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전기료 인상 여부 결정 앞두고 추가 자구책 마련중한전공대 출연금 무단전용 도마 위… 與 "자신들 잇속만 채워"정승일 사장, 감사결과 은폐지시 의혹도… 文정부 관료출신전문가 "전문경영인 영입해야 한전 위기 극복"
  • ▲ 한국전력 ⓒ연합뉴스
    ▲ 한국전력 ⓒ연합뉴스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해 한국전력공사에 대한 고강도의 자구노력이 요구되는 가운데 한국에너지공과대(KENTECH·이하 한전공대)가 수백억 원의 지방자치단체 출연금을 무단 전용하고, 한전이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승일 한전 사장의 경영능력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전은 2021년 5조8600억 원, 지난해 32조6000억 원쯤의 적자를 내는 등 120년 넘는 한전의 역사상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한전은 오는 2026년까지 14조 원쯤의 재무개선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추가적인 자구대책 마련을 요구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한전공대의 출연금 무단전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갈 길 바쁜 한전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한전공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광주·전남지역 공약으로, 세계 유일의 에너지 특화 연구창업형 인재를 양성한다며 국정과제로 추진됐다. 광주과학기술원과의 중복 논란, 전력산업기반기금 활용 등 갖은 논란에도 지난해 3월, 문 전 대통령 임기 내 개교해야 한다며 축구장 48개 면적에 겨우 본관동 하나만 지어진 채 문을 열어 '졸속 개교'라는 비판을 받았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전은 앞으로 10년간 한전공대에 1조6000억 원쯤을 출연해야 하는 처지다. 한전은 올해 한전공대에 1016억 원을 출연할 예정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5개 발전 자회사 등은 572억 원을 출연할 계획이다. 지자체는 200억 원, 정부는 309억 원을 각각 출연한다.

    한전의 재무상황이 튼튼하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전은 당장 직원들의 성과급도 줄여야 할 만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가뜩이나 적자인 한전이 빚을 더 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전공대는 씀씀이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기준 총장 기본급이 3억 원이다. 성과급은 별도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총장 1억9000만 원,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 총장 1억6800만 원 등 4대 과학기술원보다 최대 2배쯤 높은 수준이다.
  • ▲ 전남 나주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KENTECH) 전경 ⓒ연합뉴스
    ▲ 전남 나주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KENTECH) 전경 ⓒ연합뉴스
    에너지전문가들 사이에선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한전공대가 존폐의 갈림길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의견마저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공대 업무진단 컨설팅 결과, 한전공대가 지자체 출연금 391억 원 중 208억 원을 무단으로 전용하고 법인카드로 16억7000만 원을 위법하게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실이 입수한 한전공대 업무컨설팅 자료에 따르면 직원보수규정에 명시되지 않은 보수를 교직원 18명에게 추가지급해 인건비 1억500만 원이 지출됐다. 계약직 직원 18명은 애초 계약과 달리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됐다. 직원에 대한 성과평가 규정이 없다며 성과급을 일괄적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시간외 근무수당 부정수령도 상당수 적발됐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지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전공대에 대한) 감사결과를 (산업통상자원부에) 보고하지 못하도록 은폐 지시를 주도한 사람이 현재 한전 사장"이라며 "정부는 이 문제를 철저히 조사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총장은 "한전은 국민 고통은 나 몰라라 한 채 자신들 잇속 채우기를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산업부 차관을 지내다 2021년 6월 한전 사장으로 임명됐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정 사장이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던 한전공대 설립에 대한 논란을 우려해 감사결과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보고 있다.

    정 사장이 진두지휘하는 한전의 재무 개선 노력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전은 불필요한 사업정리와 부동산 매각 등으로 지난해 5조3000억 원쯤의 재무개선을 이뤘다고 발표했지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한전이 알짜배기 부동산을 헐값에 판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해외사업 지분 등 해외자산의 경우 당장은 활용하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유하고 있다가 적절한 시점에 활용하는 것이 이득인데, 근시안적으로 자산 현금화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 정승일 한전 사장.ⓒ연합뉴스
    ▲ 정승일 한전 사장.ⓒ연합뉴스
    정 사장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사상 최대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태생적 한계(?)가 있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없잖다. 정 사장은 사실상 탈원전 논란을 부른 문재인 정부 사람으로 분류된다. 정 사장은 행정고시 33회로 공직에 발을 들인 후 26년간 지식경제부와 산업부에서 근무했으며 산업부를 떠났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가스공사 사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9개월 만에 산업부 차관으로 임명돼 2년 동안 근무하다가 2021년 6월 한전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원전 생태계 복원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교체가 예상됐지만,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한 한전을 당장 맡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임기를 보장받은 케이스.

    전문가들은 정부 관료 출신이 아니라 전문경영인(CEO)를 영입해야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를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지금의 한전 사장이 이전 정부에서 탈원전에 앞장섰다. 아직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한전 적자는 탈원전이라는 정부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적자다. 비싼 발전을 쓰는 것은 회사가 망하는 길인데 정 사장이 (산업부 차관 시절까지 포함해) 5년 동안 그것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전문경영인을 도입한다고 회사 사정이 바로 나아지지는 않지만, 관료 출신이 아닌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국민들 앞에 '전임 사장이 이랬으니 앞으로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회사를 운영하겠다'고 밝혀야 한다"면서 "한전의 자구노력도 정 사장한테 맡기면 한전을 공중분해하는 것밖에 안된다. (정 사장은) 회사경영을 해보지도 않았고 '영혼없는 공무원'의 대표다. (한전을 살릴) 경영노하우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정 사장 임기가 1년여 남아 한전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정건전화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장기적인 안목보다 당장의 보여주기식 대책으로 책임을 피하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당의 추가 자구책 마련 요구에 임원 뿐 아니라 부·차장급의 성과급 반납이 대책으로 거론되는 것도 '소나기를 피하자'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한전은 정 사장이 한전공대의 감사결과를 은폐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한전공대 감사규정과 감사조직, 상근감사 선임 등 제대로 된 감사시스템을 구축해 문제점들을 바로 잡도록 할 것"이라며 "향후 있을 정부의 감사에 적극 협조하며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