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넷플릭스·네이버·쿠팡 등 구독서비스 대상 현장조사2002년 제정된 방문판매업에 기반한 환불 방식 적용, 업계 반발구독료 인상·서비스질 저하 불 보듯 … "사업자 경쟁력 위축 우려"
  • ▲ 공정거래위원회ⓒ연합
    ▲ 공정거래위원회ⓒ연합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중도해지를 빌미 삼아 구독경제에 칼날을 겨누는 모습이다.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는 물론 음원플랫폼, 이커머스 등을 대상으로 잇단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선 20여년 전 제정된 낡은 방문판매법을 근거로 헬스클럽과 수영장 등에 적용하던 일할 환불 방식을 신종 플랫폼 기반 구독 서비스에도 강제하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공정위는 지난 3월 넷플릭스와 웨이브를 시작으로, 같은 달 스포티파이, 벅스, 왓챠 이달에는 네이버와 쿠팡, 마켓컬리까지 구독 서비스 업계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들 사업자가 중도 해지를 제공하지 않고 있거나 중도 해지에 대해 소비자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 관련 자료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측은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엄정 조치한다는 태도다.

    공정위는 지난 1월에도 멜론의 중도해지 고지 미비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800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멜론을 운영 중인 카카오가 2017년 5월부터 2021년 5월까지 멜론을 통한 정기 결제형 음원서비스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중도해지 가능성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혐의다.

    구독 서비스를 겨냥한 듯한 공정위의 잇단 현장조사에 관련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할 계산의 환불정책은 정액제가 자리잡은 콘텐츠 업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제기된다. 공정위의 구독 서비스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중도 해지의 역사는 2002년 제정된 방문판매법에서 출발한다. 방문판매법이 제정되면서 헬스클럽이나 수영장처럼 이용은 거의 매일하지만, 결제는 월별로 이뤄지는 서비스의 중도 해지와 환급이 가능해졌다. 서비스를 중도에 해지할 경우 이용하지 않은 부분을 일할로 계산해 환불 처리하는 것이다.

    문제는 구독 서비스가 플랫폼 등을 기반으로 다양해진 가운데 공정위가 오프라인에서 적용하던 낡은 일할 계산과 환불 방식을 온라인 구독 서비스에도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가령 소비자가 월 4990원 쿠팡와우 멤버십에 가입하고 로켓배송 서비스를 이용해 수십개의 물품을 구매한 뒤 멤버십을 중도 해지한다면 쿠팡은 소비자에게 4990원을 한달(30일)로 일할 계산한 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은 29일에 해당하는 4823원을 환급해주어야 한다. 167원에 수십개의 물품에 대해 로켓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월 4900원인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 또한 결제 첫날에 원하는 혜택을 모두 사용한 후 멤버십을 해지하는 소비자에게 네이버는 멤버십 혜택을 166원에 제공하게 된다.

    OTT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를 예로 들면 가장 저렴한 5500원 요금제에 가입한 후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드라마 콘텐츠를 몰아보고 멤버십을 중도 해지할 경우 넷플릭스는 소비자에게 5316원을 환불해주게 된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최신 드라마를 한편당 23원에 제공하게 되는 셈이다.

    업계에선 일할 환불을 플랫폼 구독 서비스에도 강제한다면 중도 해지를 악용하는 사례로 인해 사업자가 피해를 보게 되고 나아가 사업 경쟁력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구독 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할 환불을 강제할 경우 이를 악용하는 블랙 컨슈머로 인해 사업자에게 지나친 부담이 가해지고 이는 결국 구독료 인상이나 서비스의 질 하락 등으로 이어져 다른 선량한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