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상인 어울어져 ‘문화 난장’ 2년째공연·체험·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나시장인지 복합문화센터인지 모를지경
  • “청주 가경버스터미널 시장 상인들이 바람났어~”

    박명수와 G.드래곤이 부른 노래가 아니다. 정말 시장 상인들이 바람난 모양이다. 라디오 DJ를 하려고 가게를 비우고, 밴드 연습으로 밤을 새운다. 왁자지껄 다방 수다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도대체 장사는 언제 할까? 걱정이 되는데 매출은 오히려 늘었단다. 충청북도 청주시 가경터미널시장 상인들 사이에 문화 바람이 난지 2년. 그 열기가 점점 더 후끈해진다.

    청주 시외버스 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가경터미널시장은 서부 지역 아파트의 젊은 입주자들과 농사를 지으며 대대로 살아온 장노년층 원주민들이 두루 찾는 곳이다. 가경터미널시장 의 상인과 손님들은 함께 즐기며 머무는 시장을 차근차근 만들고 있다. 가경시장에서 사람들은 저녁 찬거리만 보고 훌쩍 떠나는 객이 아니라 모두가 자리 펴고 앉아 맛있고 재밌고 신기한 것들을 나누는 주인들이다. 방송국,복덕방,동아리,아트마켓,다방,공연,체험놀이... 여기가 시장인지 종합 문화센터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범상치 않은 놀거리들이 즐비하다 못해 난무한다.

  • 충북 청주시 개신동에 사는 주부 박지현(39)는 웬만하면 2㎞ 이상 떨어진 가경터미널시장을 찾는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화공연도 볼 수 있고 다방에서 무료 커피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박씨가 이 시장을 자주 이용하게 된 데는 ‘문화쿠폰’이 있어서다. 시장에서 5000원어치 물건을 사면 액면가가 100원인 문화쿠폰 1장을 준다. 쿠폰 30장(15만원 상당)을 모으면 3000원, 50장(25만원 상당)을 모으면 5000원짜리 상품권으로 바꿔준다. 박씨는 “상인회 1층에 문을 연 만남의 공간 ‘다정다방’에서 쿠폰 5장을 주면 커피 등 음료를 마실 수 있어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군부대 앞에 있을 법한 촌스러운 이름의 다방이지만 커피는 뜻밖에도 핸드 드립이다. 바리스타의 솜씨도 소문났다. 모과차와 유자차는이웃 ‘재미재미공방’에서 배달해온다.

    가경터미널시장의 변신은 ‘문전성시’ 프로그램 덕분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충북도, 청주시의 예산지원을 받아 벌이는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이다.
     
    93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는 이 시장은 인근에 4개의 대형마트와 대형시장에 둘러싸여 있지만 2007년 공동쿠폰제 도입 후 매출이 연 20% 신장됐다. 문화쿠폰도 기존 공동쿠폰에 문화 기능을 더한 것이다.
     

  • ‘문화복덕방’이 문화 바람을 부채질한다. ‘신고벗고’란 이름의 건물에 마련된 문화복덕방은 입주예술가(가경예술인)와 주민, 상인들의 소통공간이다. 해금, 통기타반, 연희단 ‘마중물’, 영화 동아리 씨네오딧세이, 민들레의 노래, 국악실내악단 ‘라임’ 등이 주민과 상인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공연을 하고 동아리의 활동을 도와주고 있다.

  • 시장 방송도 흥행이 잘 된다. 배추를 감칠 맛나게 버무린 겉절이와 같이 시장의 활력소가 되겠다는 뜻에서 '겉절이 방송국'이라고 이름 붙인 이 방송은 시장에 작은 버스를 개조해서 방송한다. 시장문화예술 공동체 ‘있소’와 시장 상인들이 주축이 돼 대본을 작성하고 진행을 한다. "여기는 겉절이 방송국입니다. 청주 가경터미널시장을 찾아주신 고객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힘찬 버스’에 만들어진 라디오 부스에서 DJ가 힘차게 이야기를 한다. 장사하기도 바쁜데 두팔 벌리고 나선 DJ는 동해횟집 윤영민 사장이다. 한 달에 한 번 공개방송이 가장 인기가 높다. 매주 화, 수, 목 2시부터 4시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데 본방을 사수하시는 분들이 많다. 청주시의 명물이 됐다.

    곳곳에서 마치 잔치판 벌어지듯 다양한 문화행사가 흥을 돋는다.

    청주놀이마당 울림의 이광진 매니저는 "옛 장터는 물건을 사고 팔뿐 아니라 시끌벅적한 문화가 살아있는 현장이었다"며 "가경터미널시장이 그 맥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6시 사이에 출몰하는 거리예술가는 손님들에겐 깜짝쇼다. 상인회와 문화예술공연 단체 '있소‘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매주 토요일 ’문화 난장‘을 벌인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참가해 통기타 공연, 마당극, 록그룹 밴드, 판소리 등 말 그대로 '시도 때도 없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친다. 단골 출연자인 ‘민들레의 노래’ 소속 권택중씨의 통기타 공연, 로큰롤 보컬그룹 ‘밴드조’의 신나는 연주는 언제나 인기다. 권택중씨는 시장의 로고송과 시그널음악까지 만들었다.

    우산 포크나이프, 나만의 티셔츠 만들기, 스탬프 등 아트마켓, 채반 만들기, 페이스 페인팅 등의 체험행사도 매주 만날 수 있다. 가경예술인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제작하거나 이들이 만든 상품들을 저렴하게 살 수도 있다.

  • 국악인들이 우리 춤, 판소리 등을 즉석에서 지도해주기도 하고 미술 작가들이 자신의 공예품을 들고 나와 판매하는 '예술마켓'도 열린다. 호응이 좋아 ‘다정다방’ 옆에 언제나 예술작품을 살 수 있게 부스가 설치되었다.

    문화소통공간인 ‘덤’에선 상인들과 시장 주변 주민들이 평소 배우고 싶었던 예술 작업과 동아리 활동이 이뤄진다. 다목적 공방인 ‘재미재미공방’은 엄마와 함께 시장에 온 아이들이 체험놀이 학습을 하는 곳이다. 엄마들은 월·화요일에 나무소품, 수·목요일엔 등나무로 채반·바구니 만들기, 금요일엔 조각천으로 수첩·지갑 만들기 등 요일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문전성시 기획을 맡은 ‘있소’의 최정인 팀장은 올해 시장상인들을 문화 활동가로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시장상인들이 직접 가이드가 되어 누구나 시장의 프로그램을 해설할 수 있고 공연・문화기획도 직접 할 수 있도록 상인들을 교육하겠다는 계획이다. 최팀장은 “문화시장으로 자리잡은 가경터미널시장은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끝나도 문화와 함께 경제가 살아 숨 쉬는 시장으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 청주 가경터미널시장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위치했다. 가경동은 청주군 서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인데 청주시가 서쪽으로 확장되면서 청주시로 편입되었다.

    동네 이름으로는 ‘가경골’이라 부르는데 이는 경치가 아름답다는 ‘가경’에서 유래되어 그대로 가경동이 된 듯 하다. 가경골은 ‘안 가경골’과 ‘바깥 가경골’로 나누어지는데 가경동에 있는 청주시외버스터미널 일대는 바깥 가경골에 해당한다.
     
    주로 논밭이었던 이곳은 시외버스터미널, 고속버스터미널이 시내로부터 옮겨오면서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청주의 중심 상권이 이곳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버스터미널과 아파트 신축에 따른 주민의 증가로 가경터미널 시장이 1994년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문화관광체육부·충북도·청주시의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청주 가경터미널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문화체육관광부 평가에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A' 등급을 받았다.

    문전성시 가경터미널시장 프로젝트는 2010년 3월 문전성시 프로젝트 시범사업에 선정된 이후 '공동문화 쿠폰' 활성화와 '문화복덕방' 활동을 통해 시장 문화예술 활동 인프라를 조성하고, 관계형성을 통해 주민, 상인, 예술가 사이의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실천했다.

    또 볼거리, 즐길거리 가득한 문화시장 조성을 통한 시장 유입인구 확대를 목표로 지역문화공동체로서의 시장 소통 기능의 회복과 문화예술시장으로 특성화된 가경터미널시장의 브랜드 가치 창출에 노력했다.

    글·사진=양호상 기자 / 가경 터미널 문전성기 기획 팀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