 전통적 정책 수단을 쓰고 있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 문제가 직격탄을 날린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두 업체가 아닌 간판 산업들이 한목소리로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마다 연말이면 새해 예측을 하게 되는데 올해처럼 주력 산업들이 모두 힘든 때는 없었다"면서 "수익성 회복을 위한 강도 높은 조직개편과 구조조정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휘청거리는 한국 경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수익성이 악화된 부분을 도려내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며 "힘을 다시 키워 신사업에 투자를 하는 선순환 구조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경제계 역시 안일한 생각으로 구조조정을 미루다 병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일본은 구조조정을 외면하는 바람에 장기 불황에 빠졌다"면서 "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는 기업은 더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기를 먼저 감지한 재계 1위 삼성은 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삼성 전체 계열사들은 지난 8월부터 이미 인력 재배치나 희망퇴직 등을 실시해 직원 수를 크게 줄였다. 임원 전체 숫자가 이 기간 동안 무려 3분의 1에 달하는 500여명 정도가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기업들도 내년부터 군살 빼기 작업을 차례로 진행할 예정이다. 살을 깎는 노력으로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서다.

    이렇게 만든 힘을 바탕으로 삼성은 바이오와 전장부품이라는 신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SK도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해 LNG, 바이오, 반도체 등을 미래 먹거리로 키울 방침이다. LG도 최근 단행한 조직개편을 통해 신성장 동력 확보에 집중할 채비를 마쳤다.

    대기업들이 앞장서 본보기 차원의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데도 정치권은 천하태평이다. 원샷법을 비롯해 경제계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안들은 국회에서 먼지만 쌓인 채 외면받고 있다.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여론도 경제회생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구조조정을 비롯해 기업 내부조직 손질과 관련한 법들은 모두 부실기업이나 워크아웃 기업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반면 원샷법은 신용등급이 A 또는 B등급인 정상기업이어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면 사업재편이 가능하도록 5년간 한시적으로 길을 터줬다.

    기업들이 부실을 사전에 예측해 스스로 체질 개선 작업을 벌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 법이 통과되면 제조업의 체질 개선은 물론 내수산업의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소ㆍ중견기업 간 합병이나 대기업의 비핵심 사업부 인수 등도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실이 발생한 뒤 이뤄지는 사후 구조조정의 경우 공적자금 투입, 실업 발생 등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이 같은 손실도 원샷법 통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원샷법이 대기업 오너의 경영권 장악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법 통과를 지연시키고 있다. 과잉공급 분야의 기업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정부의 반박도 강건너 불구경 하듯 나몰라라하고 있다.

    정부는 만약 일각의 걱정대로 경영권 승계 목적이 드러나면 곧바로 승인을 거부하고 과태료를 매길 계획이다. 민관합동 심사위원회도 세워 일련의 과정을 꼼꼼히 감시토록 하는 등 2중 3중의 보호막을 둘 구상이다.

    이 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대다수 기업들은 위기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섣불리 조직개편에 나설 수 없다. 겉으로 큰 상처가 나야만 법 테두리 안에서 사업구조를 재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원샷법 관련 사항이 회사법에 포함돼 많은 기업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최근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계단 올렸는데 이게 오히려 경제 불감증을 키웠다"며 "국가 신용도로는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데다 우리 경제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경제는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어서는 데 수백배의 고통을 부담해야 한다"면서 "위기를 감지했을 때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 체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