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행장 배제한 결정… 내부 갈등 진화 사실상 불가능
  • ▲ 국민은행 이사회가 한국IBM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로 했다. ⓒ NewDaily DB
    ▲ 국민은행 이사회가 한국IBM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로 했다. ⓒ NewDaily DB

    국민은행 이사회가 한국IBM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로 했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23일 여의도 본점에서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안건을 의결했다.

◇ "시스템 계속 쓰려면 89억 내라니… 공정거래법 위반"

이사회는 "한국IBM의 시장행태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판단해 이를 당국에 신고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회는 또 "은행 IT본부 보고에 따르면 IBM은 국민은행이 수차례 요청하는 OIO 계약(Open Infrastructure Offering 계약 :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등을 제공받는 계약) 연장 조건에 대해 아직 응답이 없다고 한다"고 며 "이는 당초 계약이 정한 대로 현재의 월간 사용료 26억원을 내년 7월 계약 만료 이후 89억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IBM과의 메인프레임 시스템 사용 계약이 끝나는 내년 7월 이후 은행이 시스템을 연장 사용할 경우 매달 약 89억원의 할증 사용료를 지불하도록 한 기존 계약 내용이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유닉스(UNIX) 체제로의 전환 사업 입찰이 무산된 것도 IBM 측에 책임을 돌렸다.

이사회는 "IT본부는 또 유닉스 사업자들이 사업 지연 시 부담할 지체상금(지체보상금)과 사업추진의 불확실성으로 응찰을 포기했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유닉스 전환 사업자를 모집할 때도 작업 기간이 내년 7월을 넘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할증 사용료를 모두 해당 사업자가 부담토록 했기 때문에 업체들이 이에 부담을 느껴 응찰을 포기했다는 설명이다.

국민은행은 이사회 갈등으로 유닉스(UNIX)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사실상 중단돼 내년 7월 이후에도 일정 기간 기존 IBM 메인프레임 시스템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사회는 "여러 정황을 검토한 결과 한국IBM 및 IBM의 가격 정책이 독점이윤 추구를 위해 사회적 후생을 가로막는 시장폐해를 일으킨다고 보고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공정위에) 신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중웅 이사회 의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신고로 한국 금융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IBM의 태도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인 강희복 시장경제연구원 상임이사도 "2010년 유럽연합(EU)에서도 IBM을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로 시정한 사례가 있다"며 "IBM은 시장을 혼란시킨 점에 대해 공정위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행장 배제한 신고 결정…이건호 리더십 타격 불가피

한편 이날 임시 이사회 개최와 안건 상정은 이건호 행장과 정병기 감사는 물론 은행 임원진의 관여도 배제한 채 사외이사들이 직접 주도해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 법무실도 공정위 신고 건에 대해 법률 검토를 한 결과 신고 대상이 되지 않으며 신고를 강행할 경우 한국IBM으로부터 명예훼손 등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물게 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는 것이다.

사외이사들은 은행 법무실 의견과 별도로 법률자문을 구해 신고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은행 경영진이 아닌 사외이사들이 경영 안건을 이사회에 직접 상정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날 이사회 결정으로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국민은행 이사회의 내부 갈등은 자체 진화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행장도 사외이사들의 신고 강행으로 최고경영자로서의 위상에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