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기준 발표 일주일만에 노사 만남 성사커지는 임직원 불만 속 경쟁사 경력 채용 인력 유출 '비상'임시방편·보여주기식 결과물 아닌 진정성 있는 제도 마련에 임직원 '기대감'
  • SK하이닉스 노동조합과 사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지난달 28일 SK하이닉스가 임직원들에게 기본급의 400% 수준에서 초과이익분배금(PS)를 지급한다고 공지한 이후 불만이 터져나왔고, 최태원 SK 회장과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등이 나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나선지 불과 일주일만에 노사 간 만남이 이뤄지게 됐다.

    노사 협상이 추진되지만 여전히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천과 청주공장에 두고 있는 전임직 노조 2곳은 이번 협상에 참여하지만 나머지 임직원 한 축을 대변하는 기술사무직 노조는 협상 당사자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직원들 사이에선 이번 협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얻어내기 보단 임시방편의 결과물이 나오거나 사측의 보여주기식 해결책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SK하이닉스 노사는 4일 중앙노사협의회를 열고 이번에 문제가 된 PS 지급 기준과 관련한 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에 나선다. 이번 협의회에는 이천과 청주 전임직 노동조합 2곳만 참석하고 지난 2018년 설립된 기술사무직 노조는 참석하지 않는다.

    이번 만남은 SK하이닉스 사측이 노조에 먼저 제안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직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던 PS 산정 기준이나 지급 기준 외에도 최태원 회장이 반납하기로 한 연봉을 활용해 추가적으로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할 것인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노조를 통해 의견을 청취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PS와 같은 성과급을 전적으로 회사의 결정으로 지급받았던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올해는 유독 더 성과급 지급 기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하고 있어 사측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이 직접 나서 임직원들의 불만사항에 대해 언급하며 위로하는 동시에 자신의 연봉을 반납하겠다고 선언하는 '달래기'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 ▲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좌)과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우) ⓒSK하이닉스
    ▲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좌)과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우) ⓒSK하이닉스
    이처럼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에 즉각적인 대응에 나선 데는 반도체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인재 유출 문제가 걸려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해마다 인사고과와 승진자가 결정되는 연말 연초와 더불어 지난 한해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받는 설 명절 전후로 반도체업계에 이직과 스카우트가 활발하다는 사실은 이미 업계에선 익숙한 사실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가 성과급 기준안을 발표한 직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이 대규모 경력직 채용 절차를 시작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뜩이나 SK하이닉스 출신들이 삼성전자나 외국계 반도체업체들로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성과급 불만과 겹쳐 임직원들의 이직활동이 더 활발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심각한 상황이다.

    더구나 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맞았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가 글로벌 시장 전반에서 품귀 현상으로까지 확대된 상태라 삼성이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제조사들의 생산 시계는 더 빨리 돌아가야 하는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숙련된 임직원들이 대거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되면 당장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는 문제는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잃거나 직간접적으로 경쟁사에 도움을 주는 꼴이 돼버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SK하이닉스가 그동안 국내 경쟁사인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임직원들의 임금이나 성과급 수준 등을 꾸준히 의식해왔다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019년만 해도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경기 하강 국면에서 실적 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PS 지급 기준의 중요 지표가 되는 목표달성률에서도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PS는 최종적으로 '0원'으로 책정됐고, 대신 '미래 성장 특별 기여금' 명목으로 지난해분 PS와 같은 기본급의 400% 지급이 결정됐다. 같은 기간 삼성 반도체 임직원들은 연봉의 29%(SK하이닉스 기준 기본급의 약 600%)를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 받았다. 사별로 성과급 지급 기준에는 차이가 있지만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성과급 수준을 고려해 특별 기여금 지급이 이뤄졌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이런 배경들을 감안해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은 이번 노사 협상에서 체계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성과급 지급 기준안이 마련되기 보단 임시방편으로 임직원들의 이탈을 막고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될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게다가 3만 명에 가까운 SK하이닉스 전체 직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1만 5000여 명 기술사무직을 대변하는 노조가 협상에서 배제된만큼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지난 2018년 뒤늦게 꾸려진 기술사무직 노조는 현재 가입된 노조원 수가 전임직 노조 대비 상당히 적은 편으로 알려져 이번 협상에 참여하기에 부족함이 있었다.

    SK하이닉스 노사 간 협상 테이블이 예상보다 빠르게 꾸려졌다는 점에서 출발이 순조롭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반도체 시장에서 '골든타임'을 앞두고 있는 SK하이닉스 노조가 성과급으로 촉발된 성과배분 문제와 노사 전반의 제도 개선에 얼만큼 진정성 있는 결과물을 내놓고 실천에 나갈지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