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vs 5.5%… 두달간 공전산은 "2차 부작용 우려"… 중재거절노조 "해운재건 생색만 내냐"… 靑 직격
  • ▲ 부산신항에 정박한 해외 해운기업들의 초대형컨테이너선ⓒ연합뉴스
    ▲ 부산신항에 정박한 해외 해운기업들의 초대형컨테이너선ⓒ연합뉴스
    "애초에 사측이 재량권이 없다는 건 노조도 알고 있다. 두달간 이어온 양측 협상이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 됐고, 갈등만 고조됐다."

    난항을 거듭해온 HMM 임금협상이 끝내 무산됐다. 중노위 조정절차가 남았지만 양측간 이견차가 커 기대를 걸긴 어려워 보인다. 노사 모두 대주주인 산업은행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13일 HMM 등에 따르면 해상노조는 지난 11일 사측과 4차 임단협에서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갈등의 원인이었던 임금인상폭에서 양측은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측은 임금 5.5% 인상과 격려금 100%를 내밀었지만 노조는 임금 25%, 성과급 1200%를 제시했다.

    오랜 불황을 견뎌온 HMM 직원들은 육상직원은 8년간 해상직원은 6년간 임금을 동결했다.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올해 임금도 2.8% 인상에 그쳤다. 위로금에 가까운 100만원 성과급이 있었지만 수년간 밤낮없이 일한 직원들의 마음을 달래기는 부족한 금액이었다.

    문제는 지난 6월 시작된 노사 협상이 두달간 한치의 진전도 없었다는 점이다. 시작부터 결렬선언까지 5.5%와 25% 간극은 줄어들지 않았다. 11일 열린 마지막 협상테이블에서도 양측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치열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아야 할 협상장이 서로간 입장만 설명한 뒤 1시간만에 끝났다. 여느 사업장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결정권을 쥔 산업은행의 외면 때문이다.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채권단 관리를 받는 이상 큰 폭의 임금인상은 불가하다는 게 산은 입장이다. 두자릿 수 인상안을 승인해줄 경우 수많은 채권관리 기업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렸다. 사측이 외부 컨설팅을 통해 11.8%의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놓고도 5.5%안을 고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신항에서 열린 HMM 한울호 출항식에서 발언하고 있다ⓒ자료사진
    ▲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신항에서 열린 HMM 한울호 출항식에서 발언하고 있다ⓒ자료사진
    회사, 노조, 산은 3자 모두 자기 입장만 반복하는 가운데 파업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육해상 노조는 19일까지로 예정된 중노위 조정이 실패하면 찬반 투표로 파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파업 피해는 다른 산업에 비해 더욱 직격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물류대란은 물론 어렵게 강비한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 퇴출도 우려된다. 머스크, 지중해해운(MSC) 등 세계 1,2위 해운선사들은 최근 부산항 입항을 늘리며 HMM 기항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산은도 할말은 있다. 독단적인 판단으로 중재에 나설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공공기관인 국책은행이 노사 문제에 개입하는 건 2차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산은 관계자는 "장기화되는 노사 갈등에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경영정상화와 같은 회사 전략 방향설정 같은 문제가 아닌 노사 임금협상에 관여할 순 없다"고 했다. HMM 노조가 최근 청와대를 찾아 SOS를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작 손놓고 있는 건 청와대라는 지적도 나온다. HMM 한 조합원은 "해운재건 5개년 계획 추진은 각별히 챙기면서 노조의 아우성에는 귀를 닫고 있다"며 "국적선사의 파업은 산업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해양부문 지원은 미미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단행한 청와대 조직개편에서 해양수산비서관을 농축산식품비서관과 통합해 농어업비서관으로 개편했다. 이후 산업정책비서관실에서 관장하던 해운·항만 부문을 농어업비서관실로 옮기면서 농해수비서관실로 바꿨다. 해운이 찬밥 신세가 된 셈이다.

    역대 농해수비서관은 주로 농림분야에서 발탁했으며 지난 1월 임명된 정기수 농해수비서관도 농업경영인 협회 출신이다. 정 비서관은 임명 당시 HMM 주식 2만주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노조가 청와대를 찾아 조력을 요청할 때도 농해수 비서관이 아닌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를 만난 것도 일원화된 창구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 농해수위 한 야권 인사는 "해운재건 플랜은 거창하게 세웠지만 정부가 해운사에 실질적인 도움이 준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국적선사 파업이 임박한 지금이 청와대가 정무적 능력을 보일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