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500억달러 수주-4대 해외건설 강국 목표로 '지원사격'올 해외수주 4년만 최대…3연속 300억달러 달성 전망킹달러-고유가 등에 '제2 중동붐' 조짐까지… 기대감 고조
  • ▲ GS건설이 시공한 이란 사우스파 9·10단계 전경. ⓒGS건설
    ▲ GS건설이 시공한 이란 사우스파 9·10단계 전경. ⓒGS건설
    부동산 빙하기를 맞은 건설업계가 SOC 일감마저 줄게 되면서 국내시장에서 이중고에 직면했다.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정부에서도 '연 500억달러 수주, 4대 해외건설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해외수주에 힘을 실어주는 만큼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국 주택 건설 시장이 침체기에 빠졌다. 건설사들은 공사비 증가와 분양 실패 등의 부담으로 분양 승인까지 받아놓은 사업마저 미뤄놓은 상태다.

    공공물량마저 감소할 전망이다. 정부가 내년 SOC 예산을 올해보다 10.2%(2조8000억원) 감액한 25조1000억원으로 편성하면서 건설업계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SOC 예산이 줄어든 것은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

    이에 건설업계는 해외수주로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가까이 늘었다. 최근 수주 흐름을 고려하면 연내 목표 수준(320억달러)은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이후 3년 연속 연 300만달러를 달성하게 된다.

    해외건설협회 집계를 보면 올 들어 이날까지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액은 모두 249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82억달러에 비해 36.7% 증가했다. 이는 2015년 같은 기간 241억달러 이후 최대치다.

    수주 건수 기준으로는 45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74건보다 21.6% 늘었다. 수주금액으로 증가세가 더 가파른 것은 그만큼 고가, 양질의 수주가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6월까지만 하더라도 120억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 147억달러에 비해 18.3% 적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수주액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면서 지난해 실적을 앞서가더니 최근 들어서는 그 격차까지 벌렸다.

    이는 삼성전자 미국 반도체 공장 신축 공사를 수주한 삼성물산의 역할이 컸다. 삼성물산은 7월 미국 텍사스州 테일러市의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신축 공사를 수주했다.

    이는 회사의 상반기 전체 해외수주 실적보다 많은 19억달러였다. 삼성물산이 7월 수주한 물량은 삼성전자가 총 170억달러를 투자해 짓기로 한 테일러市 신규 공장 건설 프로젝트의 일부다. 업계에서는 보안상의 이유로 삼성물산이 수주 물량의 대부분을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물산이 49억달러로 가장 많은 수주실적을 기록했다. 이어 △삼성엔지니어링 27억달러 △현대엔지니어링 25억달러 △현대건설 25억달러 △롯데건설 15억달러 △대우건설 10억달러 등이 10억달러 이상 수주고를 올렸다.

    업계에서는 올해 해외수주 목표치 달성을 낙관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하방 압력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도 원화 가치 약세 움직임이 나타나고, 국제유가 상승으로 발주 여건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원화 약세가 지속하면 해외 수주전에서 입찰가를 낮추는 등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데다 해외공사 잔액이 많은 건설사의 경우 기성액을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환차익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유효하게 작용한다.

    실제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40원을 돌파하는 등 '킹달러'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와 영국 북해 브렌트유는 이날 기준 배럴당 88~94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상반기에 배럴당 최고 120달러까지 올랐던 점을 고려하면 유가가 내린 상황이지만, 지난해 초 배럴당 50~60달러 수준보다는 크게 오른 상태다.

    특히 고유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오일머니를 확보한 중동 국가들이 발주를 늘리면서 수주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해건협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는 2020년 2분기 이익이 66억달러로 대폭 감소했지만, 수익이 확대되면서 올해 2분기에는 484억달러로 7배 뛰었다. 이에 따라 기존 400억달러의 시설투자 계획을 500억달러로 상향 조정해 발표했다.

    대형 플랜트 시장의 전방산업인 글로벌 에너지 업체들의 수익 성장세도 눈에 띈다. 엑손모빌과 셰브런의 2분기 수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리서치 업에 IHS마킷은 올해 중동 지역에서 발주하는 사업 규모가 4034억달러에서 4446억달러로 10.2% 증가하면서 시장을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김승준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해외·플랜트 발주 환경은 긍정적으로, 플랜트 부문에서는 해외 생산 기지화와 O&G(Oil&Gas) 발주가 동남아시아에서 이뤄지고 있어 수주 기대감이 큰 상황"이라며 "에너지 가격 상승과 에너지 전환 흐름에 따라 중동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산유국에서의 플랜트 발주가 나타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해외수주와 플랜트 수주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실제 사우디를 비롯한 주요국의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사우디의 초대형 프로젝트인 '네옴시티'가 대표적이다.

    사우디는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주도로 역내 북서구 홍해 인근 2만6500㎢ 부지에 서울의 44배에 달하는 도시 '네옴시티'를 짓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5년 1차 완공, 2030년 최종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투자액은 모두 5000억달러로, 한화로 65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본예산 607조원보다 많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이미 네옴 프로젝트에서 '더라인 러닝 지하터널'을 함께 수주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본 사업은 네옴 지하에 총 28㎞ 길이의 고속화물 철도 서비스를 위한 터널을 뚫는 공사다. 여기에 주택과 항만은 물론, 철도와 에너지시설 등 대규모 인프라 입찰이 이어지고 있어 수주 기대감이 높다.

    건설사들의 해외수주를 돕기 위해 정부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해외 인프라 수주 활성화 전략'을 통해 한때 수출 역군이었던 해외수주를 통해 정체 상태에 놓인 수출 동력을 회복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해외건설·플랜트의 날' 기념식에서 "해외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민관 합동 원팀 코리아를 구성해 사업 발굴 단계부터 준공까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외교를 전방위 지원하겠다"며 "기업들이 건설·기획 등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고부가가치 분야 기술개발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첫 번째 활동으로 4일부터 9일까지 사우디를 방문한다"며 "현지 정부 기관, 기업 등 발주처들에 적극 홍보하고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해외건설업 특별연장 근로제 가용 기한을 현행 90일에서 180일로 연장해 건설사들의 해외경쟁력 확보에도 힘을 실어줄 계획이다.

    특별연장근로는 ▲재해·재난 수습 ▲생명·안전 ▲돌발 상황 ▲업무량 폭증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 등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 근로자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거쳐 근로자가 '주 52시간' 넘게 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해외 건설공사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간을 확대했다고 고용부는 설명했다. 앞서 중동, 동남아, 몽골 등 각국으로 진출한 건설업체들은 모래폭풍, 우기, 얼어붙은 땅 등 현지 환경과 기후 사정 때문에 일정 기간 집중적인 근로가 불가피하다며 주 52시간 초과 근무 일수 확대를 요구해왔다.

    건설업계에서는 정부의 이 같은 지원사격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건설사들의 해외수주를 위한 실용적인 방안들이 많이 검토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