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 신청자 9만1981명… 42% 급증20대(7592→1만1147명), 30대(1만7102→2만780명) 고금리, 경기침체에 취약차주들 속수무책성실 상환자들도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려
  • ▲ 연령별 신용회복 신규 신청건수.ⓒ신용회복위원회
    ▲ 연령별 신용회복 신규 신청건수.ⓒ신용회복위원회
    #. 30대 남성 김모씨는 최근 생활고에 시달려 인터넷 한 대부금융 카페에 대출문의를 올렸고 그 글을 보고 사채업자가 연락해왔다. 김씨는 사채업자로부터 100만원을 대출받았고 2주 뒤 120만원으로 상환했다. 단순계산해 연 520%의 고금리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100만원을 다시 빌리면서 한 달 후 140만원을 갚기로 했다. 김씨가 한 달이 지나 상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사채업자는 연장비 명목으로 수십만원을 추가해 계속해서 추심을 진행했다. 심지어 가족에게 알리겠다며 협박도 일삼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 5000% 이상의 금리를 물리고 이를 성 착취 등의 방법으로 뜯어내는 불법사금융 사례를 언급하며 이를 엄벌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현실은 김씨처럼 불법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았다가 생활고 등으로 빚을 갚지 못해 신용회복을 신청한 사람이 올해 상반기에만 9만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한참 일할 나이인 20~30대 청년들의 신용회복 신청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고금리는 이어지는데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한계에 처한 대출자들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신용회복 신청자 수는 9만198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6만4667명 대비 42% 급증한 수치로, 지난해 연간 신청자 수의 66.6%에 달한다.

    신용회복은 생활고 등으로 빚을 갚기 어려워진 대출자들을 위해 상환 기간 연장, 이자율 조정, 채무 감면 등을 해주는 제도다. 연체 기간에 따라 신속채무조정, 프리워크아웃, 개인워크아웃 등으로 나뉜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상반기에는 6만2977명이 신용회복을 신청했지만 2021년 하반기 6만4170명, 2022년 상반기 6만4667명, 2022년 하반기 7만3535명 등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1년새 2만7000여명 가량 급증했다. 그만큼 빚 상환 여력이 떨어져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대출자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신용회복 건수가 미미했던 20~30대 청년층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30대의 경우 올 상반기에 2만780명이 신용회복을 신청해 50대(2만520명)를 넘어서며 연령별 2위에 등극했다. 40대가 2만6260명으로 가장 많았다.

    20대 역시 2021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6658명에 불과했던 신용회복 신청자수는 올 상반기 1만1747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신청자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 10% 수준에서 13%까지 증가했다.

    경기침체에 따른 고용시장 불안과 고금리, 고물가로 생활고를 겪으며 빚으로 연명하는 청년층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또 코로나19 시기 풍부한 유동성에 기반해 무리한 투자나 주택 구입을 한 경우도 있어 청년층의 빚 부담은 커지고 있다. 결국 이들은 높은 금리의 대출을 실행하거나 급전 마련을 위해 불법사금융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청년층에서 신용회복 건수가 늘었다는 것은 부채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는 의미"라면서 "정책금융상품에서 생계자금을 빌릴 수 없는 청년층은 제도권 금융에서 최후의 보루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이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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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회복 지원이 확정된 사람들 중에는 여러 금융기관에서 복수 대출을 받는 행태가 많았다. 올해 6월 말 기준 4~9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경우가 4만7403건으로 58.1%를 차지했다. 10개 이상 금융사를 이용하는 경우도 1만4134건(16.8%)이나 됐다.

    1개 금융사에서 대출받은 경우는 4891건(6.4%)에 불과했다. 대출받은 기관은 신용카드사(39.2%), 대부업체(26.8%), 시중은행(13.1%), 저축은행(12.3%) 등의 순이었다. 결국 여러 금융사에 대출을 받고 이를 갚지 못해 신용회복을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의미다.

    또 다른 문제는 신용회복 기간 중 빚을 성실하게 갚아온 성실 상환자들의 자금 사정도 나빠지고 있는 모습이다. 성실 상환자들을 대상으로 지원되는 소액대출의 경우 2018년 2만1690명이 신청했으나 지난해 4만4671명으로 급증했다. 올해 6월 말 기준 소액대출 신청자는 2만3264명으로 지난해 절반을 넘어섰다.

    업계 한 전문가는 "빚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성실 상환자들도 경기 침체 및 금리 상승 여파 속에서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며 "불법사금융을 처벌하는 것뿐 아니라 서민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