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AM 앞두고 준비단계 전환기 시작, 배출량 보고의무 부과美 “낮은 전기료는 보조금” 국산 후판에 상계관세 매겨개별기업 대응책 마련 분주, 정부도 지원사격 나서
  • ▲ 포스코 광양제철소 열연공장에서 쇳물이 나오는 모습 ⓒ포스코
    ▲ 포스코 광양제철소 열연공장에서 쇳물이 나오는 모습 ⓒ포스코
    국내 철강업계가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제도 시행과 미국의 상계관세로 이중고를 겪게됐다. 개별 기업은 물론 정부에서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이하 CBAM) 시행을 앞두고 이달부터 전환기에 돌입했다.

    CBAM은 제품의 탄소 함유량이 기준치 초과 시 EU 탄소배출권거래제와 연계해 탄소 가격을 추가로 부과하는 제도다. CBAM이 우선 적용되는 국내 대상 업종은 철강을 비롯해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가지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EU 수출액 중 CBAM 대상 품목 수출액은 51억 달러로, EU 수출액 중 7.5%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철강의 비중은 약 89.3%(약 6조3800억원)로 가장 크며, 지난해 국내 철강기업들의 EU 수출량은 철강재 기준 317만톤에 달한다.

    전환기인 이달 1일부터 2025년 12월까지는 별도 관세를 부과하지는 않고, 배출량만을 종합해 보고하게 된다. 12월까지 종합한 탄소 배출량 관련 내용을 내년 1월 중 EU에 보고하는 식이다. 보고 의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보고하지 않은 배출량 1톤당 10~50유로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지속될 시 할증도 붙게 된다.

    당장 배출량 산정과 더불어 보고서 작성과 제출이 기업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2025년부터는 보고에 필요한 자체적인 탄소 내재 배출량 산정방식이 허용되지 않는 부분도 준비해야 한다. 향후 저탄소 제품을 국가별로 인증받아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2026년부터 EU 기준을 초과하는 탄소 배출량에 대해 배출권 인증서 구매 의무가 발효되면서 사실상 추가 관세인 ‘탄소세’ 부담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리나라 철강 제품은 EU의 주요 철강교역 상대국 제품보다 탄소배출 집약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국내에서도 탄소배출권거래제 운영으로 인증서 구입 비용이 일부 경감될 수 있다는 부분은 긍정적인 요소다.

    다만 제품 비용 증가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사단법인 넥스트에 따르면 CBAM 본격 시행 시 대 EU 철강 수출 비용이 15%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EU 집행위원회가 CBAM 적용 품목을 더 늘리겠다고 밝힌 만큼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철강사들은 자체적으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포스코는 내년 1월 첫 탄소배출량 보고서를 내놓을 계획으로, 지난해 8월부터 사내 TF팀을 운영하며 대응체계를 구축한 바 있다.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에 주력해 탄소배출 제로를 실현할 계획이다.

    현대제철도 전기로 기반 제품 저탄소화를 추진해 CBAM에 대응하고 있다. 전기로와 고로 복합체제를 통해 2025년부터 탄소 함유량을 20% 감축한 강판을 생산할 예정이다. 저탄소 브랜드를 론칭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이 약 40% 저감된 제품생산체계를 확보하고, 직·간접 배출량을 12% 감축할 방침이다.

    이와 별개로 미국 정부는 한국의 값싼 전기요금이 철강업계에 사실상 보조금 역할을 하고 있다며 국내 철강업체에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이번 결정의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국내 전기요금 수준이 유지되면 통상 분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관보를 통해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자국에 수출하는 후판에 1.1%의 상계관세를 부과한다는 판정을 내렸다. 미국 상무부가 저렴한 전기요금을 정부 보조금으로 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계관세는 보조금 지급에 따른 자국 산업의 상대적 피해 사실이 확인되면 상응하는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산업부와 철강업계는 1.1%의 상계관세 중 전기요금 관련은 0.5%, 나머지는 0.6%로 보고 있다.

    앞서 미 상무부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는 2020년에 현대제철이 수출하는 도금강판에는 상계관세를 매기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국제유가 상승 등 영향에도 국내 전기요금 인상 폭이 다른 국가보다 적다는 점을 문제삼은 것으로 풀이된다.

    수출량이 적을뿐더러 상계관세가 1%대로 낮아 미국 정부의 결정으로 인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미국에 수출하는 후판 물량도 각 4만톤과 1만톤 수준으로 전체 생산량 대비 비중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미국 국제무역법원에 부당한 관세 부과에 대해 항소할 예정이다. 미국 국제무역법원 판결에 따라 상계관세율이 최종 확정된다.

    다만 미국 정부가 국내 전기요금을 보조금으로 판정한 만큼 향후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서 통상 분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는 EU의 CBAM과 미국의 상계관세 조치로 개별 기업의 보호무역 장벽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EU CBAM 이행 법안이 순차적으로 제정되는 만큼 수출 기업이 추가적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작성해 배포하는 한편, EU와 지속적으로 협의할 뜻을 밝혔다. 상계관세 조치에 대해서도 국제무역법원 제소 등 판정 결과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국내 철강업계가 탄소국경세 등 보호무역 장벽에 대한 대비가 상대적으로 잘 되어있는 것은 맞다”며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은만큼 정부가 협상력을 발휘하고 기업들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