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사업장 정리 본격화 '시동'리스크 확산 가능성 낮아… 일부 피해 불가피"우량사업장, 우량기업에만"… 볼멘소리도
-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과 관련한 2금융권의 버티기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전망이다. 향후 금리가 하락하면 부실한 PF 사업장이 회복될 수 있다며 당국의 경공매 압박에도 부실채권 매각에 소극적이었지만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 인하 지연을 공식화함에 따라 업계가 기대하는 ‘돈 버는 계절’은 한층 더 요원해졌다.금융당국은 고금리 장기화로 PF 사업장의 부실 우려가 커질 것에 대비해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살릴 곳은 살리고 정리할 곳은 정리하는 신속한 옥석가리기로 충격을 최소화해 연착륙하는 것이 목표다.◇ PF사업성 옥석가리기…구조조정 시동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조만간 '부동산 PF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부실 사업장 처리를 본격화할 계획이다.당국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관계부처와 함께 '부동산 PF 정상화 방안'을 준비 중”이라면서 “확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10일 무렵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일 연준의 금리 동결 이후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금리인하 불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부동산PF 사업장 구조조정을 신속히 단행하겠다고 강조했다.이 원장은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PF 구조조정을 지연하는 것은 부담이 가중될 수 있으므로 신속하고 질서 있는 연착륙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달 초에 PF 사업성 재평가 기준 발표 등 PF 연착륙 추진 과정에서 대내외 경제·금융여건 변화가 가미돼 조금이라도 시장 불안이 나타날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번에 발표되는 부동산 PF 정상화 방안은 부실 사업장의 신속한 정리와 정상 사업장에 대한 자금 투입 등이 골자다.정상 사업장은 원활한 진행을 지원하고, 부실 사업장은 시행사를 변경해 계획된 사업을 다른 사업으로 재구조화하거나 경공매를 통해 사업 예정 부지를 팔아버리는 것이다.당국은 이를 위해 자산 건전성 분류기준을 강화하고 이에 따른 충당금 적립도 확대해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장이 경공매 시장으로 넘어가도록 유도할 방침이다.기존 평가 기준은 '양호-요주의-악화우려' 3단계인데, 가장 낮은 수준인 '회수의문'을 추가해 4단계로 세분화한다. 회수의문 사업장의 경우 금융사 충당금을 75%나 쌓게 한다. 사실상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경공매로 넘기라는 취지다.충당금 압박이 커지면 금융사는 부실 사업장에 대한 대출을 끌어안고 있기보다 경공매를 통해 정리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버티기’ 수단인 대출 만기 연장도 어려워진다. 금융당국은 PF 대주단 협약 개정을 통해 3분의 2 이상 동의로 결정되는 만기 연장 조건을 4분의 3인 75%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4분의 1만 반대해도 만기 연장 대신 경공매로 넘어올 수 있다.
-
◇ 브릿지론 사업장에 은행·보험 ‘뉴머니’ 투입 유도이번 구조조정의 타깃은 브릿지론 단계의 PF사업장이 될 전망이다. PF 구조조정을 가늠할 수 있는 태영건설의 사례를 보면 브릿지론 단계의 PF 사업장은 대부분 시공사를 교체하거나 청산키로 했다. 정상화 가능성이 큰 본PF 사업장 40곳 가운데 상당수는 그대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본PF 단계의 사업장이라도 사업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되면, 시공사 교체 또는 경공매를 결정했다.금융당국은 부실 사업장이 경공매에 쏟아져 나올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하고 있다. 부실 사업장이 한꺼번에 경·공매에 나오면 청산 가치가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서다.경공매로 나오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은행과 보험권이 인수 대기자로 참여해 시장을 떠받치는 역할을 할 전망이다.은행과 보험사는 착공 단계의 본PF 위주로 취급해 연체율이 1% 전후에 머무는 등 상대적으로 건전성 측면에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금융당국은 정상 사업장에 대한 은행·보험사의 자금투입을 유도하기 위해 신규 자금에 대한 건전성 분류를 완화해주는 등 인센티브를 검토하고 있다.◇ 최선이지만 또 다시 ‘부익부 빈익빈’ 초래부동산 사업장에 금융당국과 전 금융권이 촉각을 곤추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건설사에서 터진 PF대출 부실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로 옮겨붙어 연쇄작용을 일으킬 경우 금융시스템은 물론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당국의 부동산PF 구조조정 작업은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시장을 연착륙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정부와 금융권은 계획대로 부동산PF 구조조정이 진행될 경우 건설사 줄도산과 금융권 동반 부실 등의 위기는 현실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에서 2금융권까지 다 지켜보고 있고, 각 사가 선제적으로 충당금도 충분히 쌓은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 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만약 일이 터진다면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개별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부동산PF 연착륙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이 총재는 지난달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PF와 관련된 가격이 조금만 내려준다고 하면 투자하겠다는 투자자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아무 금융기관, 부동산 회사도 안 넘어지고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렵지만, 나라 전체적으로는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들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평가했다.다만 일각에선 PF 구조조정 작업이 ‘부익부 빈인빈’을 불러올 것이란 볼멘소리도 나온다.한 금융권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그랬고 늘 버티는 쪽은 결국 돈을 벌었다”면서 “우량한 사업장을 우량한 기업이 다 가져가면 결국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부동산 경기가 회복된다면 PF 위기는 자연히 해소되겠지만 위기를 촉발한 고금리 환경은 미국의 금리인하 지연으로 끝을 알 수 없게 됐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사업들이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또 버틸 수 있는지 가늠할 길이 없는 상황이다.이는 당국이 당장 PF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다.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PF대출 부실 가능성은 당분간 한국 경제를 괴롭히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금융회사의 자산건전성을 높여 위기가 확산하는 걸 막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부실 가능성이 높은 PF대출을 정리하고 시스템리스크로 확산하지 않게 관리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란 얘기다.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저축은행만 해도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산규모가 커졌다”면서 “불만이 있겠지만 리스크 우려가 있는 이상 당국 입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버티라고 둘 수도 없지 않냐”고 말했다.
- ◇1조원 규모 캠코 펀드 투입 검토… 우선매수권도 부여할 듯금융당국은 내주 발표 예정인 ‘PF 정상화 방안’에 1조원 규모의 캠코 펀드를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캠코 펀드에 부실 사업장을 싸게 넘길 경우 향후 사업장을 되살 수 있는 우선매수권을 부여, 매각 및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캠코 펀드는 부동산 PF 정상화를 위해 지난해 10월 본격 가동됐지만 이후 8개월간 집행 실적이 단 2건에 그치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캠코 펀드 운용사 측과 매도자인 PF 대주단과의 가격 눈높이 차이가 큰 탓이었다.이에 금융당국은 대주단이 가격 협상에서 갖는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캠코 펀드에 사업장을 매각한 뒤 되살 수 있는 우선매수권 부여를 검토 중이다.금융당국은 또한 여유자금이 있는 은행과 보험사가 PF 사업장 재구조화를 위해 공동대출 및 펀드 조성에 나설 경우 건전성 분류를 상향해주거나 면책 범위를 확대해주는 인센티브도 제공할 계획이다.금융당국 관계자는 “가격이 충분히 내려가면 시장에서는 수요자가 생길 것이고 이러한 시장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장애물들을 치워주면 PF 시장 연착륙이 더 의미 있게 진척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