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대신 김용환?'...유연한 소통 주목
  • ▲ NH농협금융 김용환號의 '색깔내기'가 시작됐다ⓒ뉴데일리 DB
    ▲ NH농협금융 김용환號의 '색깔내기'가 시작됐다ⓒ뉴데일리 DB

     

    마침내 칼을 빼내든 모양새다.

    NH농협금융지주 김용환 회장을 두고 하는 얘기다. 취임 후 6개월여, 묵묵히 내실다지기에만 골몰하던 김 회장은 최근들어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법은 단호하고 지향은 뚜렷하다.

    지난 16일, 계열사 CEO들이 참석한 '경영관리협의회'.

    김 회장은 "학연, 지연 등에 의한 승진을 없애겠다", "인사청탁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겠다", "계열사 인사는 성과우선"이라며 전례없이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농협은행장 연임 여부와 새 은행장 후보자, 계열사 사장단 인사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더욱 주목을 끌었다.

    농협금융은 "(김 회장 발언이) 은행장 등 임기 만료에 따른 조직 내 분위기를 의식한 것"이라고 확인하며 이례적으로 김 회장 발언을 그대로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김 회장은 이날 "품위 및 청렴 손상 행위가 확인되면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벌하겠다"며 연말과 인사시즌을 맞는 임직원들의 '엄정한 복무 기강 확립'도 주문했다.

     

  • ▲ 김용환 회장의 지향은 농협중앙회와 금융지주와의 윈윈. 하지만 은행장 인사권 행사를 시발로 새로운 위상관계가 정립될 수도 있다 ⓒ뉴데일리 DB
    ▲ 김용환 회장의 지향은 농협중앙회와 금융지주와의 윈윈. 하지만 은행장 인사권 행사를 시발로 새로운 위상관계가 정립될 수도 있다 ⓒ뉴데일리 DB


    19일 NH핀테크 혁신센터 개소식에서도 "개인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 중"이라며 "성과 중심의 인사를 반드시 정착시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농협금융 주변에서는 취임 6개월을 넘긴 김 회장이 비로소 전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의 관심은 연말 임기가 만료되는 차기 농협은행장 선임에 모아진다.

    연금 분야 등의 무난한 실적을 바탕으로 현 김주하 농협은행장의 연임을 점치는 분위기가 많지만 김 회장이 이제 자기사람 뽑기에 나설 것으로 보는 정반대의 시각도 적지 않다. 연임에 배타적인 내부 분위기도 한 몫한다. 새 행장을 뽑을 경우 이경섭 NH농협금융지주 부사장, 최상록 농협은행 수석 부행장, 허식 농협상호금융 대표 등이 유력 후보군으로 꼽힌다.

    지난 20일 농협중앙회장이 추천한 인사 1명, 2명 이내의 사외이사, 2명 이내의 지주사 집행간부 등으로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꾸렸지만 이번에야말로 김 회장의 의중 가장 중요하다는게 중평이다. 

    앞서 김 회장은 지난 국감 때부터 중앙회의 입김에서 벗어나 은행장 선임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때마침 1월로 예정된 중앙회장 선거와 맞물려 셈법이 복잡하지만 이번 은행장 선출은 농협금융의 독자적 인사권 확보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농협은행은 최상록 수석부행장(경영기획), 이종훈(여신심사) 김광훈(리스크관리) 신승진(정보기술) 부행장 4명의 임기도 올 연말 동시에 끝난다. 김 회장이 조직의 체질 개선을 위해 대규모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손생보와 카드, 증권 등 금융 계열사에 대한 김 회장의 장악력을 판단해볼 수 있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 ▲ 농협금융이 명실상부한 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지배구조를 벗어냐아 한다는 지적이 높다ⓒ
    ▲ 농협금융이 명실상부한 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지배구조를 벗어냐아 한다는 지적이 높다ⓒ

     

    자산 400조에 육박하는 농협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늘 폐쇄적인 지배구조를 지적받아왔다.

    2012년 신경(금융·경제)분리를 거쳐 금융지주를 출범시켰지만 금융지주는 사실상 최원병 중앙회 회장과 대의원 조합장들의 입김에 크게 좌우돼 왔다. 농협법에 의거해 관리·감독은 물론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지분 100%를 가진 중앙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농협', 'NH' 명칭 사용대가로 2013년 4535억원, 2014년 3315억원을 냈지만 오히려 중앙회의 눈치를 봐야 했다. 금융지주와 중앙회 산하 단위농협과의 금융업무 중복 비효율성을 뻔히 알면서도 입조차 떼지 못했다.

    신동규 전 농협금융 회장이 직을 떠나며 "농협금융은 제갈공명이 와도 안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은 농협 폐쇄성의 대표 사례다.

     

  • ▲ 신경 분리후 농협의 지배구조ⓒ농협중앙회
    ▲ 신경 분리후 농협의 지배구조ⓒ농협중앙회

     

    김용환 회장은 이같은 사정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지만 한결 유연한 스탠스를 보이며 차분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는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과의 관계가 '위크 포인트'가 아닌 차별화된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취임 후 역점을 둬야 할 사항으로 해외진출을 꼽았던 김 회장은 "농협이기 때문에 농협 관련 개발 사업이 많다"며 "가령 중국의 유기농 사업에 농업이 나가면 파이낸싱(자금지원)을 한다든지, 해외 현지법인에 지분 투자를 통해 배당이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하며 농협을 디딤돌 삼은 해외진출전략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또 "농협은 농협경제가 있고, 금융이 있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라며 "다른 시중은행하고 다른 특수성으로 잘 활용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서서히 자기색깔 내기에 시동을 걸고 있다. 수출입은행장을 지낸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은행과 증권, 자산운용과의 시너지 창출도 염두에 두며 자사운용 등 비은행 수익 올리기 해법을 찾고 있다.

    그는 "모든 은행이 해외에 나가는 돌파구를 찾으려 하지만, 실제 쉽지는 않다"며 "네트워크나 신뢰를 가질 수 있는 해외 당국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저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수시로 강조했다.

    23일에는 이사회를 열어 농협금융의 해외사업을 주도하는 글로벌전략팀을 조직 신설 8개월만에 국(局)으로 격상시켰다. 김 회장이 취임과 함께 신설한 조직으로 줄곧 그 역할과 위상을 놓고 안팎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아왔던 터였다.

    금융지주 기획조정부 소속으로 편제되면서 김 회장 직할로 들어왔다.NH농협은행, NH투자증권, NH농협생명 등 3개 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와 실무진으로 구성된 글로벌 투자전략협의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대변인 출신으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좌중을 이끄는 능력이 출중하다는 김용환 회장이 층층시하 농협 내부에서 조용한 변화를 시작했다. 김용환式 유연한 소통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