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동서발전·강원랜드 등 공공기관 90곳 중 48곳에 文 임명 기관장국책연구기관 26곳, 새정부 들어서도 920억 들여 文국정과제 연구수행정반대 정책기조에도 자리 지켜 논란… 국토부는 元장관이 직접 사퇴 압박
  •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데일리DB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데일리DB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7개월이 지났지만, 적잖은 공공기관에서는 정책기조가 정반대인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알박기' 인사들이 수장을 맡고 있어 논란이다. 심지어 국책연구기관 중 일부에서는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 정부의 국정과제를 위한 연구를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 정부와 국정 철학을 달리하는 이들의 행보에 윤 정부의 추진 동력이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ALIO)에 따르면 공공기관 90곳 중 문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이 남아 있는 곳은 48곳이다. 절반이 넘는다. 전체 공공기관 중 산업통상자원부(18곳)와 국토교통부(13곳) 산하가 가장 많았다. 특히 공기업은 전체 32곳 중 산업부 17곳, 국토부 9곳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세부적으로는 산업부 산하 기관 중 대한석탄공사, 강원랜드, 한국동서발전, 한국마사회 등을 문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이 이끌고 있다. 국토부 기관 중에서는 국가철도공단(KR)과 한국공항공사, 한국교통안전공단(TS) 등이 해당한다.

    48곳의 기관장들은 문 정부 시절 임명된 이후 정책기조가 다른 윤 정부에서도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통상 정권이 교체되면 공공기관들의 수장도 함께 옷을 벗고 물러난다. 새 정부와 사상과 기조 등이 다르므로 국정 운영에 있어 방향이 어긋나게 된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다만 이는 암묵적인 관례일 뿐 강제성은 없다. 현재 국회는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하는 법안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이들 악박기 수장을 바라보는 정부·여당의 시선은 곱지 않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8월3일 최고위원회에서 "공공기관장 중 상당수가 현 정부의 국정철학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마지막까지 챙길 건 다 챙기겠다는 심보로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당연히 업무가 제대로 될 리 없다"고 문 정부가 임명한 기관장들을 향해 비판을 가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공공기관장 임명 사유는 당시 정부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런 것들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는 분들이 기관장으로 근무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다"고 강조했다.

    산업부와 더불어 공공기관을 산하에 가장 많이 두고 있는 국토부는 장관이 총대를 메고 조기 퇴진을 압박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일부 기관들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 강도 높은 혁신과 개혁 등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김현준, 한국도로공사 김진숙, 인천국제공항공사 김경욱,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권형택 전 사장 등이 임기 도중 옷을 벗고 물러났다. 각종 철도 사고로 물의를 빚었던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나희승 전 사장은 해임됐다.

    국토부는 문 정부가 임명했지만, 아직 임기를 이어가고 있는 KR 김한영, 공항공사 윤형중, TS 권용복 등에게도 꾸준히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 장관이 주요 철도 관련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김한영 이사장 대신 부이사장 참석을 지시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날 열린 국토부 국감에서는 이들을 향한 압박이 재차 이뤄졌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원 장관을 향해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 28곳 중 14곳의 기관장이 전 정부 인사로 채워져 있다. 이들이 역량을 발휘하면 좋으나 날로 경영 상태가 악화하고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에 원 장관은 "대통령과 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려는 법안이 여야 간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회에서 빨리 정리해 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 ▲ 국토교통부.ⓒ뉴데일리DB
    ▲ 국토교통부.ⓒ뉴데일리DB
    일부 국책연구기관장들은 윤 정부 출범 이후에도 문 정부의 국정과제를 위한 연구를 수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이들 소관 기관 중 26곳은 연구과제 1999건을 수행하면서 40%에 해당하는 796건은 문 정부의 국정과제를 다뤘다. 이 과제들을 연구하는 데에 전체 예산 1920억 원의 절반 수준에 달하는 916억 원을 사용했다.

    연구를 수행한 기관들은 모두 문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들이 기관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태수 원장은 문 정부의 국정자문위원 출신이다. 한국행정연구원 최상한 원장은 문 캠프의 국민성장위 부위원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원장은 전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으로 각각 활동했었다. 이들은 새 정부의 정책기조가 문 정부의 그것과 다른 데도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연구과제를 교체하지 않고 전 정부의 탈원전·소득주도성장 등의 주요 국정과제를 그대로 이어갔다. 윤 정부는 새롭게 제시한 국정과제와 관련해 연구기관들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셈이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관장들이 국정 운영 동력을 상쇄하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 한 관계자는 "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이 바뀐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기관장이) 조직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자리에 연연해하지 말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