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요금인가제 30년만에 폐지... 유보신고제 도입인터넷 사업자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 등 유통 방지 의무무임승차 논란 넷플릭스, 국내 망 사용료 낼 근거 마련요금제 인상, 사적 검열, 역외규정 실효성 등 논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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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만에 '통신요금 인가제'가 폐지되고, '유보신고제'로 전환된다. 인터넷 사업자는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 등 불법 음란물을 차단해야 할 법적 의무도 지게된다. 글로벌 콘텐츠제공업체(CP)들이 국내 인터넷망 제공업체(ISP)들에 '망 사용료'를 낼 수 있는 길도 열렸다.

    국회는 20일 본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통과, 의결했다. 20대 마지막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IT 업계는 새로운 변화에 직면할 전망이다.

    ◆ '요금인가제' 대신 '유보신고제' 도입...'자율 경쟁' 시대 개막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의결을 통해 통신요금 인가제(이하 요금인가제)는 폐지되고, 유보신고제로 전환된다. 통신요금 인가제는 1위 통신사업자가 요금을 인상 또는 인하할 때 정부의 인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유보신고제란 이동통신사업자의 요금 신고 이후 정부가 15일 간의 심사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 신고를 유보할 수 있는 제도를 뜻한다. 이에 따라 1위 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이 새로운 요금제를 출시할 때 정부의 인가가 아닌 신고로 가능해진다.

    정부는 1991년 통신 시장 1위 사업자의 독점을 막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요금인가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사업자 간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할뿐 아니라 요금 담합을 통해 다양한 요금제 출시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정부와 통신업계는 요금인가제 폐지로 사업자별 자유로운 경쟁에 돌입할 수 있고, 다양한 요금제 출시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요금 인하로 이어져 현 정부의 가계통신비 절감 정책에도 부합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요금인가제를 통해 시장 자유경쟁을 향상하고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 일각에선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가 오히려 요금 인상을 야기할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요금인가제 폐지될 경우 통신사가 요금제의 가격을 오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과점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개정안은 요금결정 권한만 이통사에게 넘겨줘버린 최악의 반서민 민생악법이자 통신공공성 포기 선언에 불과하다"며 질타했다.
  • ▲ n번방 공범 강력 처벌 촉구 집회 ⓒ연합
    ▲ n번방 공범 강력 처벌 촉구 집회 ⓒ연합
    ◆ 'n번방 방지법' 통과...네이버, 카카오 불법 음란물 차단 의무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로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인터넷 사업자는 성착취물 등 불법 음란물을 차단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게 됐다.

    개정안은 성착취 영상물의 유통·판매 사건인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이른바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린다. 인터넷 사업자에 유통방지 책임자 지정, 불법촬영물 처리에 대한 투명성 보고서 제출 등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골자로 한다.

    이를 위반한 인터넷 사업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n번방 사건이 벌어진 텔레그램 등 해외 인터넷 사업자에 대해 국내에 대리인을 두도록 하는 등 국내법 적용을 위한 역외규정도 추가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해외사업자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집행력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조사와 행정제재를 실시하고, 해외 관계 기관과의 국제공조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 업계는 해당 개정안이 사생활 보호, 통신비밀 보호, 표현의 자유, 직업수행의 자유, 사적 검열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역외 규정'에 대해서도 해외 사업자에게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없어 '역차별' 우려도 불거지는 상황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민생경제연구소, 참여연대, 한국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는 정부와 국회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n번방 방지법을 '졸속'으로 규정하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 단체는 "국회와 정부가 n번방 법안을 앞세워 대형 이통사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인터넷사업자들에게는 과도한 의무와 책임을 지우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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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코리아
    ◆넷플릭스, '망 안정성' 의무진다...실효성 지적은 '여전'

    일명 '넷플릭스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의결에 따라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콘텐츠사업자)의 망 사용료 지불 가능성도 커지게 됐다. 개정안은 글로벌 CP의 국내 대리인 지정 및 망 안정성 의무 부과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그간 국내 ISP(통신사업자)와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는 망 사용료 지불 의무를 두고 오랜 분쟁을 이어왔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CP가 매년 수백억원의 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는 것과 달리, 글로벌 CP는 국내 망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두면서도 정작 사용료는 지불하지 않아 제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된 것.

    최근에는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사용료 지급 관련 소송(망 이용대가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같은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린 상태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국내 이용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CP에 대해서도 이용자 보호 의무가 있다는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법안 개정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관련 업계에선 이번 개정안 역시 넷플릭스의 소송 논란에 따라 입법에 속도가 붙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구체적 조치는 대통령령(시행령)에 위임한 만큼 더이상 책임 회피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만 일각에선 개정안 내용에 망 사용료 협상 의무 등이 포함되지 않은 만큼 실제 망 사용료 부담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들은 망 품질 유지는 ISP의 의무로 이번 개정안이 오히려 국내 CP의 부담만 높이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넷플릭스 측은 "국회의 판단을 존중하며 소비자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며 "앞으로도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