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 그리스 신용등급 'BB'→'BBB' 상향… 빅3 신평사도 상향 기대감급진좌파→중도우파 정권교체 후 포퓰리즘 지양, 기업 감세·외투 유치에 적극수출부진·세수부족 겪는 한국, 타산지석 삼아야… "법인세율 추가 인하 등 필요"野 해법은 35兆 빚 내서 현금 뿌리자는 것… 정부 "추경은 적자 더 키울 것"
  • ▲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연합뉴스
    ▲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연합뉴스
    과거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이 12년 만에 상향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중도우파 성향의 신민주주의당(신민당)을 이끄는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의 경제개혁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올 6월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미초타키스 총리는 경제부흥을 기치로 기업 감세, 외국인 투자 유치 등에 힘을 쏟았다.

    일각에선 우리나라가 수출 부진과 역대급 세수펑크 등 복합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로 활로를 뚫기 위해선 법인세율 추가 인하 등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외신 등을 종합하면 국제신용평가사 DBRS 모닝스타가 최근 그리스의 장기 외화·자국 통화 표시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BB)에서 '투자적격'(BBB)으로 상향했다. DBRS는 피치·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무디스 등 3대 국제 신평사보다 인지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이 이 회사가 매기는 신용등급을 인정하고 있어 유럽 내 영향력은 높은 편이다. 3대 신평사들도 그리스에 대한 투자 등급을 상향할 것으로 관측되는 이유다.

    지난 5월 S&P는 그리스 경제에 대한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변경한 바 있다. 피치와 S&P는 그리스 국가신용등급을 투자적격등급 직전인 'BB+'까지 올린 상태다.

    그리스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2010년 국가부도 사태로까지 내몰렸고 결국 재정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ECB 등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유럽의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에 이어 2019년 급진좌파에서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로 정권이 바뀌면서 경제가 극적으로 개선되는 실마리를 마련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업·외국인 투자 활성화 정책으로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3월 IMF 구제금융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경제성장률도 유럽연합(EU) 평균을 웃도는 수준으로 반등했다.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에서도 2021년 8.4%, 지난해 5.9%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각각 5.4%, 3.5%를 기록한 EU 평균보다 높았다.

    정부의 강력한 긴축으로 국가부채비율은 2020년 206%에서 지난해 171%로 떨어졌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부채 하락률을 보였다. 일자리가 늘면서 2015년 27.5%에 달했던 실업률은 지난해 12.2%로 낮아졌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취임 이후 기존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과 거리를 두었다.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지적됐던 무상의료 정책과 소득대체율 90%의 연금 제도를 손질했다. 대신 기업 감세와 공기업 민영화, 외국인 투자 유치 등 친시장 정책을 펼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리스 경제는 이후 수출과 외국인직접투자(FDI) 등이 증가하며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수출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19%에서 지난해 49%로 늘었다. FDI는 지난해 50% 증가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 ▲ 규제 개혁.ⓒ연합뉴스
    ▲ 규제 개혁.ⓒ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수출 부진과 역대급 세수펑크 등으로 복합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도 그리스의 친기업·친시장 정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수 부족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할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당근으로 법인세율 추가 인하 등의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FDI가 유입보다 유출이 4배쯤 더 많다. 투자가 감소하니까 일자리도 세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싱가포르는 법인세율이 17%(단일 세율)로 전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더 많은 (외국)기업이 (투자하려고) 들어온다. 일종의 박리다매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진익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국장은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토론회에서 '경제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외국투자 활성화 방안' 주제발표를 통해 "2021년 하반기 이후 수출 부진,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경제성장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며 "외국인 투자를 활용해 새로운 균형으로의 이행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에 참여한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 윤우근 서기관은 "거시경제에서 자본은 생산성을 향상하는데 핵심적인 자원이 될 수 있다"며 "자본이 시장에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우리나라에 조성이 됐는지 생각해 보면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은 기업과 외투 유치를 위한 법인세 인하 등에 부자 감세 프레임을 씌워 반대하며 나랏빚을 더욱 늘려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의 해법을 제시한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대한민국 재정건전성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민생 파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길이라면 35조 원의 (적자)국채 발행을 통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의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중요시했는데 민주당이 주장하는 35조 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15조 원, 20조 원, 10조 원이라도 어려운 서민을 위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위한 추경 편성의 용의가 정말로 없나"라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한 총리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세수가 이렇게 적자가 나는 판에 추경을 통해 추가 지출을 한다면 적자는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태호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 감세를 문제 삼았다. 정 의원은 "세수가 감소하는 바람에 재정을 크게 짜려고 해도 짤 수가 없다. 내년도 세수부족분 중 80% 이상이 법인세 감소분"이라며 "올해 세수 결손이 50조 원 가까이 예측된다. 그러니까 재정 규모를 늘리고 싶어도 못 늘린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지난해 1% 내린 법인세 때문에 지금 세수 적자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법인세에 영향을 받는 외국인 투자는 올해 상반기 170억 달러로 여느 해보다 가장 많이 늘어났다"고 반박했다.

    산업부가 밝힌 올 상반기 FDI 규모는 170억9000만 달러(22조3500억 원)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2년 이래 최대 금액이다. 분기별로는 지난해 3분기 이후 4분기 연속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한 수치다.

    다만 여기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윤 대통령의 정상외교 성과가 크게 기여했다.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유치한 31억4000만 달러가 전체 신고금액의 18%를 차지한다.

    '주고받기'가 기본인 정상외교에 기대지 말고 규제 개혁 등 투자환경을 개선해 외투 자금이 자연스럽게 국내로 유입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리쇼어링과 외투 확대는) 몇 가지 인센티브 확대만으로는 역부족"이라며 "법인세 인상 등 세금 이슈, 경영진이 형사법에 쉽게 노출되는 문제, 각종 기업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어렵다"고 밝혔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법인세율 인하가 세수 부족에 미친 영향은 아주 작은 부분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기업 이익이 줄면 세수가 줄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관련 세수가 비정상적으로 가파르게 걷힌 부분이 있다. 저성장과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등 여러 요인으로 말미암아 세수가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정부의 좀 더 과감한 긴축재정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이 교수는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현 정부가 건전재정을 말하지만, 군인 급여 인상 등의 정책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민간시장 개입과 보조금 지급 등을 줄이려는 개혁"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