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26.9% 인상요구… 文정부 5년간 인상률의 73%에 해당경영계 "사회보험·주휴수당 포함시 최저임금의 140% 인건비로 부담"업종별 차등적용 표결 끝에 '부결'… 반대 15·찬성 11표근로자위원 해촉 놓고도 '대립각'… 법정시한 넘길 듯
  • ▲ 2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 22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법정처리시한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최저임금위원회의 노·사 양측이 임금 수준의 '최초 요구안'을 두고 본격적인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올해 7차례에 걸친 최임위 전원회의에서 경영계는 경제 전반의 어려움을 고려해 '속도조절'을 호소했지만, 노동계는 역대급 인상률을 적용한 1만 2210원을 내놨다. 이는 직전 문재인 정부에서 단행한 5년간 인상률의 73%에 달하는 수준이다. 급격한 인상에 또 다시 '경제 패닉'이 닥쳐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8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근로자위원 8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26명이 참석했다. 노·사·공 위원들의 각 정수는 9명이지만, 이 중 근로자위원인 김준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은이 지난 2일 고공 농성 중 경찰 진압에 폭력 대응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이날 회의에서 위원들은 법정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임금 수준과 업종별 차등적용 등 주요 의제에 대해 속도감 있는 논의를 펼치기로 했다. 노·사가 요구하는 최초 요구안도 공개됐다. 근로자위원 측은 올해 최저임금보다 26.9% 인상한 1만 2210원을 최초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월 209시간 월급으로 환산하면 255만 1890원이다. 기존에  장외에서 주장했던 금액은 24.7% 인상한 1만 2000원이었다. 최초 요구안을 내면서 210원이나 더 늘었다.

    노동계는 이날 회의보다 1시간여 일찍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이번 인상의 핵심은 소득 진작과 최저임금 노동자 가구의 생계비 반영"이라며 "최저임금 노동자는 혼자 생활하지 않고 식솔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최임위는 '비혼 단신 가구'의 생계비만 고려하고 있다. 노동계는 올해 연구용역을 통해 적정 생계비를 계산했고 이는 매우 타당한 근거"라고 주장했다.

    박희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모두가 어렵다고 하지만, 정말 모두가 어렵지는 않다. 공공요금 인상 등 부자만을 위한 대폭 인상은 소상공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며 "(최초 요구안은) 최저임금이 명시하는 생계비와 노동 생산성, 소득분배, 세계 여러나라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흐름 등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경영계는 난색을 표했다.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26.9% 인상한 최저임금은 영세 소상공인 등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한 채 이들 모두 문 닫으라는 것과 같다"며 "최저임금에 사회보험과 주휴수당 등을 고려하면 사업주 대부분은 최저임금의 약 140%에 달하는 인건비를 부담해야 한다. 더 이상 빚내서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 2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근로자위원 측의 최초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위원들이 자리하고 있다.ⓒ김기랑 기자
    ▲ 2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근로자위원 측의 최초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위원들이 자리하고 있다.ⓒ김기랑 기자
    앞서 문재인 정부 5년(2017~2022년) 동안 최저임금은 총 36.7% 인상됐다. 특히 임기 첫 해와 이듬해에 각각 16.4%(7530원), 10.9%(8350원) 가파르게 올랐다. 이는 지난 2000년(16.6%) 이후 18년 만에 가장 높은 인상률이다. 최저임금은 이후에도 △2020년 2.8%(8590원) △2021년 1.5%(8720원) △2022년 5.1%(9160원) 등 소폭 상승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만에 최저임금이 27% 가까이 치솟자, 당시 영세 사업자들이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고용을 줄이면서 실업·폐업이 늘고 업종별 성장률이 추락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했다. 고용시장이 경직됐고 이는 경제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쳤다.

    현재 노동계가 요구하는 26.9%의 인상안은 문 정부 5년 동안 인상률의 73%에 해당한다. 경영계 등 일각에서는 문 정부 2년간의 급등이 불러온 부작용을 되풀이할 수 있는, 무리한 인상요구안이라는 견해다.

    사용자위원 측은 차등적용에 대한 결론이 먼저 나야 한다며 요구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9620원 동결 기조를 유지할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저임금은 노동계와 경영계가 내놓는 요구안을 두고 격차를 좁혀가는 방식으로 결정한다.

    그동안 노·사 간 의견이 평행선을 달렸던 차등 적용 여부는 이날 표결 끝에 업종별 구분없이 일괄 적용하기로 결판 났다. 투표 결과 반대 15표, 찬성 11표로 업종별 차등적용은 부결됐다. 그동안 사용자위원은 소상공인 등의 임금지급 능력을 고려한 차등적용을, 근로자위원은 일괄적용을 각각 주장해왔다. 경영계는 체인화 편의점, 택시 운송업, 숙박·음식점업(일부 제외) 등 3개 업종에는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해 적용한 것은 제도 도입 첫해인 1988년뿐이다.

    경총은 입장문을 내고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며 "합리적 기준에 대한 고려와 일률적 시행에 따른 부작용 등을 고민한 끝에 (차등적용 필요성을) 제시했는데도 또다시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허탈감과 무력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분 적용이 무산된 이상 내년 최저임금은 반드시 현재 최저임금 수준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려운 업종을 기준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속된 근로자위원인 김 사무처장에 대한 해촉 건을 두고도 충돌이 일어났다. 고용노동부는 21일 김 사무처장이 최임위 위원으로서 품위를 훼손했다며 해촉을 제청했다. 이에 한국노총은 즉각 직권 남용이라며 반발했다.

    노동계는 이날 회의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김 사무처장의 해촉에 대해 노동 당국을 비판했다. 기자회견장에서 류 사무총장은 "노동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해촉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전원회의에서도 박 부위원장은 "부당한 개입을 진행하고 있는 노동부에 강력한 항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근로자위원 측은 대리 표결권을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공익위원 측은 선을 그었다. 박준식 위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심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새 위원이 위촉돼 원활히 진행되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근로자위원 측에 신규위원 추천을 요청하고 있는 노동부의 입장에 힘을 보탠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로선 최임위가 오는 29일로 예정된 법정처리시한을 넘길 공산이 커보인다. 사용자위원 측은 아직 최초 제시안마저 내놓지 않은 상태이고 차등적용 무산에 따른 후폭풍도 우려된다. 노동계가 기존 주장보다 인상한 금액을 요구하는 강수를 꺼내든 것도 노·사 간 더 큰 분란을 일으킬 만한 소재다. 김 사무처장의 빈자리를 두고 각 대리 표결권과 신규위원 위촉을 원하는 노·정 간의 대립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