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외교부 공치사 '눈총'
  • ▲ LNG 추진선.ⓒ연합뉴스
    ▲ LNG 추진선.ⓒ연합뉴스
    임기택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의 임기가 오는 2023년까지 연장되면서 그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친환경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박 연관산업의 성공이 임 사무총장의 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해양수산부와 외교부는 이번 연임과 관련해 공치사를 빼놓지 않아 눈총을 사고 있다.

    23일 해수부에 따르면 22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121차 IMO 이사회에서 임 사무총장의 임기를 2023년까지 연장하는 안이 40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연임 동의 안건은 내년 12월 열릴 제31차 총회에 제출돼 최종 승인받을 예정이다.

    임 사무총장 1차 임기는 내년까지다. '세계 해양 대통령'이라 불리는 IMO 사무총장은 임기 4년에 1회 연임할 수 있다.

    IMO는 해운·조선산업과 관련한 안전, 환경, 해상교통, 보상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다. 현재 174개 정회원국이 참여한다. IMO는 해운·조선 관련 국제규범을 만든다. 국가별 관련 산업과 기업의 경영환경에 큰 영향을 끼쳐 세계 각국은 해운·조선 관련 규범이나 의제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IMO 진출에 힘쓴다. IMO 사무총장은 의제나 안건 상정 권한을 가진다.

    2014년 국내 대학 연구에 따르면 1981~2013년 IMO 국제규범이 우리나라 연관산업에 미친 경제적 영향은 153조원쯤으로 추산된다. 2016년부터 IMO의 안·환경 규범에 대한 영향력은 더 커졌다.
  • ▲ 임기택 IMO 사무총장.ⓒ부산항만공사
    ▲ 임기택 IMO 사무총장.ⓒ부산항만공사

    임 사무총장 임기가 연장되면서 그의 역할론도 재조명된다. 그는 연임안 통과 후 런던 특파원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완성하는 게 첫째 목표"라고 밝혔다. 기후변화 관련 정책은 선박의 선형과 엔진, 기관, 연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IMO는 해양환경보호를 위해 2020년부터 선박연료의 황산화물(SOx) 함유기준을 강화한다. 현재 국제 운항하는 전 세계 선박은 IMO 국제협약에 따라 황산화물 함유비율이 3.5% 이하인 선박유를 사용한다. 후년부터는 선박 대기오염 배출규제가 강화돼 함유기준이 0.5% 이하인 선박유를 사용해야 한다.

    선사는 저유황유 사용, 배기가스 저감장치(스크러버) 설치, LNG 추진선으로 교체 중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LNG 추진선박 건조가 늘 것으로 전망한다.

    당장 관심사는 포스코가 고망간강 신소재로 개발한 LNG 연료탱크의 국제 안전기준(IGF Code) 등재 여부다. 안전기준은 IMO에서 논의해 결정한다.

    문제는 규정 변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 IMO 규정에는 LNG 연료탱크 소재로 니켈합금강과 스테인리스강 등만 사용할 수 있다. 고망간강 소재는 가격에서 비싼 니켈, 스테인리스의 20~30% 수준으로 경쟁력을 갖췄다. 하지만 고망간강 사용은 니켈강 연료탱크를 개발한 일본 등 일부 철강국의 반대에 직면한 상태다. IMO는 다른 국제기구와 달리 사무국의 발언권이 크지 않다. 회원국의 입김이 세다는 얘기다.

    정부는 임 사무총장의 막후 영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임 사무총장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순 없으나 실무논의 단계를 거쳐 위원회에 안건이 상정될 때부터는 막후에서 반대파를 설득하거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LNG 추진선박을 침체한 해운·조선산업의 신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임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한국 조선·해운산업과 관련해 "(사무총장이) 특정 국가의 정책 방향을 유도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 "다만 한국은 조선·해운산업의 기본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국제적 변화와 추이를 사전에 파악해 대비한다면 국제환경·안전에 맞으면서도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 해수부.ⓒ연합뉴스
    ▲ 해수부.ⓒ연합뉴스
    연임 소식이 전해지면서 해수부와 외교부는 공치사를 빼놓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해수부 등은 22일 낸 보도자료에서 해수부와 외교부, 주영국대사관이 40개 이사국의 연임 지지를 끌어내려고 노력해왔고, 그 결과 만장일치 동의를 끌어내게 됐다고 밝혔다. 각 이사국의 지지 성향을 분석하고 런던 현지 대사관 초청만찬 등을 통해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왔다고 소개했다. 통상 부처 보도자료에서 기관장 이름은 맨 처음 1번 표기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영춘 해수부 장관 이름은 2번 등장했다. 그나마 임 사무총장의 전문역량과 업무성과를 바탕으로 했다고 예의상(?) 운은 뗐다.

    보도자료에서 임 사무총장이 재임 기간 스마트·친환경 해운을 강조한 '2018~2023 IMO 전략계획'을 채택해 IMO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IMO 선박온실가스 감축 초기전략'을 채택해 지속 가능한 해운과 해양환경 보호에 힘썼다는 평가는 뒷전으로 밀렸다.

    IMO 사무총장 선거는 후보자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후보자 국가의 영향력(외교력)과 지역 안배 등이 당락의 향배를 가르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국가의 외교 노력이 당락을 좌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임은 다른 문제다. IMO 사무총장은 이사국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연임하는 게 통상적이다.

    역대 사무총장 현황을 봐도 유럽이 견제하며 독식했던 초기에는 3년 또는 4년 1회만 재임했지만, 5대 사무총장부터는 연임이 관례다. 인도 국적의 챈드리카 프라사드 스리바스타바 사무총장은 1974년부터 1989년까지 16년간 자리를 지켰다. 캐나다 출신 윌리엄 오닐 사무총장도 1990~2003년 14년간 재임했다. 이후 그리스 국적 미트로포울로스 사무총장도 8년간 자리를 지켰다. 2011년 선출된 일본인 세키미즈 코지 사무총장은 개인 사정으로 연임을 포기한 사례다.

    임 사무총장이 큰 과오가 없는 이상 연임은 암묵적으로 동의가 이뤄졌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는 생색을 내고 싶을지 모르겠으나 정부 차원의 지지 활동은 국익을 위한 기본적인 활동으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