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방살이 시설안전공단도 마찬가지 신세
  • ▲ 경남혁신도시 내 LH 본사 사옥.ⓒ연합뉴스
    ▲ 경남혁신도시 내 LH 본사 사옥.ⓒ연합뉴스

    지역균형발전을 이끄는 신성장 거점으로 혁신도시의 역할이 기대를 모으는 가운데 더부살이하는 일부 이전 공공기관에서 볼멘소리가 감지된다. 지역에서 교육사업 등으로 관련 시설을 연계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관료주의 타성에 젖어있다 보니 제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남혁신도시의 사례를 통해 이전 공공기관의 혁신도시 조기 정착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註>

    경남혁신도시는 진주시 충무공동 일원 409만3052.6㎡ 부지에 3만7767명을 수용하는 규모로 조성됐다. 지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1조577억원을 들여 총 4단계로 나눠 건립했다. 조성은 영천강을 경계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경남도시개발공사가 나눠 맡았다.

    현재 LH와 한국남동발전,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11개 공공기관이 이전을 마친 상태다.

    LH 한 관계자는 "경남혁신도시는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부동산가격이 분양가 밑으로 내려가진 않았다. LH의 경우 가족 동반 정착률이 처음엔 10%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30%까지 올라왔다"며 "앞으로 5~10년 지나면 성공한 혁신도시가 되리라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혁신도시 조기 정착을 위한 필수 정주 여건으로 의료기관을 꼽았다. "교통여건이 지금도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대형할인점도 많이 생겼고 살 만하다"며 "다만 종합병원급 3차 의료기관이 없어 아쉽다. 주변을 봐도 부모님을 모시고 내려오는 경우가 드물다"고 아쉬워했다.

  • ▲ 진주혁신도시 토지이용 계획도.ⓒLH
    ▲ 진주혁신도시 토지이용 계획도.ⓒLH

    혁신도시를 직접 조성한 LH는 전망을 밝게 보지만, 아직 도심 곳곳에는 개발이 미진한 곳이 적잖았다. 경남도시개발공사가 조성한 지역은 땅만 팔렸을 뿐 공사가 이뤄지지 않아 나대지가 많이 눈에 들어왔다. 2차 의료기관급에 해당하는 H병원은 부도가 나 공사가 중단됐다가 최근에야 재개될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변 아파트도 분양은 됐으나 나중에 시세차익 등을 노려 팔 요량으로 입주를 미루는 사례가 많다는 게 지역 주민의 설명이다.

    지역민들이 혁신도시 조성과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했다고 느끼는지는 미지수다. 이는 비단 경남혁신도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민주평화당 김종회 의원(김제·부안)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통해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구매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 ▲ 진주 혁신도시 둘러보는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 진주 혁신도시 둘러보는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최근에는 일부 이전 공공기관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공교롭게도 별도 사옥이 없어 다른 공공기관이나 민간 건물에 세 들어 사는 공공기관에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경남혁신도시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저작권위원회와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시설안전공단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관은 혁신도시 이전 후 교육사업 등을 펼치는 과정에서 혁신도시 내 마땅한 시설과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애로를 호소한다.

    저작권위원회는 LH 본사 사옥 5층을 통으로 빌려 쓰고 있다. 문제는 내년 상반기에 임차계약이 만료되는 가운데 '집주인' LH가 재계약에 회의적이라는 점이다. 기관 간 협의가 여의치 않을 경우 새 임차건물을 물색해 둥지를 옮겨야 하는 처지다. 설상가상 그동안 추진했던 교육연수관 건립사업이 혁신도시 내 부지 확보에 실패하면서 이주 공간 확보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진주로 내려온 이후 저작권 관련 내용이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면서 저작권에 대한 이해를 돕고 홍보하는 일이 중요해졌다"며 "이를 위해 교육연수관을 짓기로 하고 예산을 지원받아 사업을 추진했지만, 부지 확보에 실패해 올해 초 불용처리됐다"고 설명했다.

    애초 저작권위원회는 건립을 추진한 교육연수관으로 사무실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리면서 LH의 눈치를 살피며 임차계약을 협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저작권위원회가 LH 사옥에서 나와 민간 건물에 새 둥지를 튼다면 이사비용도 만만치 않겠지만, 각종 저작권 관련 보관물 등의 저장공간(수장고)을 따로 마련해야만 해 두 집 살림이 불가피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무의 비효율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시설안전공단도 혁신도시 이전 후 확보한 교육시설이 임차한 민간 건물과 떨어져 있어 업무 진행의 비효율성이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시설안전공단은 본관과 별관이 각각 2개의 민간 건물에 나뉘어 있다. 어렵게 확보한 인재교육관 터도 이들 건물과 따로 떨어져 있다.

    시설안전공단 관계자는 "연간 3000여명의 정밀안전기술책임자 관련 교육을 위탁받아 진행한다"며 "본관·별관 건물을 임차해 쓰는 상황에서 마땅한 교육시설이 없어 어려움이 있었다.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간신히 부지를 받고 교육관을 지었는데 떨어져 있다 보니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전 기관으로선 장기적으로 발생하는 임차 비용 등을 고려할 때 독립적인 사옥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여건은 녹록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들 기관이 혁신도시 내에서 관련 시설을 확보하는 데 애로가 있는 것은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원칙 때문이다. 정부는 지방 이전 전에 임차 청사를 썼던 기관은 이전 후에도 임차 청사, 자체 청사를 보유했던 기관은 이전 후에도 자체 사옥을 건립할 수 있게 원칙을 정했다. 이 때문에 임차 청사를 썼던 기관이 혁신도시로 내려와 추가적인 교육시설 등을 확보할 필요성이 제기돼도 혁신도시 내 부지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예외조항이 있다며 이를 활용하지 못한 것은 해당 이전 기관의 판단이라고 화살을 돌렸다. 국토부 혁신도시계획과 관계자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에 따라 예산을 협의하게 돼 있다"며 "임차 청사를 사용했던 공공기관도 청사 신축 비용의 70%를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경우 국고를 지원할 수 있게 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시설안전공단 한 관계자는 "(공단은) 애초 자체 사옥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기재부의 출연이 40%를 차지하다 보니 예산과 관련해 임의성이 매우 적다"면서 "(기재부가) 원칙과 규정을 내세우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애초 이전 공공기관의 특성이나 장래 사업계획 등을 면밀히 검토·고려하지 않고 이전 관련 잣대를 획일적으로 들이대다 보니 잡음이 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