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사위, 22일 전체회의서 '중처법 유예 법안' 상정 안 해使 "기업 줄도산 우려" vs 勞 "50인미만 사업장 산재 사각지대"政 컨설팅사업 실효성 의문… "전체의 2.2%만 지원, 먹고살기 바빠 외면"
  • ▲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내년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을 두고 중소기업계의 시름이 깊다. 정부와 여당은 법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며 입법 몽니를 부리고 있어 특히 영세 중소기업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이날 오후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유예 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날 다루는 총 134건의 법안 중 중처법 유예 법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중처법 유예는 경영계와 여당, 노동계와 야당이 구도를 나눠 치열하게 대립하는 중이다.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최대 화두는 중처법 유예 법안의 상정 여부였다. 법사위 여야 간사는 전날까지 안건 상정을 두고 논의를 이어갔으나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처법은 50인 이상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의 건설업 사업장이 대상이다. 해당 사업장에서 인명피해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지난 2021년 1월 공포 후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정부는 중처법 시행 당시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건설업 사업장에 대해서는 적용을 2년 유예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 등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중소기업계는 그동안 법 시행에 대비하기엔 유예 기간이 짧다며 우려해왔다. 여당은 중소기업계 입장을 대변해 지난 9월 중처법 유예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중처법 확대 적용 시행일을 내년 1월 27일에서 오는 2026년 1월 27일로 2년 늦추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중소기업의 만성적인 인력난과 비용부담 문제 등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이들이 중처법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더 주자는 취지다.
  • ▲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한화진 환경부 장관 등이 출석해 있다.ⓒ연합뉴스
    ▲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한화진 환경부 장관 등이 출석해 있다.ⓒ연합뉴스
    정부도 중처법 유예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법사위에 중처법 유예 법안에 대한 수용 의사를 담은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견서에는 '법안 취지에 공감하며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 '법안에 이견이 없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동부를 비롯해 법무부 등 다른 부처도 법안 취지에 공감을 표하는 의견서를 법사위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을 비롯한 경제 6단체도 연이어 적용 유예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총은 이날 '50인 미만 중처법 적용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내고 "대기업 경영책임자 처벌을 주된 이유로 제정된 중처법 적용이 중소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내년에 50인 미만까지 확대 적용될 시 소규모 기업 대표는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대표가 구속되면 회사는 폐업할 수밖에 없고, 근로자들은 실직하는 등 사회적 부작용만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20일 낸 입장문에서 "중처법 적용이 불과 2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80%가 아직 준비하지 못한 실정이다. 유예 없이 중처법이 시행된다면 현장의 혼란은 물론 준비를 아예 포기해버리는 기업이 대거 나타날 우려가 있다"면서 "무리한 중처법 적용으로 범법자가 양산되고 기업이 도산하면 그 피해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소속 근로자에게까지 미치게 된다"고 호소했다.

    반면 노동계는 중처법의 유예 없는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지난 10년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1만여 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사각지대로 방치해 왔던 노동부는 중처법 유예에 대해 입장을 밝힐 자격조차 없다"면서 "대기업은 '봐주기'로, 중소기업은 '적용 연기'로 중처법을 무력화하는 노동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개악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야(巨野) 민주당은 노동계와 보폭을 맞춰 유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최근 새로운 기류도 감지된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간담회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처법 적용을 2년 유예했는데도 그동안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면서 "준비 소홀에 대한 정부 사과를 전제로 유예기간 연장을 생각할 수 있다. 정부의 구체적이고 확실한 로드맵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유예 가능성을 시사하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 셈이다.

    다만 야당으로선 노동계의 반발 등을 우려해 뚜렷한 명분이 필요한 만큼 '정부의 사과'와 '구체적이고 확실한 로드맵' 등을 전제 조건으로 걸었다는 분석이다. 돌려 말하면, 정부의 사과 등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법안 상정부터 표결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의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앞으로 적잖은 난항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현장의 노동전문가들은 중처법이 유예 없이 시행될 시 다수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정부가 중처법 확대 적용에 대비해 중소기업에 제공하는 컨설팅 사업도 실효성이 전무한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무법인 푸른 대표 권형하 공인노무사는 "15~20인 정도의 소규모 사업장은 사실상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에 치여 중처법의 시행 여부에 관심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만약 사망사고가 발생해 중처법이 적용된다면 그대로 폐업할 가능성이 크다. 생존 중심의 소규모 사업장은 대체로 무방비 상태라 대응할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중소기업을 상대로 중처법 확대 적용에 대비한 현장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사업장을 배정받은 컨설턴트들이 현장을 방문해 위험요소를 확인하며 중처법에 대해 직접 교육해주는 방식이다. 안전공단에 따르면 올해 1만6000개의 50인 미만 사업장에 컨설팅을 지원했다. 이는 전체 50인 미만 사업장 83만여 개소의 2.2%에 불과한 수준이다.

    권 노무사는 "컨설턴트들이 현장을 방문하면 사업장 인력이 원체 부족해 교육 받을 사람이 없거나, 바빠서 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라면서 "현실적으로 당장 수익도 내지 못하는 사업장에 컨설팅을 한다 해도 '이대로 운영하다가 접겠다'는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