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부총리 "밀 가격 하락 맞춰 라면도 낮춰야" 공개 압박경기바닥론 솔솔… 경기부양 전환前 '물가안정 확고히' 분석秋, 20일 기업인 간담회… 민간 주도 경제활력 당부할 듯
  • ▲ 추경호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 추경호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경제부총리가 업계에 라면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올해 3분기 전기요금 동결이 예상되는 등 정부가 물가 하향 안정에 바짝 고삐를 쥐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하반기 경기부양 시기와 방법을 두고 고민이 깊은 모습이다. 반면 야당은 35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카드를 꺼내들고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동안 "경기대응보다 물가안정이 우선"이라는 견해를 고수해왔다. 지난 8일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도 "거시정책을 잘못 쓰면 안정 기조를 잡아가려는 상황에서 다시 물가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 당분간 물가 안정 기조를 확고히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추 부총리는 지난 18일에는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라면가격에 대해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추 부총리는 기존대로 경제 정책을 물가 안정 기조로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추 부총리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기가 바닥을 확인하고 회복 조짐이 보인다고 얘기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터널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며 "이번 달이나 다음 달에는 2%대 물가에 진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물가 안정이라는 정책적 목표는 조만간 달성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은연중에 드러낸 셈이다.
  • ▲ 대형마트에 진열된 라면 ⓒ연합뉴스
    ▲ 대형마트에 진열된 라면 ⓒ연합뉴스
    이 때문에 추 부총리가 직접 라면가격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은 곧 2%대 진입이 전망되는 물가 안정 기조를 확실하게 다지고, 다음 단계인 '경기 부양'으로 정책 전환을 서두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제품의 하락에 힘입어 3.3%를 기록했지만, 가공식품과 전기·가스·수도요금 등 공공요금은 아직 높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라면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0월 11.7%로 오른 뒤 8개월 연속 10%를 넘었다. 전기·가스·수도요금은 5월 23.2%를 기록하는 등 두 달 연속 20%대에 머물렀다.

    정부는 3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라면가격 인하 압박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3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는 21일쯤 결정이 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로선 물가를 조속히 안정화하고 경기 정책을 턴(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 애초 예상했던 '상저하고(上底下高)' 전망에 먹구름이 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외 주요기관은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 등으로 말미암아 세계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은 반도체 부진과 수출 악화로 줄줄이 하향 조정되는 실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5%로, 한국은행은 1.6%에서 1.4%로, KDI는 1.8%에서 1.5%로 각각 내려잡았다.

    다만 정부는 정책 기조를 경기 부양으로 전환해도 무리하게 나랏빚을 끌어다 쓰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 모두발언에서 야당이 주장하는 추경 편성과 관련해 "추경 재원이라는 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며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갚아야 할 빚이기 때문에 최대한 억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쓸 만한 재정 카드가 여의찮은 실정이다. 올해 1~4월 세수는 1년 전보다 33조9000억 원이나 덜 걷힌 상태다. 설상가상 미국발 통화긴축 불안이 여전한 상황에서 섣불리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기도 녹록잖은 상황이다.

    결국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각종 규제 완화로 기업 활동을 지원해 민간 부문에서의 경제 활력을 북돋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추 부총리가 오는 2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주요 대기업 인사들과 만나는 것도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민간에서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기업인들의 어려운 점을 경청한 뒤 이를 다음 달 초 발표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국채 발행 규모를 최소화하면서 추경이 가능하다"며 35조 원 규모의 민생 추경 편성을 재차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물가 안정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나랏빚 없이 민간 활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에 골치를 앓고 있는 반면 야당은 손쉬운 추경 카드로 수십조 원의 돈을 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추 부총리는 지난 13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민주당의 추경 요구에 "지금 세수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면서 35조 원을 더 쓰겠다고 하면 어떡하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야당이) 35조 원 추경을 처음 말했을 때는 지출 효율화를 위한 '감액 추경'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이해했다"며 "(하지만 감액추경이 아니었고) 이 문제는 냉철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정부는 추경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