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사회 일본 백화점 최대 고객은 이미 시니어 세대빠르게 늙어가는 한국… 日 유통 소비 구조 닮아가는 중활발한 활동, 소비력 높아진 '엑티브 시니어'의 등장
  • ▲ 현대백화점이 지난 2019년 60대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진행한 '시니어 패셔니스타'.ⓒ현대백화점
    ▲ 현대백화점이 지난 2019년 60대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진행한 '시니어 패셔니스타'.ⓒ현대백화점
    일본 도쿄 니혼바시에 위치한 다카시야마 백화점의 아침은 우리나라 백화점과는 사뭇 다르다. 2030대가 줄 서 입장을 기다리는 한국의 백화점과 달리 다카시야마백화점의 오픈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노년층이다. 지팡이 없이 걷기 힘든 고령의 고객도 적지 않다. 백화점 직원들은 오픈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아침마다 입구에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배치하고 따뜻한 차를 대접한다. 

    이뿐만 아니다. 다카시야마 백화점에는 이들을 위한 문화센터 강의를 열고 고령층을 겨냥한 MD를 백화점 저층부에 배치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고령화가 진행된 이른바 초고령화 사회 일본의 유통업계에게 ‘시니어’는 이미 주요 고객층이다. 일본의 가계 소비에서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30년 47%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시니어 시장 규모는 오는 2025년 100조원(8000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풍경이지만 사실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다. 현재 속도라면 2045년에는 고령인구 비율에서 일본을 제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출산율은 올해 2분기 기준 0.70명으로 역대 최저점을 경신하는 중이다. 전세계 최저 수준이다. 반면 지난해 기준 기대수명은 일본과 스위스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83.6세를 기록했다. OECD 평균보다 3.6년이 높다. 

    출생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 앞에 놓인 초고령화 사회는 이미 가능성이 아닌 예정된 현실이 됐다. 유통업계가 발 빠르게 시니어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시장은 우리 유통업계에게 일종의 청사진 역할을 해왔다”며 “지금까지 일본의 유통시장의 흐름은 우리 시장의 10년 뒤 미래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그 기간은 점차 짧아지고 더 극적으로 나타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 ▲ ⓒ현대백화점
    ▲ ⓒ현대백화점
    시니어는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는 퇴직한 50대 이상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60세 이상, 공식적으로는 65세 이상의 고령자를 말한다. 

    사실 이들은 과거 유통업계에 있어 크게 주목받는 고객층이 아니었다. IT기기를 어려워하면서 이커머스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자동차를 주로 이용하는 소비자를 주 고객으로 한 대형마트나 아울렛에서도 시니어 세대의 비중은 높지 않았다. 반면 노인빈곤율은 40.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 이들에게 소비여력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된 최근부터는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고도성장을 겪은 시니어들은 경제력이 탄탄하고 높은 학력에 소비력도 높다. 이들을 가리켜 미국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의 버니스 뉴가튼 교수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은퇴 이후 활발한 사회 활동과 여과, 소비를 즐기는 ‘엑티브 시니어’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넉넉한 경제력과 왕성한 활동을 통해 가치소비를 지향하고 첨단 IT기기와 스마트폰에도 능숙하다. 자신을 위한 투자에 인색하지 않다는 점도 이전 세대와의 차이다. 시니어 세대가 트로트 열풍을 이끌고, 열정적인 팬덤 문화의 주역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런 변화의 일환이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50대의 온라인 소비액은 약 3조5억원으로 이는 2019년 2조9000억원 대비 22.3% 증가했다. 60대 이상의 온라인 소비액 역시 2020년 약 1조4000억원으로 2019년 1조2000억원에서 18.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세대가 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한 2012년부터 고령가구가 일본의 내수를 주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사회, 인구구조가 유사한 우리나라 특성상 고령층의 소비패턴 변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소비의 최전선인 유통업계가 시니어 시장에 관심을 갖는 것도 필연적이다. 이미 유통업계에서는 모바일 활자 크기를 키운 모바일 앱을 선보이거나 시니어 세대를 겨냥한 건강식 F&B를 선보이는 등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시장은 이제 막 태동기를 거치는 중이다.

    한국무역협회 김문선 수석연구원은 ‘주요국의 실버시장 현황과 우리기업에의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실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인식이 중요하다”며 “시니어 제품이나 서비스 마케팅 시 ‘노인’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젊은 어른’으로 시니어에 대한 인식을 바꿔 시니어 세대에 어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