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주도로 국회 문턱 넘은 지 12일 만에 다시 국회로재의결에 과반 출석·출석 3분의 2 이상 찬성 필요사실상 폐기 절차 밟을 듯… 정국 급랭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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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일 야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정국 냉각이 불가피하지만,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토록 한 개정안이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기고 농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여당이 국회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재의결 요건에 따라 개정안은 사실상 폐기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정부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양곡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했다.법률안 거부권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다. 지난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원회의 상시 청문회 개최와 관련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지 7년여 만이다.양곡법 개정안은 수확기 쌀 생산량이 예상생산량을 3~5% 웃돌거나 쌀값이 평년보다 5~8% 이상 떨어지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초과생산량을 모두 사들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특정 법안 심사를 60일 안에 마치지 못하면 해당 상임위원회 의결로 법안을 본회의에 직접 넘길 수 있다는 국회법을 이용해 지난해 12월 28일 단독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직회부했다. 개정안은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12일 만에 제동이 걸렸다.정부와 여당은 양곡법 개정안이 민주당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라며 반대해왔다. 먼저 윤 대통령은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한 지난해 10월 20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에서 "농민들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표했다. 올 1월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도 "무제한 수매는 결코 우리 농업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대 뜻을 분명히 밝혔다.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29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당정협의를 한 뒤 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우리 농업을 파탄으로 몰 것"이라며 "대통령께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건의하려 한다"고 밝혔다.한 총리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국민의 쌀소비량과 상관없이 초과 생산한 쌀을 정부가 다 사들이게 하는 '남는 쌀 강제매수'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한 총리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문제점으로 △시장 수급조절 기능 마비 △미래농업 투자 재원 소진 △식량안보 저해를 꼽았다.한 총리는 재정부담과 관련해 "개정안대로면 재정부담은 연간 1조 원 이상"이라며 "이는 첨단 스마트팜 300개를 조성하고 청년 벤처농업인 3000명을 양성하며 농촌을 이끌 인재 5만 명을 키울 수 있는 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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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에 가로막힌 양곡법 개정안은 다시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법안이 국회에서 재의결되면 그대로 법률로 확정되며 정부도 더는 이를 막을 수 없다.하지만 법안 재의결에는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 의석수(115석)는 재적 의원(299명)의 3분의 1을 넘는다. 따라서 이변이 없는 한 개정안은 폐기 절차에 들어갈 전망이다.다만 이번 거부권 행사로 정국 냉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가뜩이나 야당이 정부 정책에 어깃장을 놓는 상황에서 민생 관련 각종 정책·현안이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