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판박이'PF 부실 괴담… 뱅크런 우려 고조정부 "관리가능"… 위기설 차단 급급
  • ▲ 서울시내 한 새마을금고 점포ⓒ연합뉴스
    ▲ 서울시내 한 새마을금고 점포ⓒ연합뉴스
    [편집자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작은 2000년대 초반 미국이 9·11 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장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에 집중되면서다. 집값이 오르자 너도나도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줬고 파생상품들이 줄줄이 나왔다. 하지만 2006년 기준금리가 꾸준히 상승하는 가운데 집값은 하락하기 시작했고 대출상환 능력이 부족해진 서브프라임 대출들이 디폴트되면서 금융기관들은 담보를 처분해 손실을 보전하려 했으나 집값은 더욱 빠르게 하락했다. 결국 2008년 미국의 4대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모기지 투자에서 입은 손실로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발생시켰다.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 당시 상황과 너무나 닮아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수년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속에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렸고 우후죽순격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들이 추진됐다. 부동산 PF 시장 내 금융사들의 참여 방식이 다양해지고 유동화증권 등을 통한 자본시장과의 연계성도 매우 커져 있는 상태다. 최근 기준금리가 꾸준히 오르면서 부동산 PF 사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하자 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한 징후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미노처럼 번져 가는 금융권의 부동산 PF 리스크 현황을 살펴보고 정책적 해법을 모색해봤다.

    단 36시간. 올해 1분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유동성 위기설이 돌자 예금자들은 36시간 만에 420억 달러를 인출했다. 원화로 55조원이 넘는 돈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보험 스타트업 커버리지 캣 창업자인 맥스 조의 말을 인용해 동료 창업자들이 SVB에서 회사 자금을 빼기 위해 '미친 듯이' 스마트폰을 두드렸다고 보도했다. 국민 대부분이 스마트폰으로 은행업무를 보는 한국에서도 일어나지 말란 법 없는 풍경이다.

    뱅크런 사태에 직면한 새마을금고가 밝힌 상환준비금은 13조3611억원이다. 고객 예금을 내어줄 만큼 충분히 쌓아뒀다는 근거로 내세웠지만, 반대로 SVB 사태에서 인출된 돈만큼 뱅크런이 벌어진다면 파산한다는 의미가 된다.

    새마을금고의 4월 말 수신 잔액은 258조 2811억원으로 2월 말 기준 265조2700억원에서 7조원 감소했다. 대출 연체율이 높아지면 만기를 연장해주거나 회수 가능성이 높은 차주에게는 추가 대출로 시간을 벌 수 있지만, 뱅크런에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새마을금고에서 예금을 빼간 예금주가 재가입하면 기존의 비과세 혜택과 약정 이율을 복원시키기로 한 것도 대규모 뱅크런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서다. 2011년 금융위기 여파로 새마을금고 뱅크런 우려가 커졌을 때도 동원한 조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SVB 파산사태에서도 미국 금융당국이 예금을 전액 보장하겠다고 했음에도 불안심리가 확산되면서 여러 은행들이 순식간에 파산했다"며 "새마을금고 뿐 아니라 단위 농협, 신협 같은 경우도 연체율이 1금융권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단순한 책임자 징계에서 그치지 않고 부실금고 구조조정을 통한 통폐합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 서울시내 한 새마을금고 점포ⓒ연합뉴스
    ◆ "안심하라"는 정부… 대책은 고작 1조원 지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는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11월 레고랜드발 유동성 위기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제기됐던 우려다. 정부는 그때마다 "관리가능한 수준"이라며 시장 안정 메시지를 내기 급급했다.

    증권사 PF대출 연체율이 지난해 말 10.38%에서 올해 1분기 15.88%까지 치솟자 금융당국이 내놓은 조치는 그동안 운영되던 정부 지원책 운영기간을 연장한 게 전부다. 5월 종료 예정이었던 PF-ABCP(자산유동화기업업음) 매입 프로그램을 내년 2월까지 연장 운영하고, PF-ABCP를 대출로 전환하는 증권사에 규제비율을 완화시키는 내용이 골자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PF와 관련한 정책자금 공급실적이 24조1900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지만, 올해 추가공급된 자금은 9000억원에 불과했다.

    상황에 심각성을 감지한 당국이 다시 마련한 정책자금도 1조원 수준에 그친다. 오는 9월까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5000억원을 출연하고 블라인드 펀드로 민간투자 5000억원을 이끌어 낸다는 계획이다. 이 역시 고금리 기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1조원으로는 사태 수습이 불가능할 것이란 우려가 끊이질 않는다.

    뱅크런 우려에 대응하는 방식도 과거와 다르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저축은행 전반의 부실이 상호금융으로 전이된 2011년 사태와 달리 최근 PF 부실 우려는 부동산 가격 급락이 원인이라는 점에서 접근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중은행 고위 괸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증권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이 뱅크런을 겪으며 급격히 부실해졌다"면서 "당시 금융사들을 1금융권이 인수합병해 위기를 넘겼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