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선봉대, 북한 변화 앞장서 이끌 것 "광화문에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동상 세우자"
  • ▲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이 20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가올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데 있어 연맹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 기자
    ▲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이 20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가올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데 있어 연맹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 기자


    “다가올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북한 각 지역에 어떤 문화재가 있고, 다리가 어디 있으며, 지형적 특징은 무엇인지 잘 아는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

    북한의 ‘장마당’에 ‘마켓 시스템’이 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

     
    28일 취임식을 앞둔 김경재(金景梓)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이, 100만명의 ‘통일선봉대’를 만들어 북한의 변화를 앞장서 이끌어 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김경재 회장은 20일 연맹 본부에서 진행된 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가올 통일시대에 앞서 연맹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김경재 회장은 “통일이 된 다음에 허둥지둥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를테면 북한 혜산지역 어디에 무슨 문화재가 있고, 다리는 어디에 있는지, 지형 특징은 뭔지, 북한의 각 지역을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수십 년간 분단된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사업이 필요한데 정부가 직접 나서 하기는 어렵다. 바로 자유총연맹이 앞장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김경재 회장은 북한 내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도 제시했다. 그는 “북한의 장마당은 자본주의 시장의 일종”이라며, “여기에 마켓 시스템이 들어간다면 북한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통일시대에 앞서 남남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대안도 내놨다.

    김 회장은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합치고,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우자고 제안했다.

    김경재 회장은 한국의 현대사를 ‘産民시대’(산업화+민주화)라고 정의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영웅들을 다 함께 국부로 기리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네 명의 전직대통령을 “한국을 빛낸 영웅”으로 평가하면서,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産民시대’를 대표하는 네 명의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 김경재 자유총연맹 중앙회장은, 국론 분열 해소와 지역-계층간 화합을 위해, 서울 광화문에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상을 건립하자고 제안했다. ⓒ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 기자
    ▲ 김경재 자유총연맹 중앙회장은, 국론 분열 해소와 지역-계층간 화합을 위해, 서울 광화문에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상을 건립하자고 제안했다. ⓒ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 기자


    김경재 회장은 1942년 전라남도 여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랐다.

순천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나온 남도 토박이다.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그는 1학년 때 4.19를 온몸으로 겪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며 경무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그는, 바로 옆에서 같은 대학 여학생이 총탄에 쓰러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당시 선전문 작성을 도맡으면서 일찌감치 정치 현실에 눈을 뜬 그는 1972년 공군사관학교 교관으로 병역의무를 마친 뒤, 월간 사상계 편집장과 3선 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 부대변인을 맡아 반정부 운동을 이끌었다.

중앙정보부를 자기 집 드나들 듯 하던 그는,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나선 김대중 의원을 만나 그의 선거를 도왔다. 그 뒤 떠밀리듯 미국 망명길에 오른 그는 1987년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15년 동안 미국에서 반정부활동을 벌였다.

그는 이 시기 미국에 망명한 김형욱 전 중앙정부부장을 만나 ‘김형욱 회고록’을 집필하기도 했다.

1987년 귀국 후 김대중 대통령을 따라 평민당 창당 발기인에 이름을 올린 그는 15대와 16대 국회의원에 잇따라 당선됐다.

정치권에 몸을 담은 동안 그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후보 홍보위원장을 맡아 두 사람의 청와대 입성을 도왔다.

DJ의 책사로, 야당을 대표하는 전략가이자 기획통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정치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40년 동안 DJ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그였지만, ‘햇볕정책’을 둘러싼 견해차이로 DJ의 곁에서 멀어졌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전후로 다시 한 번 시련을 겪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를 끝까지 지지했던 그는, 이듬해 11월 노무현 대통령을 따르는 인사들이 민주당을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합류를 거부했다.

이후 그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지지했으며, 노무현 대통령후보 캠프의 불법 대선자금 실태를 폭로했다.

DJ의 40년 측근이자 책사로, 이른바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전략가로 자리매김했던 그는 올해 1월,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라는 제목의 시사에세이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7.4남북공동성명과 (김대중 대통령의) 615선언은 단어만 다르지 기본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는 기본적으로 같은 나라”라고 평가했다.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 산민 통합은 지역갈등과 세대갈등, 국론분열을 극복하는 상징”이라며, “서울 광화문에 가칭 ‘4대 탑’을 만들어, 한국 현대사를 이끈 4명의 전직 대통령을 기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경재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통일 한국의 아이콘이 돼야 한다. 임기가 끝나면 전직 국가원수로서 통일운동에 앞장서 주실 것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김경재 회장 약력.
▲전남 순천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월간 ‘사상계’ 정치담당 편집자
▲미 뉴욕 ‘독립신문’ 주필 겸 발행인
▲미 북미주 민통연합 전국의장
▲평민당 창당 발기인
▲제15대, 제16대 국회의원(순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별보좌역
▲김대중 대선후보 홍보위원장
▲노무현 대선후보 홍보본부장
▲박근혜 대선후보 기획특별보좌역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청와대 박대통령 홍보특별보좌관
▲2016년 2월 25일, 제16대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 회장 취임.

저서.
2000년 1월 DJ의 독서일기.
2009년 7월 혁명과 우상(1-5).
2016년 1월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

다음은 김경재 회장과의 일문 일답.

  • ▲ 김경재 자유총연맹 회장이 올해 1월 펴낸 자신의 저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 기자
    ▲ 김경재 자유총연맹 회장이 올해 1월 펴낸 자신의 저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데일리 정상윤 사진 기자



  • 1. ‘북한’과 ‘통일’을 주제로 한 말씀을 많이 하고 계신다. ‘통일선봉대’를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밝히셨는데, 무엇을 위한 조직인가?

    다가올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업이다.
    100만명의 통일선봉대를 만들어, 이들을 북한의 각 지역 전문가로 육성하겠다.

    이를 테면 북한 정주, 나진, 혜산 어디에 다리가 있고, 무슨 문화재가 있으며, 그 지역 특산물은 무엇이고, 지형적 특징은 어떤지를 잘 아는 전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평화통일을 준비하고, 남북한 양쪽의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 장마당은 일종의 자본주의 시장이다. 장마당 시스템과 상품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미 북한에는 장마당을 통해 자본주의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 여기에 마켓 시스템을 도입하면 북한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이 통일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북한 김정은이 버텨내지 못할 정도로, 통일운동의 기운이 넘쳐나야 한다.


    2. 북한에 대한 회장님의 평가를 말씀해 달라.

    인류역사상 김정은 같은 독재자는 없다. 저렇게 잔인한 사람이 없다.
    가장 최측근인 총참모장을 세 명이나 참혹하게 죽였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 인간성에 대반 반역이자 배신이다.
    북한정권의 모습은 세계사적 치욕이다.
    외국 사람들이 ‘코리아’라고 할 때 ‘갤럭시’만 떠올리는 게 아니다. 그들에겐 김정은도 ‘코리아’다.


    3. 광화문광장에 이른바 ‘4대 탑’을 만들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대한민국을 세우고 6.25 전란에서 나라를 지킨 이승만, 대한민국 발전의 기틀을 다지고 산업발전을 이끈 박정희, 87년 민주화의 주역인 김영삼과 김대중, 이 네 사람을 건국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이분들의 동상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우자는 것이다.


    4. 네 분 대통령의 동상을 광화문광장에 세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 ▲ 1964년 독일 방문 일정 중 파독광부들을 찾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찰 모습.ⓒ 사진 제공, 권이종 박사
    ▲ 1964년 독일 방문 일정 중 파독광부들을 찾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찰 모습.ⓒ 사진 제공, 권이종 박사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거리에 조선시대 위인만 계신다. 조선시대 영웅들 옆에 한국의 영웅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국론 통일과 지역-계층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네 분 대통령을 국부(國父)로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박정희 옆에 김대중의 동상에 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민족과 국민의 화합을 상징한다.
    그리고 네 분의 동상 앞 비문에 “이 앞에서 다시는 분열을 말하지 말라”는 문구를 써 놓는다면, 동상은 국가정체성을 상징하는 기념물이 될 것이다.


    5. 올해 1월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라는 시사에세이를 펴내셨다. 
    이 책을 보면,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과 관련한 일화가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그 동안 ‘진보’가 취한 입장과는 다른 내용이 많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솔직한 생각이 궁금하다.

    한 줄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6.25 전쟁에서 이 나라를 지켜낸 분이 바로 이승만 박사다.
    박정희 대통령은 압축 성장을 통해 산업발전을 이끈 국가 지도자다.


    6. 과거부터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분들은 “이승만은 친일파, 박정희는 독재자”라는 프레임을 완고하게 지키고 있다. 이들의 공(功)을 이야기하면 공보다 과(過)가 훨씬 더 크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대통령 한 분들 가운데 단점 없는 사람이 누가 있나?
    16년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해외의 시선이 국내와는 다르다는 것을 체감했다. 
    박정희와 이승만의 존재를 무시할 수가 없다.


    7. 저서를 보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많이 나온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대학교 1학년 때 4.19가 났다. 스크럼짜고 경무대 앞까지 직접 갔다. 당시 서울대 미대생 여학생이 바로 앞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내가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이승만 반대했던 사람이 나다. 그런데 일주일 뒤 4월26일인가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하는 날이었다. 그날도 현장에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울더라. 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저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나 생각했다. 그때 “이승만 이 사람이 이 나라 국민의 심성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는 그 무언가가 있구나”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연구한 이승만은 고독한 사람이다. 젊은 시절 왕정 뒤집자고 혁명을 시도했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한성감옥에 5년 넘게 수감돼 있던 사형수다.

  • ▲ 이승만 대통령의 저서 독립정신. ⓒ 뉴데일리DB
    ▲ 이승만 대통령의 저서 독립정신. ⓒ 뉴데일리DB



  • 그런데 이 사람이 아무런 참고서도 없이 ‘독립정신’이란 책을 섰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 뒤에 미국 가서 박사학위 받고 논문을 썼는데, 그게 바로 ‘영세중립국론’이다.

    사실 미국 가서 박사학위 받고 온 사람들이 쓴 논문 보면, 논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이 꽤 많다. 
    그런데 이승만이 끈 영세중립국론이란 논문은, 차원이 다른 청치철학서로, 지금 봐도 손색이 없는 아주 탁월한 논문이다. 

    특히 이승만의 혜안은 대단하다.
    그는 “일본 놈 잡을 수 있는 건 미국밖에 없다”고 봤는데, 당시엔 다들 욕했다.
    그런데 그의 견해가 맞았다. 결국 일본은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에게 무릎을 꿇었다.

    6.25때 이승만이 미국 설득해서 유엔군 끌어오고, 반공포로 석방하면서 미국 압박하고, 이렇게 안 했으면, 그때 우리 정부는 남해안에 빠졌을 거다. 이런 사람 대한민국에 없다.


    8. 그래도 이승만의 공보다는 3.15부정선거와 같은 부정적 측면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승만은 이기붕이 망쳤고, 박정희는 차지철 같은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됐다.
    제가 40년 모신 김대중 대통령도 말년에 실수를 했다.
    어떤 지도자든 功過가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대통령의 過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過는 민족적 반성의 과제로 삼고, 功은 높이 평가하자는 것이다.


    9. 김대중 대통령 뿐만 아니라 김영삼 전 대통령도 국부로 존경해야 한다고 하셨다. YS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한 가지 더, 다른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민주화는 김대중 대통령 혼자 이룬 것이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YS를 절대로 무시하면 안 된다. DJ와 YS는 경쟁도 했지만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다.

    이명박,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대 이후 재임한 분들이니, 이들에 대한 평가는 후세에 맡기는 게 맞다. 전두환, 노태우 두 분의 경우, 스스로를 국부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