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주도로 국회 문턱 넘은 지 12일 만에 다시 국회로재의결에 과반 출석·출석 3분의 2 이상 찬성 필요사실상 폐기 절차 밟을 듯… 정국 급랭 불가피
  • ▲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야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정국 냉각이 불가피하지만,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토록 한 개정안이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기고 농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당이 국회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재의결 요건에 따라 개정안은 사실상 폐기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양곡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했다.

    법률안 거부권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다. 지난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원회의 상시 청문회 개최와 관련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지 7년여 만이다.

    양곡법 개정안은 수확기 쌀 생산량이 예상생산량을 3~5% 웃돌거나 쌀값이 평년보다 5~8% 이상 떨어지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초과생산량을 모두 사들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특정 법안 심사를 60일 안에 마치지 못하면 해당 상임위원회 의결로 법안을 본회의에 직접 넘길 수 있다는 국회법을 이용해 지난해 12월 28일 단독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직회부했다. 개정안은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12일 만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와 여당은 양곡법 개정안이 민주당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라며 반대해왔다. 먼저 윤 대통령은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한 지난해 10월 20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에서 "농민들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표했다. 올 1월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도 "무제한 수매는 결코 우리 농업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대 뜻을 분명히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29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당정협의를 한 뒤 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우리 농업을 파탄으로 몰 것"이라며 "대통령께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건의하려 한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국민의 쌀소비량과 상관없이 초과 생산한 쌀을 정부가 다 사들이게 하는 '남는 쌀 강제매수'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한 총리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문제점으로 △시장 수급조절 기능 마비 △미래농업 투자 재원 소진 △식량안보 저해를 꼽았다.

    한 총리는 재정부담과 관련해 "개정안대로면 재정부담은 연간 1조 원 이상"이라며 "이는 첨단 스마트팜 300개를 조성하고 청년 벤처농업인 3000명을 양성하며 농촌을 이끌 인재 5만 명을 키울 수 있는 돈"이라고 설명했다.
  • ▲ 경기도 용인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저온저장고에 보관 중인 쌀.ⓒ연합뉴스
    ▲ 경기도 용인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저온저장고에 보관 중인 쌀.ⓒ연합뉴스
    거부권에 가로막힌 양곡법 개정안은 다시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법안이 국회에서 재의결되면 그대로 법률로 확정되며 정부도 더는 이를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법안 재의결에는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 의석수(115석)는 재적 의원(299명)의 3분의 1을 넘는다. 따라서 이변이 없는 한 개정안은 폐기 절차에 들어갈 전망이다.

    다만 이번 거부권 행사로 정국 냉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가뜩이나 야당이 정부 정책에 어깃장을 놓는 상황에서 민생 관련 각종 정책·현안이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