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11월 2일 의결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2개월이 넘도록 법제처에 발목이 묶여 있다.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한 방송법의 하위법령을 정비해야할 법제처가 시행령을 붙잡고 있어 본격적인 미디어 융합시대 출범이 늦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방통위는 2010년도 업무보고에서 방송통신·미디어 산업 육성을 첫번째 아젠다로 설정하고 신규사업자 시장 진입, 방송광고시장 경쟁 도입, 차세대 방송통신 기술선도 등 핵심과제를 밝혔지만 이를 추진할 법적 근거가 없어 법제처 통과만 기다보고 있다. 당초 목표와 달리 종편과 보도채널 선정은 하반기로 미룬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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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연 법제처장 ⓒ 연합뉴스
    이같은 논란의 한 가운데 이석연 법제처장이 있다. 이 처장은 구랍 국회 예결위원회에 출석해 "법제처 심사는 마쳤으나 미디어법 시행령에 대한 정치적 타결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국민의 뜻과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부합하는 방안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며 시행령 처리가 미뤄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국회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헌재 결정 직후 이 처장은 "국회가 재논의를 해 절차적 하자를 치유하라는 취지로 본다. 이는 헌법적 가치관에 입각한 답변"이라고 말해 좌파매체를 중심으로 또다른 미디어법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법제처 관계자는 11일 "결재안은 법제처장이 갖고 있다. 이 처장의 결정에 달려있다"면서 "이 처장이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고 밝힌 만큼 매듭지어지겠지만 현재로선 그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처음(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에는 법에 절차적 하자가 인정됐으니 국회에서 이를 치유해 흠결없는 법을 만들어 달라는 뜻이었던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미디어법이) 형식적으로 유효하니 하위법령을 만들 의무가 있는 법제처로서 마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라며 "해도 바뀌었으니 조만간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업무를 진행해야할 방통위는 법제처만 쳐다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아직 법제처에서 변동 사항이 없다는 답만 돌아오고 있다"며 "매일 실무선에서 요청을 하고 있지만 언제 처리될지 기한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적으로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 처장의 '알 수 없는 소신'이 개정된 미디어법 시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셈이다. 이 처장은 여전히 국회의 '정치적 타결'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청구인 측 대리인을 맡았으며 군 가산점제도, 행정수도이전특별법 등 40여 건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면서 여론의 주목을 끈 바 있다.

    취임 후에도 이 처장은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임기제 기관장들의 사퇴 논란에 대해 "임기제라는 헌법적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 상충하는 문제여서 유보한다. 논란의 기준점은 헌법 정신이 돼야 한다"며 여권 전반적 입장과 다른 견해를 밝히거나 "의원입법 가운데는 법의 기본이 안된 것도 있다. 함량미달의 의원입법을 받아들여 예산낭비 등을 초래한 예가 많은 만큼 법제처는 이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하겠다"면서 국회를 직접 겨냥하는 등 '튀는' 행보를 보여왔다.

    또 이 처장은 국정원이 불법사찰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변호사를 고소한 데 대해 "시민사회의 자정능력에 맡겨야 한다"고 밝혔으며, 공무원노조의 민노총 가입 사태에 대해서도 "불법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방송법 시행령에 관한 이 처장의 결정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다리다 못한 여권내 요구도 거세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 처장은 오는 13일 예정된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리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일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신년기자간담회에서 "작년 국회 통과가 되지 못한 코바코(KOBACO) 관련 법도 올해 2월 정기국회에는 다시 논의될 것으로 보이며,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도 법제처가 더이상 미룰 빌미가 없을 것"이라며 이 처장을 압박했다.
    또 한 여권 고위관계자는 "법제처가 통과를 미루고 있는 것이 이 처장의 개인적 소신인지, 단순한 '몽니성'인지 알 수가 없다"면서 "미디어융합시대에 걸맞는 산업육성을 위해 한 시가 급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행령 심의를 더 이상 늦추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은 "이 처장은 잘 알려진 보수세력의 법률가이기 때문에 법률가로서 자신의 소신에 따라 시간이 걸린 것 같다"면서 "이미 결정된 사항인데다 이 처장이 새로운 미디어시대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이해하기 때문에 별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곧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방통위가 지난해 의결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 신문사가 방송사업에 진출할 때 제출해야 할 자료 및 공개 방법 △ 일간신문의 구독률 산정기준 △ 간접·가상 광고 허용 범위 △ 방송연장 명령제도 및 허가 등의 유효기간 단축 △ 미디어다양성위원회의 직무 범위 및 구성과 운영 방안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