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입자물리연구소, “힉스 발견 확신”..공식 선언은 뒤로 미뤄 공식 발견되면, ‘만물의 근원’ 존재 확인 학계, “추가 검증 필요” 신중한 반응
  • ▲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홈페이지 화면 캡처.ⓒ
    ▲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홈페이지 화면 캡처.ⓒ


    137억년전 우주 탄생의 수수께끼를 사람이 풀 수 있는 날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왔다.

    현지시간으로 14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이탈리아 라트일레에서 열린 물리학 학술대회에서 “힉스 입자(Higgs boson) 발견이 확실해 보인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앞서 CERN은 지난해 7월 [힉스 입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새로운 입자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확률은 99.99932~99.99994%라고 밝혔다.
    다만 추가적인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며 확정적인 발견 선언은 뒤로 미뤘다.

    CERN은 10조원 이상을 투입,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 국경 사이에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건설하고, 2008년부터 힉스를 찾는 연구를 계속해왔다.

    두 개의 양성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우주 탄생 당시와 유사한 상황을 만든 뒤, ATLAS와 CMS 두 대의 대형 검출기를 통해 힉스 입자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다.

    이 연구에는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물리학자 수천명이 참여했다.
    한국도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입자물리학)를 비롯 다수의 학자들이 연구에 매진했다.

    이날 CERN은 지난 해 보다 더 확실한 어조로 힉스 입자의 존재 사실을 알렸다.
    연구소측은 지난 해보다 2.5배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라며, 발견을 사실상 확신했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이 힉스입자임이 분명하다.

    이론적으로 예측된 힉스의 가장 큰 특징인 회전(스핀)이 없다는 점을 추가로 확인했다.

    힉스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 CMS연구팀 대변인 조 인카텔라


    일부 외신 및 국내 언론은 이런 CERN의 발표에 터 잡아 힉스 발견을 단정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CERN의 발표 소식을 접한 학계의 반응은 의외로 신중하다.

    CERN이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전무결한 ‘발견’을 한 것으로 단정짓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최근까지 CMS 한국 연구팀 대표를 맡았던 박인규 교수도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새로운 데이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힉스 입자를 발견할 수 있다는 진전된 가능성을 시사한 것.
    최종 발견 선언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어 박 교수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힉스 입자가 존재한다는 선언을 위해서는 8가지 경로를 통해 입자의 붕괴를 확인해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4가지 경로에서만 명확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발견한 입자가 힉스인지 공식 확정하려면, 이것이 붕괴되면서 이론이 예측한 것과 같은 특정한 성질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붕괴 데이터 중 일부만 발표했기 때문에 힉스 입자가 발견됐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힉스 입자는 6개의 양성자로 붕괴한다.

    CERN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4개는 이론과 일치하지만, 나머지 2개의 양성자에 대한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았다.

    나아가 박 교수는 이번 발표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CERN이 공식적으로 힉스 입자가 발견됐다고 발표한 것이 아니다.


    CERN의 이번 발표가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지난주 참여 과학자들이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봐도 알 수 있다.

    지난주 힉스를 검출하는 ATLAS와 CMS 과학자들은 이탈리아 모리온디에서 열린 고에너지 학회에서 문제의 입자가 힉스일 확률을 99.6% 수준으로 추정했다.

    이같은 결과를 놓고 볼 때, 지난해 연구팀이 확인한 입자의 정체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힉스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단언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추가 검증을 통해 힉스 입자의 존재가 확실히 규명된다면, 인류는 우주 탄생의 비밀을 푸는 목전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은 우주 탄생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현대물리학의 도전 과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러나 만약 추가 검증과정에서 문제의 입자가 힉스가 아니라 새로운 입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물리학계는 그동안 애써 정립한 기존 이론의 틀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무거운 숙제를 짊어지게 된다.

    우주탄생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학설인 [표준모형] 역시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CERN의 추가 검증과정에 전 세계 물리학계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CERN의 발표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힉스 입자는 흔히 [신(神)의 입자], [창조의 천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힉스는 [표준모형]에 나오는 17종의 입자 중 하나다.

    현대물리학의 근간인 [표준모형]은 모든 물질이 6쌍(12개)의 구성입자와 힘을 전달하는 4개의 매개입자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한다.

    16개 입자는 이미 실험을 통해 존재가 확인됐다.
    그러나 각 입자의 성질과 질량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가설을 세운 이가 바로 영국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다.

    영국 에든버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있던 그는, 1964년 다음과 같은 가설로 의문에 답을 제시했다.

    이들 16개의 입자에 질량과 성질을 부여한 또 다른 무거운 입자가 존재한다.


    피터 힉스 교수가 제안안 표준모형에 따르면, 우주 탄생 직후 생겨난 입자들은 질량이 ‘0’이었으나, 힉스의 영향을 받은 ‘힉스장(場)’과 상호 작용하면서 질량이 생겨났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우리가 부르고 있는 ‘힉스 입자’라는 명칭을 만든 이가 한국인 물리학자 故 이휘소 박사라는 사실이다.

    이휘소 박사에 의해 이름이 붙여진 힉스입자는, 반세기가 넘도록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다.

    물질을 이루는 16개의 입자에 각각의 질량과 성질을 부여하는,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면서도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137억 년 전 우주 대폭발 때 나타났다가 바로 붕괴돼 사라진 입자.
    힉스입자의 발견은 이래서 중요하다.
    힉스의 발견은 곧 만물의 근원을 확인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1993년 6월 24일, 미국 뉴욕타임즈는 한 수학자의 ‘증명’ 사실을 1면 사이드 기사로 내보냈다.
    ‘수학’이 전 세계 최 유력 언론의 1면을 장식한 것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다.

    <세기를 넘은 수학의 미스터리, 마침내 유레카(eureka)를 외치다>

    문제가 나오고 무려 350년 동안 그 어떤 수학자도 풀지 못했던 수학계 최대의 난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마침내 풀린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350년의 비밀을 풀어 낸 사람은 영국의 수학자 엔드류 와일즈였다.

    그는 하루 전날 자신이 몸담았던 케임브리지 대학 뉴턴연구소에서 열린 역사적인 강의를 통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맞다는 증명에 성공한다.

    수학에 이어 이제 물리학이 [유레카]를 외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