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설립, 청와대 '일방통행'… "요구사항 등 의사 전달 의지 전혀 없었다""출연 과정서 특정 기업은 '대가', 타 기업은 '강제' 아닌 모두 동일 조건"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재단설립은 청와대로부터 일방통행으로 이뤄졌고, 기업들은 대가관계를 생각하거나 의사를 전달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기업들의 출연과정에서 어떤 기업은 대가관계가 있었고 어떤 곳은 강제였던게 아니다. 모두 동일한 조건이었다"

    변호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표정은 결의에 차 있었다.

    지난 19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네 번째 공판기일이 서울중앙지법 서관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의 심리로 진행된 공판은 앞선 두 차례의 공판과 마찬가지로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로 진행됐다.

    법정에 들어선 이 부회장은 지난 공판과 같이 회색 정장에 흰 셔츠 차림이었다. 이 부회장은 재판부에 목례한 뒤 자리에 앉았고 손에는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 부회장은 방청석을 둘러보며 전현직 삼성 관계자 및 지인들과 눈 인사를 나눴다. 방청석에는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 성열우 전 미전실 법무팀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이수형 전 미전실 기획팀장 등이 자리했다.

    향후 일정에 대한 재판부의 설명으로 공판이 시작됐다. 김진동 판사는 지난 13일 열린 2차 공판기일에서는 승마지원이 정유라에 대한 지원이었는지, 말씀자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실제로 말한 내용인지, 영재센터에 대한 지원이 1~2차로 나눠 지원된 것이 맞는지 등에 대한 서증조사를 진행했다고 요약했다.

    3차 공판에 대해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승마관련 지원에 관련있는지, 재단출연이 전경련 요청에 의해서만 진행됐는지, 출연 당시 삼성이 재단 배후에 있던 최순실을 인식했는지, 의사결정 구조에서 이 부회장이 실제 관여했는지에 대한 서증조사를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증거로 채택된 언론보도와 관련해 보도된 사실 자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법리적으로 문제되지 않지만, 합병 및 승계에 대한 사실은 법정에서 심리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해 언론 보도 내용을 제출될 필요가 있는지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판 역시 재단출연에 대한 피신조서를 놓고 양측간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 기획재정부 사무관, 청와대 문체비서관실 행정관, 문체부 체육정책관, 미르재단 사무총장, 전경련 사회공헌팀장, 전경련 상근부회장, 청와대 홍보수석, KT 회장 등의 진술을 앞세워 재단출연에 대가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재단설립은 청와대의 일방적인 지시로 진행됐을 뿐 재단에 출연한 모든 기업들이 대가관계 없이 강제로 출연했다고 항변했다.

    이 부회장의 진술조서도 공개됐다. 이 부회장은 특검 조사에서 "2015년 7월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예상치 못하게 질책을 받자 심각하게 받아들여 해당 내용을 최지성 실장에게 전달했다"며 "최 실장 주재로 회의를 열었다. (체육단체 승마협회 관련 회의는) 그룹 역사상 처음 아닌가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통령의 호된 질책을 받고도 전혀 보고나 정보 취득없이 내버려 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으며 당연히 보고 받았을 것이라 본다는 특검의 주장에는 "삼성스타일은 믿고 맡기는 것으로 최지성 실장이 문제가 있으면 이야기할 것으로 믿었다"고 답했다. 말 구입과 관련된 자금 지원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은 "용역계약 체결 이후 말 구입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보고 받지 않아서 모른다"고 일축했다.

    이 부회장은 참고인 진술조서가 바뀔 때마다 준비한 서류를 검토하며 공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직된 모습으로 모니터만 바라보던 이전과 달리 변호인에 먼저 말을 걸거나 필담을 나누는 등 여유로운 모습도 연출했다. 

    특검이 대부분의 삼성 관계자들이 미래전략실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미전실은 의심스럽고 비밀스러운 조직'이라 비꼬자 이 부회장은 입술을 굳게 다물기도 했다.

    이같은 주장에 변호인단은 "특검이 미전실 관계자가 아닌 계열사 관계자들에게 질문해놓고 속시원한 대답을 못들었다고 말하고 있다"며 "직장인이라면 다른 회사에 대해 기본적으로 함부로 말하지 않는게 당연한 반응이다. 특검이 질문의 대상을 잘못 잡았다"고 꼬집었다.

    이 부회장은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진술조서에서 나온 '삼성은 우리사회 모든 사람을 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변호인단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실패와 지주사법률안 입법 보류 등을 어떻게 설명할지 의문"이라 반박했다.

    특검과 변호인단의 날선 공방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됐다. 특검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이 1차 독대에서 모종의 협의를 이뤘다고 주장하자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이 5분간 진행된 1차 독대에서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고 정유라에 대한 지원과 경영권 승계에 대한 합의를 이뤘다는게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고 받아쳤다.

    특검이 SK와 KT가 더블루K에 대한 지원을 거절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변호인단을 압박하자, 변호인단은 "KT가 합리적으로 검증하고 따졌다면 왜 미르·K스포츠재단엔 출연했는가"라고 말해 특검의 말문을 막았다.

    한편 이날 공판은 오후 8시가 훌쩍 넘어서 마무리됐다. 공판이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지만 방청객은 100명 가까이 자리를 지켰고 절반 가까이를 취재진이 차지하는 등 뜨거운 취재 경쟁을 보였다. 

    이 부회장에 대한 다섯 번째 공판은 20일 오전 10시 속개된다. 이날 공판 역시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한 증거조사가 이뤄지며 이후에는 피고인들의 피의자 진술조서가 다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