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관→체험관 무늬 바꿔 재추진… 예산 불용 원인 '부지' 문제 여전부산혁신도시 금융기관들 BIFC 매입… 관행적 신축 고집이 혈세 낭비 불러
  • ▲ 경남혁신도시 내 LH 본사 사옥.ⓒ연합뉴스
    ▲ 경남혁신도시 내 LH 본사 사옥.ⓒ연합뉴스

    지역균형발전을 이끄는 신성장 거점으로 혁신도시의 역할이 기대를 모으는 가운데 더부살이하는 일부 이전 공공기관에서 볼멘소리가 감지된다. 지역에서 교육사업 등 관련 시설을 연계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관료주의 타성에 젖어있다 보니 제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남혁신도시의 사례를 통해 이전 공공기관의 혁신도시 조기 정착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註>

    경남혁신도시로 이전한 문화관광체육부 산하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방을 뺄 처지에 놓였다. 저작권위원회는 경남혁신도시에 둥지를 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옥의 지하 1층과 지상 1·3·5층을 빌려 쓰고 있다. 임차면적은 7605.59㎡다. 임차보증금은 85억, 월임차료는 2400여만원 선으로 알려졌다. 계약 기간은 한 차례 연장해 내년 3월 끝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집주인 LH가 재계약 연장에 회의적이라는 점이다. LH는 인력이 늘면서 사무공간이 부족한 실정이어서 저작권위원회에 빌려준 업무시설 등을 사용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LH 관계자는 "2015년 혁신도시로 내려올 때 본사 인원이 1200명 선이었다. 지금은 정부의 주거복지 관련 업무가 확대되면서 250~300명이 늘었다"며 "내부 사정이 있고, 계약 기간도 만료되는 만큼 계약 연장이 어렵다는 뜻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위원회가 문체부 산하 단체로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아닌 것도 LH가 부담 없이(?) 재계약을 안 하기로 마음먹는데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며 "(LH와)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위원회로선 안 써도 될 수십억 원의 이사 비용과 임차료도 신경 쓰이지만, 혁신도시 내에서 저작권 관련 자료를 보관할 수장고 자리를 물색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는 게 고민거리다.

  • ▲ 지난해 열린 저작권 지원사업 합동 설명회에 많은 이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 지난해 열린 저작권 지원사업 합동 설명회에 많은 이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애초 저작권위원회는 2016년 진주시가 저작권 교육연수관 용지를 무상임대하겠다고 문체부에 약속하면서 교육연수관으로 옮겨간다는 복안이었다. 원칙대로면 저작권위원회는 혁신도시로 내려오기 전 임차 청사를 사용했으므로 이전 후에도 임차 청사를 써야 하지만, 사실상 꼼수로 자체 청사를 보유하게 되는 셈이었다. 내년까지 378억원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할 계획으로 설계비 20억원 등을 배정받았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부지를 무상 제공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행정안전부가 제동을 걸면서 스텝이 꼬였다. 저작권위원회는 공유재산의 임대료 감면 대상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부지가 허공에 뜨면서 사업은 백지화됐다. 예산도 올해 초 불용처리됐다. 행안부가 딴지를 걸었다기보다 저작권위원회가 숙원사업 해결에 고무돼 부지 확보에 대한 검토를 게을리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 ▲ 경남혁신도시 용도지역 결정도.ⓒLH
    ▲ 경남혁신도시 용도지역 결정도.ⓒLH
    확인 결과 저작권위원회는 기존 교육연수관 계획에서 숙박시설을 떼어내 저작권 교육체험관을 짓겠다며 사업을 재부팅한 상태다. 문체부 관계자는 "교육연수관 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예산이 불용 됐고 체험관으로 명칭을 바꿔 재추진하고 있다"며 "사업비는 기존 연수관 예산과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연수관 사업의 실패 원인인 부지 확보에 대해선 "국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예정지를 밝히기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뉴데일리경제가 수소문한 결과 사업부지는 애초 진주시가 무상 제공하려 했던 혁신도시 내 클러스터 용지로 드러났다. 해당 부지는 1만915㎡로, 경남도시개발공사가 소유하고 있다. 경남도는 29억원을 들여 부지를 사들인 뒤 이곳에 공연장·체육시설 등 복합혁신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저작권위원회는 해당 용지 절반을 교육체험관 터로 매입하고자 경남도에 의사를 타진하는 중이다. 경남도 관계자는 "터가 넓어 (제안은) 일단 긍정적으로 본다"며 "다만 저작권위원회가 관련 예산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예산이 국회를 통과한다는 보장이 없다"며 "예산이 통과해도 설계 등을 고려할 때 내년 착공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문체부와 저작권위원회가 기존 사업을 사실상 무늬만 바꿔 재추진하면서도 부지 확보 문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근시안적인 행정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할 공산이 크다고 우려한다.

    문체부 예산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도 건물이 올라갈 때까지 최소 3년 이상 걸린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건물 준공 때까지 2~3개 건물을 빌려 여러 집 살림을 해야 하고, 이사 비용과 임차료로 수십 억원의 혈세를 낭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물 분산 임차로 말미암은 업무 효율성 저하도 예상된다.
  • ▲ 부산 문현금융단지의 국제금융센터(BIFC).ⓒ뉴시스
    ▲ 부산 문현금융단지의 국제금융센터(BIFC).ⓒ뉴시스
    부동산·행정 전문가들은 관료사회의 경직되고 관행적인 자세를 탈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청사(교육체험관)는 꼭 새로 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대안은 있다는 것이다. 혁신도시 내 신축 중인 민간 건물을 매입하거나 장기 임대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는 의견이다.

    국토교통부 한 관계자는 "부산혁신도시의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유사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부산시 남구 문현금융단지에 있는 BIFC는 전체면적 19만7869㎡, 지상 63층, 지하 4층 규모다. 한국수출입은행과 KDB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한국예탁결제원 등 금융 관련 이전기관이 몰려 있다.

    공동청사로 볼 수도 있겠으나 기관별로 등기가 구분돼 있다. 부산도시공사를 주축으로 한 자산관리회사(AMC㈜)가 지은 건물을 이전 금융기관이 분양받아 매입한 사례다. 부산시 관계자는 "혁신도시가 기존 도시계획을 토대로 조성되다 보니 여건상 사업용지가 넉넉지 않았다"며 "면적 등을 협의해 지은 뒤 분양한 사례"라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혁신도시는 지구 지정 이후 개발하는 개념인데 BIFC는 혁신도시를 개발하며 문현지구 신축건물을 (이전 기관들이) 산 거로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진주시 한 부동산 관계자는 "정부 부처나 이전 공공기관이 청사는 꼭 신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가격, 시기, 용도, 효율성 등을 고려해 혁신도시 내 신축 중인 민간 건물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며 "혈세 낭비를 막고 공공기관이 지방에 조기 정착하면서 지지부진한 지역개발에도 이바지할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