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치우쳐 무조건적 '반성-사과' 요구 논란경영권 승계 재발 방지 요구 등 '권한남용' 우려'혁신' 경제 위한 '미래지향적' 방안 마련 고심 아쉬워
  •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설치 이후의 사안을 중심으로 다룰 방침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권유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재판부에서 미국 연방 양형기준 8장의 자율적·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 취지와 저희가 생각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김지형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지난 2월 간담회에서 설립 취지와 관련해 언급한 대목이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출범 이후부터 발생하는 사안을 중심으로 다루겠다는 원칙을 세운 바 있다. 기업 활동에 있어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법과 원칙의 준수'를 조직 문화로 확실하게 자리잡게 하고 기업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이 미국 연방 양형기준 취지와 비슷하다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연방법원은 기업 범죄로 재판 받는 기업에 대해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명하고 전문가를 통해 시행 과정을 평가한다. 쉽게 말하면 삼성의 취약점을 발견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데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준법위 행보만 놓고 보면 영 탐탁치만은 않다.

    당초 취지와 달리 삼성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준법위 설치 이후의 의제를 논하기 보다는 과거사 문제를 들먹이며 무조건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지난달 준법위는 2013년에 이뤄졌던 임직원의 시민단체 후원내역 열람에 대해 공식 사과를 권고했다. 지난 11일에는 ▲경영권 승계 ▲노동 ▲시민사회 소통 등 세 가지 의제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반성과 사과는 물론 향후 준법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들에게 공표해 줄 것을 제안했다. 

    문제는 삼성의 오래된 관행을 두고 이재용 부회장을 표적으로 삼아 과도한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다.

    준법위가 제시한 노동 의제가 대표적이다. 80여년간 이어져 온 무노조 경영이 이 부회장의 잘못인 마냥 직접적인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다. 또 법원에서 다투고 있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서는 위법이라 단정지었다. 준법위는 삼성그룹의 과거 불미스러운 일들이 대체로 '승계'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는데, 이는 사법부에서 판단할 일이지 준법위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부분이 아니다. 일각에서 준법위에 부여된 권한이 오히려 남용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은 이미 이 부회장의 강한 의지를 통해 변화에 적극 나서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7년 국정농단 관련 법정 최후진술에서 "제가 큰 부분을 놓친 거 맞다"며 "성취가 커질수록 우리 국민들과 사회가 삼성에 건 기대는 더 엄격하고 커졌다"며 상생 협력을 앞세운 국민 기업으로의 변신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이후 발표된 삼성전자의 주식 액면분할 및 경제활성화를 위한 180조원 투자계획도 궤를 같이한다.

    특히 준법감시위와 별개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각 계열사 준법감시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각 계열사 법무실 팀 산하에 있던 준법조직을 대표이사 직속으로 격상하며 준법경영의 실효성을 높이는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

    최근에는 범국가적 위기 상황인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통 큰 기부금 제공 등을 비롯한 종합 대책을 속속 내놓으며 상생 경영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준법위의 행보는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삼성의 '경영 시계'는 지난 2016년 특검 수사로 촉발된 사법 리스크로 5년째 멈췄고, 주요 계열사의 경영진 등 임직원들은 그간 검찰 조사와 글로벌 경제 위축, 경쟁 심화까지 겹치며 부담과 피로감도 상당히 커진 상황이다. 

    김지형 위원장은 국민들이 '기업으로서의 삼성의 성공을 바라지, 삼성의 실패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번 준법감시위원회 가동을 계기로 삼성그룹이 사회에서 다시 신뢰를 쌓아갈 수 있기를 기대했고, 이 부회장 역시 이를 위해 준법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약속했다.

    과거 청산에만 집착하기 보다, 향후 삼성이 혁신경제를 이뤄낼 미래지향적인 방안을 마련하는데 자율성과 독립성을 사용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