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라이언즈 2023] 서울라이터의 칸 라이언즈 탐방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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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은 70년을 맞은 칸 라이언즈의 수상작들과 주요 부문 시상식이 있는 날, 그리고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엔 칸의 칼튼 해변에서 클로징 파티가 펼쳐질 예정이다. 클로징 파티의 주제는 'Party Like It’s 1954!' 70년 전 칸 라이언즈가 처음 열린 1954년의 느낌으로 파티가 연출될 듯 하다. 과연 개성있는 크리에이터들이 어떤 복장으로 파티장에 등장할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오전 11시 30분 테라스 스테이지에선 전 세계 100여개 국에서 날아온 30세 이하 영 크리에이터들의 컴피티션 결과 발표가 있었다. 각 나라마다 예선전을 치른 뒤 광고 국가대표로 칸에 모인 영 라이언들은 총 400여 명. 세션장은 인파로 가득했고 들뜬 분위기였다. 수상작 발표 현장은 마치 대학 축제의 한가운데인듯 젊은 에너지와 열기로 끓어올랐다. 부문별로 쇼트리스트와 수상자가 호명될 때마다 기분 좋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영 라이언즈의 컴피티션은 꽤나 순발력을 요한다. 각 부문별 과제를 받은 후 영상은 48시간, 그 외 부문은 24시간 동안 결과물을 만든 뒤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형식이다. 올해 한국에서는 총 10명의 영 라이언즈가 본선에 참가했다. 특히나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후배 두 명이 한국 대표로 출전해 나 역시 긴장되는 마음으로 결과를 지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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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부문의 발표를 지나 기다리던 미디어 부분의 발표 시간! 수상작 발표 전 공개하는 쇼트리스트에서 반가운 이름 'South Korea'를 발견했다. 칸 라이언즈가 자신이 속한 회사를 대표해 경쟁한다면, 영 라이언즈는 자신이 속한 나라를 대표해 경쟁하는 일종의 국제 크리에이티브 경연대회다.드디어 브론즈, 실버에 이어 최고상인 골드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있는 상황!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진행자의 입에서 'South Korea'가 힘차게 호명됐다. 세상에! 각 나라를 대표해 한 자리에 모인 영 크리에이터 중에서도 당당히 1등이라니!영 라이언즈 골드의 주인공은 대홍기획의 아트 디렉터 김현, 송서율 두 사람. 관심도 지원도 부족한 상황 속에서 오직 본인들의 의지와 열정으로 이 자리까지 온 두 사람이기에 더욱 자랑스럽고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어서 발표한 마케터스 부문에서 SK텔레콤의 영 라이언즈가 연이어 브론즈를 수상! 한국의 영 파워를 한번 더 각인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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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라이언즈의 하이라이트! 티타늄, 글래스 라이언즈, 필름 등 칸 주요 부문의 옥석을 가리는 마지막 어워드쇼를 기다리며 드뷔시 극장을 찾았다. 무려 70년 간 사랑 받은 역대 칸 수상작을 상영하는 '70 years of Groundbreaking Creativity'를 즐기기 위해서였다.초기 상영작은 오래 전 작품이다보니 나 역시 처음 보는 게 많았고, 처음 광고인을 꿈꾸게 한 추억의 광고들도 대거 등장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수많은 레전드 광고들을 같은 업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함께 웃고 공감하고 추억하며 밖을 나오니 이미 시상식이 열리는 뤼미에르 극장 앞에는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오늘 시상식에서 가장 기대되는 건 글래스 라이언즈와 티타늄 라이언즈 부문 쇼트리스트에 오른 제일기획의 '똑똑(Knock Knock)' 캠페인의 수상여부 였다. 글래스 및 티타늄 부문 쇼트리스트에 오른 참가팀은 담당 심사위원들 앞에서 실제로 프리젠테이션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라이브 저징(Live Judging)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케이스 영상만으로 심사하기에 부족한 부분들을 확인하고 검증하기 위해서다. 라이브 저징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기 때문에 출전한 제일기획팀에게 작은 응원을 보태고자 나 역시 조용히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똑똑' 캠페인은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와 한 공간에 있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피해자들을 위한 새로운 신고 방식으로, 112에 전화를 건 후 아무 번호나 두 개를 똑똑 누르면 경찰은 이를 위험 상황으로 인지, 피해자의 휴대폰으로 링크를 전송하고 카메라로 현장 상황을 살피는 획기적인 신고 시스템이다.글래스 라이언즈는 크리에이티비티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 의미있는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똑똑 캠페인은 이 상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고 심사 현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큰 상을 기대해도 좋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 드디어 입장한 시상식 현장, 글래스 라이언즈는 첫번째 부문이다. 칸 라이언즈 시상대에는 실버와 브론즈를 제외한 골드와 그랑프리 수상자만이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오늘 시상식에서 전달할 상패들을 무대 위에 나란히 줄지어 늘어놓는 방식도 매력적이다. 여러 개의 사자 중 글래스 라이언즈는 이름답게 투명한 유리사자로 만들어져 있었다.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듯한 담대한 이미지의 유리 사자가 다소곳이 곧 만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드디어 대망의 그랑프리가 호명될 차례! 복도까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뤼미에르 극장 가득 대한민국 제일기획의 이름이 불려졌다. 세상에나! '똑똑' 캠페인이 브랜드 익스피리언스&액티베이션 라이언즈(Brand Experience & Activation Lions)의 골드 수상에 이어 그랑프리까지 거머쥐다니! 이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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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해외 광고제에 참석했을 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은 영화도 드라마도 음악도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데 왜 유독 광고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냐고. 한국 광고계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특이한 구조이고, 제작 현장에서 겪는 문화적 차이를 구구절절 다 설명할 수 없어 그저 씁쓸하게 웃어넘겼던 기억이 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때 나의 반응은 어쩌면 스스로를 향한 핑계가 아니었을까 시인한다. 지금 세계를 주름잡는 영화도 드라마도 음악도, 처음부터 이렇게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K-컬처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한발 한발 허들을 넘고 크고 작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성실히 일궈낸 땀과 노력의 산물일 것이다.'왜 우리는 글로벌 광고계에서 이렇게나 입지가 작지?'를 궁금해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하면 한국 광고의 입지를 조금 더 확장할 수 있을 지 곰곰히 따져봐야 했다. 누군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큰 상을 받아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상을 받고 인정 받기 위해 도전해야 했다. 5일 간 펼쳐진 칸 라이언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 또한 하고 싶다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칸 라이언즈에 오는 방법은 생각보다 여러 길이 있다. 영 라이언즈, 퓨처 라이언즈, 라이언즈 아카데미, 씨잇비잇(See It Be It) 등, 꽤 많은 기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칸 라이언즈를 꿈꾸고 있다면, 당장 도전하길 바란다. 이 곳 칸에 먼저 도착하는 사람은, 보다 먼저 꿈꾸는 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