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준비 IFRS17 무색"시장개입은 아냐"… 군색 해명일부 상장사 투자심리 위축 우려
  • 보험사의 기업가치를 평가할 새로운 지표로 기대를 받았던 '계약서비스마진(CSM)'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금융당국이 뒤늦게 규제에 나섰다.

    새 회계제도(IFRS17)는 원칙중심(사업비·해지율 등을 포함한 계리적 가정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것)으로 보험사의 자율권 확보가 핵심인데 정작 재량권 부분에서 감독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IFRS17 도입으로 회계정보가 회사별로 다른 기준으로 산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과거 수차례 제기됐음에도 대비책에 손을 놓고 있다가 '늦장대응'이란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행보에 보험사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23개 보험사 최고재무책임자(CFO)와 간담회를 열고 이달 안에 IFRS17에 따른 세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급기야 일부 보험사를 대상으로 CSM 관련 수시 검사를 진행한다. 

    IFRS17 도입과 맞물려 보험사의 CSM 산정 방식이 중구난방인데다 그 측정치도 과도하다는 업계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보험사마다 조(兆) 단위 CSM을 산출하며 1분기 실적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과 함께 지표의 신뢰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 지난 9일 IFRS17로 변경된 후 1분기 잠정실적을 공시한 롯데손해보험은 1분기 만에 수백억원의 당기순이익 흑자전환과 함께 역대급 영업이익을 거뒀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손보가 공시한 잠정 영업실적을 보면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793억7500만원으로, 전년 동기(105억600만원)와 비교하면 무려 655.5% 증가했다.

    직전인 지난해 4분기에 731억48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1분기만에 무려 1500억원 가량의 순익 증가가 발생한 것이다. 

    영업이익 역시 창사 이래 개별 분기 최대 규모인 1050억3000만원을 거뒀다. 보험영업이익 470억원, 투자영업이익 580억원 등 1년전보다 628.5% 급증했다.

    롯데손보 측은 "1분기 최대 실적을 올린 배경엔 2019년 대주주 변경 이후 '내재가치 중심경영'이 자리잡고 있다"며 "지난해 적자를 감수하고 CSM 성장을 위한 체질개선 작업을 이어온 것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고 자평했다. 

    IFRS17 도입에 맞춰 체질개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험사의 매출액을 의미하는 원수보험료는 지난해 4분기 6383만5300만원에서 올 1분기 5953만6400만원으로 7.7% 가량 줄었다. 아무리 체질개선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매출액이 줄었는데 오히려 순익은 대폭 증가한 셈이다.

    기존 회계제도는 수취한 보험료를 그대로 보험수익으로 인식하는 현금주의를 적용했으나 IFRS17는 보험계약으로부터 미래 현금흐름을 예측해 현재가치로 환산하게 한다. 이에 따라 CSM이 수익성 지표로 도입됐는데 보험사들이 스스로 결정한 손해율, 해약률 등 계리적 가정을 기초로 CSM을 재량껏 산출한다.

    하지만 1분기 실적이 속속 발표되면서 보험사가 CSM 규모를 높게 산출하기 위해 유리한 가정을 활용하면서 분식회계 논란까지 일자 뒤늦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며 금융당국이 나선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금융당국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원칙중심의 새 국제제도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데다 세세하게 정해놓은 한국식 회계정책을 글로벌 제도에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IFRS17 제도를 주도적으로 도입한 건 금융당국이다. 10여년 전인 2013년부터 'IFRS17 도입 준비단'을 만들어 제도 도입에 앞장섰으면서도 이제서야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며 나선 것이다. 여기에 회계정보가 회사별로 다른 기준으로 산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과거 수차례 제기됐지만 재량에 맡기겠다며 손을 놓고 있었다.

    이에 대해 차수환 금감원 부원장보는 "우리가 10년간 준비하면서 원칙중심이라는게 기본 베이스로 깔려있기 때문에 IFRS17 도입하면서 자율성을 부여하는 걸로 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당장의 실적과 관련돼 혼란이 발생했다"며 "CSM과 관련해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한다기보다는 맞지않게 적용되고 있는 부분을 바꾸는 걸로 시장개입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가이드라인 제시로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는 분위기다. 특히 상장 보험사들은 일률적 기준에 의해 CSM 규모가 산출될 것이란 오해 때문에 투자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살펴본 결과 감독당국이 계리 기준을 제시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며 "처음에는 자율성을 주겠다며 기껏 실적을 발표했더니 이제와서 가이드라인에 맞춰 실적을 고치라고 하는 건 엄연한 시장개입"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