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손실 ELS, '안전 상품'이라 판매…금소법도 무용지물무조건 많이 팔아야 인사고과 유리… 실적 과당경쟁 여전CEO 임기내에 실적에 연연… 단기실적 영업관행 불완전판매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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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지수)는 과거 DLF(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 사태와 판박이다. 또 그 이전의 키코(KIKO)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국내 금융그룹들은 포트폴리오 확장 등 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반복해서 치명적인 약점을 보이곤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ELS 사태를 두고 "고질적인 '천수답 경영'의 한계가 노출됐다"고 말한다. 과거 천수답 경영의 대명사로 불렸던 증권사들의 '떼거리 경쟁'이 재연됐다는 지적이다. ELS 사태는 이미 ‘제 2의 DLS(파생결합증권)‧DLF’ 사태로 비화할 조짐이다. 

    은행들은 과거 파생상품의 대규모 손실 사태로 투자자보호와 내부통제 강화 등 체질개선에 나섰다고 주장하지만 지금 일어난 ELS 사태를 보면 과거 사태에서 달라진 게 보이지 않는다. 

    ◇ELS, 5년전 DLF와 판박이… “나라 망하지 않는 한 안전” 장담

    ELS 사태는 지난 2019년 DLF, DLS 사태와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당시 만기를 앞두고 독일·영국 등 시장금리가 급락하면서 DLS, DLF는 대규모 원금 손실을 일으켰다. 

    ELS가 코스피 등과 같은 주가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결정된다면 DLS는 금리·환율·원자재 등을 기초 자산으로 결정된다. 특정 기간 동안 해당 기초 자산의 움직임이 정해진 구간에 머무른다면 약정 수익률을 지급받을 수 있으나 만약 이 기초 자산이 이 구간을 벗어날 경우 원금손실이 나는 구조다. DLF는 이와 같은 DLS를 편입해 운용하는 펀드다.

    은행성과제는 과거 DLF, DLS 사태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당시 은행 인사고과 체계는 무조건 많이 팔아야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은행 관계자는 “이 상품의 판매 규모로 경쟁해서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가 지속됐다”면서 “목표치가 너무 높고, 지나친 실적 경쟁을 유발했다”고 털어놨다. 고객 이익보다 은행 KPI(핵심성과지표) 평가에 유리한 상품을 판매했다는 의미다. 

    은행원들 사이에선 "KPI에 ‘통일’을 넣으면 남북통일도 이뤄질 것"이란 농담까지 오갈 정도였다. 

    당시 금융당국에서는 PB(프라이빗뱅커)조차 이 상품 구조를 완벽히 이해했을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ELS 투자자들은 "은행들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며 정보를 제공하고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과거 DLF 판매잔액에 비해 홍콩지수 ELS 판매잔액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피해 규모와 사회적 파장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에도 홍콩 H지수가 기초자산인 ELS에서 대규모 손실 우려로 투자자들이 불안에 떨었던 전례가 있다. 당시 홍콩 H지수가 반년 새 급락하면서 ELS 투자자들은 장기간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다행히 만기를 앞두고 지수가 반등하면서 대규모 손실 사태는 면했다. 

    앞선 2008년에 일어났던 ‘키코(KIKO) 사태’도 비슷하다. 

    키코는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통화 옵션 상품이다. 원·달러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미리 정한 환율에 달러를 팔 수 있다. 기업들은 환율 변동 위험을 줄여 이익을 내거나 손실을 방지할 수 있으나 환율이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당시 은행들은 환율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이 상품 판매에 나섰는데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당시 919개의 기업이 피해를 봤고 그 금액만 3조1588억원에 달했다. 수익과 손실 주체와 피해 대상이 다르다는 점을 빼면  DLS·DLF 사태와 판박이다. 

    ◇파생상품 부실 계속돼도… 영업 독려 답습

    문제가 된 홍콩H지수 ELS 역시 은행들이 KPI에 ELS 판매를 큰 비중에 두면서 피해를 확산시켰다. 

    특히 지난 2019년 DLF 사태를 피해갔던 국민은행은 ELS 판매한도를 임의로 늘여 피해를 더욱 키웠다.

    금융당국이 2019년 DLF 사태 이후 규제 개선에 나섰음에도 거의 비슷한 사태가 재발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2019년 11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내놓고 은행의 고난도금융투자상품 신탁 판매를 금지했다. 다만 5개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T(주가연계신탁) 판매는 허용했다. 

    또 투자자 보호를 위해 ELT 판매시 녹취·숙려제도 강화, 설명의무 강화, 설명서 교부 의무화 등을 담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도입했다. 

    2020년 9월에는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가 ’은행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내놨다. 비예금상품 판매실적 성과반영을 제한하고, 고객수익률을 반영하는 등 KPI 개선과 내부통제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범규준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율규제라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강원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은행 경영진은 제대로 내부통제를 개선하지 않고 잘못된 영업관행을 지속했다”면서 “KPI상 고위험‧고난도 상품 판매 드라이브 정책이라는 똑같은 문제가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경영진의 단기실적 위주의 영업 관행이 무리한 KPI를 답습했고, 과당경쟁과 불완전판매를 초래하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임기 내에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크게 작용하면서 불완전판매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2월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등 소비자 피해는 금융회사가 고객보다 단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잘못된 영업 관행을 가질 때 주로 발생한다"며 "내부통제의 최종 책임을 가지는 이사회가 주도적으로 나서 단기 실적 위주의 경영문화와 성과보상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금감원이 이번 ELS 관련 은행 현장 검사를 통해 금융사에 내부통제 부실을 적용해 경영진을 제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현행 금융사 지배구조법상 경영진의 내부통제 책임이 명시되지 않아 경영진에게 내부통제 미흡의 책임을 묻는 건 어려운 상황이다.